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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종영한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5인방은 가족도, 친척도 아닌 '이웃사람'이라는 낯선 존재로 구성돼 있다. 어릴 때 동네 골목이나 놀이터에서 놀다가 해가 저물락하면 "밥 먹어라"고 소리치는 낯선 여성의 목소리가 동네산 정상의 야호 소리보다도 여러 번 메아리치곤 했다.

과거의 이웃사람은 그런 존재였다. 옆집 밥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던 시대. 지금은 옆집에 남자가 사는지, 여자가 사는지, 사람이 살긴 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이웃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은 어디에서 온 걸까.

'이웃 사람'를 바라보는 미디어의 시각은 부정적이다. 성폭행 사건이나 살인 사건은 안면이 있는 이웃에 의한 것이었다는 보도를 왕왕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런 설정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는 차치하고서라도, '이웃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웃이 이웃을 해치는 시대가 왔다면, 이런 보도에서 유추돼야 할 내용은 '이웃을 믿지 말라'가 아니라, '그렇지 않을 이웃을 찾아라' '이웃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라' '이웃의 집에서 돌아가면서 반상회를 하라' '이웃을 공유하라' '이웃을 드러내라'가 옳지 않을까. 조심만 해서는 범죄를 예방하기 어렵다.

'1인 가구' 시대라고 한다. 한 장 벽만 허물면 우리는 한 집 사는 사람일 텐데, 그렇게 벽을 두고,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스쳐지나가는 사람들. 2015년 국가통계포털을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506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한 집에 한 명이 사는 시대. 옆집 문이 열리면 나는 문을 닫고, 내가 문을 열면 옆집은 문을 닫는, 시소 같은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해도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tvN의 또 다른 드라마 <식샤를 합시다>에서 주인공들은 시즌1부터 시즌2까지, 같은 빌라 혹은 오피스텔의 '이웃 주민'으로 묘사된다. 옆집에 스스름없이 들어가고, 오가는 그들은 '1988년'을 닮아있다.

나는 지금에도 그런 이웃간 소통이 가능할지 궁금해졌다. 우선, 원룸 건물 주변의 문구점에 가서 펜과 엽서 그리고 밝은 느낌의 스티커를 구입했다. 평소 잘 쓰지도 않는 핑크빛 글씨를 써내려갔다. 아래는 그 엽서에 적힌 글의 전문이다.

근처 편의점에서 구입한 사진
 근처 편의점에서 구입한 사진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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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이 건물 어딘가에 살고 있는 누군가입니다. 저는 남쪽 마을에서 왔어요. 1년이든 2년이든 언젠가는 떠날 생각이 있을지 모르는 이 건물이지만, 그래도 타향살이하면서 방 한 칸에서나마 위안을 많이 얻고 있어요. 다들, 힘들고 지치고 외로울 때가 있을거에요. 그래도 누군가 이렇게 이웃주민이 된 걸 반가워하고 있답니다. 당신과요. :-) 스치듯 안녕, 반갑게 인사해도 될까요? 너무 X2 반가운걸요."

지난 10일, 서울시 성북구의 어느 한 원룸 건물 공과금 게시판에 이 쪽지를 부착한 뒤 경과를 지켜봤다.

헉... '누군가2'의 답장이 붙었다

공과금 게시판에 부착된 엽서
 공과금 게시판에 부착된 엽서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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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이 밝았다. 점심 때가 돼서야 그 건물 공과금 게시판으로 내려가 봤다. 그곳에는 낯선 '이웃 사람', 조심해야 할 '이웃 사람'의 흔적이 있었다.

이웃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
 이웃사람이 남기고 간 흔적
ⓒ 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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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그 '이웃 사람'이 남긴 흔적.

"반가워요. :-) 오늘도 힘내고 이걸 보시는 분들이 다들 즐겁고, 활기찬 하루 보내시길 바래요. 이 건물 어딘가 살고있는 누군가2. * 고마워요~*"

해당 엽서는 집주인에 의해 덮여있는 상태이지만 곧, 수거할 예정이다.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 시간 동안 게재돼 있던 엽서에 적힌 이웃 사람의 흔적은 아직은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1988'의 그 사람이 다녀간 듯 따뜻하다. 내일은 이웃 사람에게 "안녕하세요" 인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사람은 나를 해칠 수도 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에 나를 도와줄 구원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당장은 한 벽만 부수면 함께 밥을 먹는 친구다.


태그:#이웃사람, #이웃, #이웃주민,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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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자 http://blog.naver.com/wanwol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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