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체제'가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2016년 체제'가 다가오고 있다. 87년,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했던 전두환 정권이 굴복했다. 6월 항쟁은 민주화를 달성한 분기점이자 우리 사회의 새로운 체제를 형성했다.
6월 항쟁의 두드러진 점 중 하나는 도시 봉급자(화이트칼라)의 참여다. 신흥 중산층들이 대거 참여하면서 하루 100만 명의 인파가 거리로 나섰다. 군부독재가 종지부를 찍었다. 대통령 직선제가 16년 만에 부활했다. 제도적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됐지만 우리는 여전히 지금을 '87년 체제'로 부른다.
'1987년 체제' 끝내고 '2016년 체제' 온다
'87년'이 끼친 영향이 크기도 하지만 경제 양극화, 반목, 남북대결, 헬조선 등 시대정신과 어긋나는 요소들이 여전히 널브러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2016년 체제'를 맞고 있다. 역사는 오늘은 '6월 항쟁'에 이은 '11월 항쟁', 아니 '12월 항쟁'이라 이름 붙일지도 모른다.
29년 전 6월 항쟁에 도시 봉급자가 대거 참여했다면 11월 항쟁은 풀뿌리 지역의 참여가 돋보인다. 대도시는 물론 시군 단위 지역별 '정권 퇴진' 시위가 번져나가고 있다.
전통적인 농업도인 충남을 예로 들어 보자. 비교적 인구가 많은 천안, 아산, 서산 지역의 시위 참여는 당연해 보인다. 당진에서도 촛불과 거리시위, 1인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보수적인 곳으로 이름난 충남 공주에서도 매주 목요일마다 촛불이 타오르고 있다. 시위 양상도 예전과 사뭇 다르다. 잠깐 모였다 흩어지는 게 아닌 거리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짜증을 내는 시민보다 경적을 울리거나 손을 흔들어 호응하는 시민들이 훨씬 많다. 어르신들의 입에서도 "대한민국과 위장 결혼한 대통령은 파혼해야 한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터져나왔다. 이 곳은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지역구이기도 하다.
전폭적 지지 보냈던 예산주민 " 우리가 바라는 건 대통령 하야"
지난 대선에서 충남 시·군 중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가장 많은 지지를 보낸 곳은 예산군이다. 지난 18대 대선에서 예산군 지역 유권자 5만 2000여 명 중 3만 7000여 명(득표율 70.35%)이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지난 16대 대선에서 당시 예산을 지역 기반으로 출마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얻은 표가 3만 7000여 표(71.9%)였다. 17대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얻은 표는 9400여 표(19.7%)에 불과했다. 예산 주민들이 박 후보에게 보낸 지지가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게 한다.
그런 예산에서 박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외침이 거침없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 3일에는 '박근혜 하야 예산군 시국대회'가 예산읍 분수광장에서 열렸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부부, 친구와 함께 촛불을 든 학생 등 100여 명이 참여했다. 이날 시국대회는 대통령을 규탄하는 발언들이 쏟아져나오는 성토의 장이 됐다.
6월 항쟁에 대학생의 참여가 많았다면 이번엔 고등학생들의 참여가 눈에 띈다. 이날 예산에서 열린 시국 대회에서도 예산고등학교와 예산여자고등학교 등에서 온 고등학생 30여 명이 참가했다. 이날 예산여고에서 온 학생은 자유 발언대에서 "우리가 한목소리로 외치면 바라는 것을 이룰 수 있다. 대통령 하야를 외치는 것은 국민의 권리"라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참여 또한 적극적이고 연쇄적이다. 지난 5일 충남지역 20여 개 모든 대학의 학생들이 시국선언을 통해 퇴진을 외쳤다.
부여읍에서 "박근혜 퇴진" 구호 외친 학생과 시민
지난 5일에는 문화재청이 위탁 운영하는 부여군에 있는 국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학생들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대학 학생들이 찾은 곳은 부여읍사무소 앞이다. 이날 학생들과 일부 주민 등 총 100여 명은 이곳에서 시국선언을 하고, 거리행진을 벌였다. 개별 대학에 이어 충남지역총학생회연합은 천안 시내에 모여 시국선언과 함께 거리 캠페인을 벌였다.
각 대학교수들도 연일 '시국선언'을 이어가고 있다. 교수들과 학생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시국선언 경쟁을 벌이는 모양새다. 큰 도시인 대전에서는 9일째(9일 현재 기준) 촛불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시위 참여 인원도 수천 명에 달한다.
'뚝배기 도시' 대전은 9일째 촛불시위 중
흔히 충청도민을 '느리게 불붙지만 가장 마지막까지 불을 지피는 사람들'로 꼽고 있다. 그래서 '뚝배기 도시'라고도 한다. 대전·충남 풀뿌리 지역민의 참여는 국민 대다수가 정권에 등을 돌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6월 항쟁이 제5공화국의 실질적인 종말을 가져왔다면 이번 항쟁은 박근혜 정부의 굴복과 몰락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6월 항쟁은 민주화를 달성한 분기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항쟁은 87년 체제를 끝내고 '2016 체제'를 부르고 있다. '2016년 체제'는 시민, 인권, 상생, 환경, 복지, 평화, 자치, 분권 시대의 시작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