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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는 월정리 해변은 이렇게 아름답다. 이주 1세대들이 가장 사랑한 바다가 바로 이곳이다
 사람이 없는 월정리 해변은 이렇게 아름답다. 이주 1세대들이 가장 사랑한 바다가 바로 이곳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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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주로 갔나요? 왜 제주에 왔수꽈?"

제주로 이주를 감행하면서, 그리고 이주를 감행한 후에도 가장 많이 들은 말이 바로 이것이다. 3대가 내리 살아야 비로소 제주사람으로 인정받는다고 하니…. 우리 같이 육지와 제주의 중간에 어정쩡하게 걸쳐있는 사람들에게는 아마도 평생 따라다닐 꼬리표와도 같은 질문일 것이다.

생각해보면 제주 이주를 처음 결심하고 준비를 시작하던 때만 해도, 조금씩 조금씩 삶의 터전을 이전하는 작업을 진행할 때만 해도, 이 질문에 대해 준비됐던 거창한 대답이 있었던 것 같다.

지방에서 태어나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목표로 했던 분들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서울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40여 년의 세월에 내 선택이란 게 전혀 들어있지 않았다.

그저 태어나 보니 서울 한복판이었고, 답답한 도시와 수많은 사람들이 뿜어내는 에너지에 당장이라도 질식할 것 같았지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는 사탕발림에 현혹돼 하루하루를 버텼을 뿐이다.

내가 본의 아니게 정신을 차린 것은 그 세월 동안 내게 "참고 견디면 좋은 날이 온다"면서 "가정보다는 회사와 조직을 우선시하라" "회사 경영진의 마인드로 일하는 직원이 되자"라고 끊임없이 재촉하던 상사들이 타의에 의해 하나둘 회사를 떠나고, 남아있는 상사들의 얼굴에 '절망과 고통'이라는 감정만이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그랬다. 저렇게 가정보다는 회사, 개인의 행복보다는 승진과 보너스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는 사람들조차 버티지 못하고 탈락하는 이 정글에서 나 같은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나는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에 대한 모든 미련을 끊어버렸다.

"다행이다"로 점철된 삶

다랑쉬는 오름치고는 꽤나 힘든 코스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왜 그 고생을 했는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
 다랑쉬는 오름치고는 꽤나 힘든 코스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왜 그 고생을 했는지 납득하게 될 것이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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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는 행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행복하다는 말을 진심으로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가끔 쇼핑중독에 빠진 이들이 지름신의 부름에 응답한 후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그것이 현실의 괴로움을 물질적 보상으로 대체하려는 몸부림이라는 걸 알기에 오히려 안쓰럽게만 보이기도 했다.

도시에서의 생활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최상위의 감정은 '행복'이 아닌 '다행'이었다.

"이번에 승진하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다. 정리해고의 칼날을 피해서 정말 다행이다. 윗집에 이사온 사람들이 뛰지 않고 얌전히 걸어 다녀서 다행이다. 주차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건강검진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다. 이번에 전세금이 많이 안 올라서 다행이다. 이렇게 남들처럼 먹고는 사니 다행이다…."

그랬다. 도시에서의 생활이란 것은 기본적으로 '언제고 불행이 닥칠 것이다'라는 불안감을 기본으로 깔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행복할 수 없었다. 승진을 하고 월급이 오르고, 전셋집 평수가 넓어져도 행복은 찾아오지 않았다. 항상 뭔가에 쫓기는 느낌이었다.

"난 미역 먹으러 제주에 왔는지도 모르겠어"

송악산을 오르다 염소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녀석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송악산을 오르다 염소와 눈이 마주쳐버렸다. 녀석도 놀랐고, 나도 놀랐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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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바꾸고 싶었다. 지난 40년의 세월이 내 선택이 아닌 운명에 의해 결정되고 진행돼 온 삶이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을 어떤 곳에서 어떻게 보낼지에 대해서는 직접 선택하고 싶었다. 제주 이주에 부정적인 분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제주가 좋은 건 3박 4일 여행으로 올 때뿐이다. 몇 년 살다 보면 금방 육지가 그리워질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제주에 이주한 후 처음으로 행복이라는 감정에 눈뜨게 됐다. 또한 서울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행복하다"라고 말하는 어른들을 자주 만나게 됐다. 이 행복이 어떤 사람들의 말처럼 단 하루가 갈지, 1년이 갈지, 10년이 갈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서울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행복이기에 그 유효기간이 짧고 긺에 개의치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최근에 나에게 "제주에 왜 갔느냐, 그래서 행복해졌느냐"고 묻는 이에게 이렇게 대답해줬다. 그가 기대했던 거창한 대답이 아니었음에 미안함을 느낀다.

재료가 좋으면 아무런 조미료도 필요없다는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화학조미료에 찌든 내 혀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재료가 좋으면 아무런 조미료도 필요없다는 뜻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화학조미료에 찌든 내 혀가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 이영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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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생각 없이 들어간 가파도 칼국수 집의 미역무침이 너무 맛있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 '반찬 좀 더 주세요'라는 말을 하기가 미안할 정도로 맛있어서 머뭇거리는데 선뜻 더 내주던 사장님의 손길에 행복을 느끼게 되더라. 난 이 미역을 먹으러 제주도에 왔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이런 일로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지켜봐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태그:#제주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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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 : 제주, 교통, 전기차, 복지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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