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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1. 미영이 빈소
 2016.10.21. 미영이 빈소
ⓒ 송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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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한국인으로 산 2년, 미영이는 행복했을까

미영이 엄마(가명)는 결혼 4년 만에 남편과 별거를 시작한 뒤 아이들을 돌보며 회사에 다닐 수 없어 1999년 4살, 3살, 2살 어린 아이 셋을 필리핀 친정으로 보냈다. 그런 미영이가 2014년 스무 살이 돼서 한국에 돌아온 뒤 골육종(뼈암) 판정을 받고 투병생활을 하다 지난 10월 21일 사망했다.

21일, 미영이에 대해 인터뷰를 하고자 했던 기자는 미영이 엄마가 남편의 가정폭력 얘기를 주로 하는 것에 놀랐다. 미영이 엄마는 어린 미영이가 필리핀으로 가게 된 것이나 한국에 돌아와서 암에 걸린 것에 남편의 가정 폭력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흐느껴 울면서도 가정폭력에 대한 얘기를 멈추지 않던 미영이 엄마와 미영이의 빈소에서 4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필리핀 따갈로그어 통역은 육군 통역장교인 김승태 대위가 맡았다.

- 미영이의 죽음을 준비했나?
"미영이가 암에 걸렸다는 얘기를 듣고 놀라고 힘들었다. 미영이는 병이 나으면 한국에서 중고 옷을 떼어다가 필리핀에서 판매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자신의 꿈을 말하던 미영이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미영이를 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미영이의 죽음을 준비하지 않았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 엄마로서 미영이의 죽음이 누구보다 슬플 텐데.
"자식은 어떤 부모, 특히 어떤 아빠를 만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책임감이 강한 아빠는 아이들을 잘 보살필 것이다. 미영이는 그런 아빠가 없었고 그래서 온 가족이 힘든 삶을 살았다. 남편의 폭력에 새벽에도 슬리퍼만 신고 도망 나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최대한 버티고 기다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러다가 내가 크게 다치거나 병이 걸릴 것 같았다. 남편이 아이들을 돌보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내가 심각하게 다치기 전에 도망 나와야 했다."

- 미영이 아빠의 폭력이 심해진 계기가 있나?
"1998년 남편이 직장을 잃고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면 가정폭력이 심해졌다. 매일 술을 마시고 때리는 일이 반복됐다. 당시 4살이었던 미영이는 아빠가 술을 마신 것을 알면 신발도 안 신고 도망을 갔다. 그 어린아이가 그랬다. 나는 바보도 아니고 또 죽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남편을 두려워한다. 절대 앞으로 절대 다시는 그 사람을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 미영이가 2년 전 인터뷰에서 '아빠가 필리핀에 와서 같이 산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술을 마시지 않고 때리지 않아서 좋았다'고 했다.
"미영이 아빠가 무슨 일에 휘말려서 필리핀에 2년간 도망가 있었던 적이 있다. 미영이가 자존심이 강해서 말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나쁜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그 일을 잃어버렸는지 모르겠지만 미영이 아빠는 그때도 술을 마셨고 사람들을 폭행했다. 우리 아이들은 필리핀에서도 도망을 다녔다. 술을 마시고 장모님을 때린 적도 있고 친척 아이들을 밀어 넘어뜨린 적도 있다. 막내 아이의 목을 조르기도 했다. 친정 엄마가 도저히 안되겠다고 생각했는지 '여기 더 있으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했고 그래서 한국에 돌아왔다."

- 기자라도 가정폭력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이 쉽지 않다. 거리낌 없이 당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이유가 있나?
"나와 우리 아이들처럼 다문화가정이 가정폭력의 피해를 입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한 1995년에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가 없었다. 매를 맞고 문제가 생겨도 갈 곳이 없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겠지만, 다문화가정 남자들은 아내와 자녀를 때려서는 안 된다."

- 이런 이야기를 기사로 쓰면 '그러니까 한국의 다문화는 잘못됐다. 다문화가족이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솔직히 그런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없다. 그들이 뭐라고 말하든 우리는 현재 이곳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고 이곳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다문화가 잘못됐다고 말하면 우리 보고 어쩌란 말인가. 그들의 말은 우리를 더 위험에 빠뜨린다. 현재 많은 다문화가족이 한국에서 살고 있는데 다문화를 부정하면 우리를 다 내쫓겠다는 것인가."

-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글쎄 그다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다만 주변의 많은 분들이 우리를 도와주셔서 감사하고 있다. 한국이나 필리핀이나 나쁜 사람이 있고 좋은 사람이 있다. 현재는 여러분과 같이 좋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좋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기다문화뉴스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다문화가정 자녀, #미영이, #필리핀, #다문화, #이주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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