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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조선>은 왜 '카이스트'보다 '장자연'에 집중했나
③ 죽어간 대구 사람들에 주목한 <한겨레>, 왜?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다. 언론의 영향력을 빗댄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대부분의 경우 틀린 말이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언론이 자율성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진보 언론조차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지부가 발간한 소식지 <한소리> 100호에 따르면 '한겨레가 위기라고 판단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겨레> 구성원 84.9%가 '그렇다'고 답했다.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는 '미디어 산업 급변과 당면한 경영전략의 부재'라는 답이 54.1%로 가장 많았다.

<한소리>는 "한겨레는 언론시장에서 진보개혁 매체의 대표선수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 사실상 재벌총수의 결정에 목을 매고 있는 광고 매출이 언제까지 유지될지도 불투명하다"고 현 상황을 진단했다. 진실은 오히려 '칼이 펜보다 강하다'에 가깝다.

그런데 가끔 펜이 칼보다 강할 때가 있다. 기자가 펜에 자신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때다. 기자의 생명력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진정성이다. 진정성(Authenticity)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그리스어로 '자기 자신'을 뜻하는 아우토스(Autos)와 '되다'를 뜻하는 헨테스(Hentes)에 뿌리를 둔 말로 '자기 자신됨'을 뜻한다.

 진정한 기자란 무엇일까.
진정한 기자란 무엇일까. ⓒ freeimage

즉, 기자는 '자기 자신'이 될 때 영혼 없고 기계적인 펜놀림을 넘어 오히려 펜을 지배한다. 열악한 여건과 현실의 압력 속에서도, 진실과 공익을 향한 샛길의 방향을 문장 속에 끈질기게 암시하는 기자 정신은 자본과 권력보다 강하다. 즉 '진정한' 기자는 칼보다 강하다.

그렇다면 기자가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원자적이고 파편적인 개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는 '나'와 구분되는 '너'의 존재를 전제하며 '나'와 '너'가 이루는 앙상블을 우리는 '우리'라 한다. 우리가 관계 맺는 방식의 이름은 '맥락 또는 구조'다.

따라서 기자가 '자기 자신'이 된다는 건 자신이 처해있는 관계, 맥락, 구조를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 맥락을 우선 있는 그대로 인정할 때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맥락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 대안도 제시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진정한 기자란 사회적 맥락을 직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지난 4월 한양대 김대욱 강사, 남서울대학교 최명일 교수 연구팀이 한국언론학회에 발표한 <의미망연결분석을 이용한 2005~2014년 자살보도 분석>은 10년간 보수 성향 <조선일보> 자살 관련 기사 1308건과 진보 성향 <한겨레> 자살 관련 기사 1303건의 기사 제목의 핵심어를 추출해 그 출현 빈도를 분석했다.

기사의 제목은 기사의 대표성과 방향을 드러내고, 수용자의 시선을 본문으로 유도하며, 포털이 메인에 올릴 기사를 선택할 때 중요한 참고점이 된다. 연구팀은 언론이 정치성향에 따라 자살을 다르게 보도하며, 뉴스 수용자의 자살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 다르게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경고한다. 즉 언론의 '시각'이 생명을 해칠 수도 살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 연구 결과를 2, 3편에 걸쳐 다양한 데이터와 시각화 자료를 바탕으로 독자들께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진정한 기자'에 가까운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참고점을 얻게 될 것이다.


#조선일보#한겨레#기자#의미망#의미망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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