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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 명이 도심에서 모인 촛불 집회가 아무런 충돌이나 불상사 없이 질서정연하게 진행되고 집회 참가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쓰레기도 말끔하게 치워졌다는 사실에 외신들이 놀라고 있다. 하지만 권력의 최상층은 일반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몇 시간도 가지 못할 거짓말을 서슴없이 내뱉고 이미 실체가 다 드러난 일을 부인하거나 거짓말한다. 한국 사회의 반영이다.

한국의 부패 관련 지표에서도 극명하게 대조적인 두 가지 측면이 드러났다. 선진국 수준의 청렴한 모습과 부끄러운 모습이다. 시민들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뇌물을 제공하는 경우는 매우 적다. 선진국 수준으로 낮다. 그렇지만 국회의원, 공무원, 고위 기업경영자, 종교지도자 등 권력 집단의 부패 수준에 대한 국민의 인식은 아시아 최악의 수준이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2017년 3월 발표한 아시아지역 세계부패바로미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 GCB)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국민이 자국의 권력 집단을 얼마나 부패했다고 보는지 파악하는 조사가 GCB다. 

뇌물 제공 국가별 비교
 뇌물 제공 국가별 비교
ⓒ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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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CB 결과 중에서 두드러진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보자. 한국의 국민들이 지난 12개월 동안 뇌물을 준 경우는 일본(0%), 홍콩(1%), 호주(3%)와 같은 아시아·태평양 국가나, 영국(0%), 스웨덴(1%), 독일(3%) 등의 유럽 국가와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의 각종 서비스를 받기 위해서 공무원 등을 접촉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의 3%가 뇌물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청렴한 선진국 수준이다. 반면에 아시아·태평양 비교 대상 국가들 중에서 뇌물을 준 경험이 많은 나라는 인도(69%), 베트남(65%), 태국(41%) 등이다.

그런데 GCB는 전혀 다른 또 하나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부패 정도가 낮은 것과 달리, 시민들은 사회의 상충부에 뇌물이 만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사회 중요 부문의 청렴도를 평가한 결과를 보자. 시민들은 국회의원, 공무원, 기업고위경영인 등 한국 주요 권력 집단의 부패 수준이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국민들의 인식은 아시아·태평양 비교 대상 국가에서 최악인 수준이다.

한국의 부문별 부패 수준(점)
(‘전혀 부패하지 않다’ 1점, ‘일부 부패가 있다’ 2점, ‘상당수가 부패하다’ 3점, ‘모두 부패하다’ 4점으로 하여 계산)
 한국의 부문별 부패 수준(점) (‘전혀 부패하지 않다’ 1점, ‘일부 부패가 있다’ 2점, ‘상당수가 부패하다’ 3점, ‘모두 부패하다’ 4점으로 하여 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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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들이 인식하는 부패의 수준을 다른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좀 더 자세히 비교해 보자. 국민들이 부패 수준이 높다고 판단한 집단은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부패 지수는 3.10점으로 타이(2.94점), 파키스탄(2.77점), 홍콩(2.03점), 오스트레일리아(2.00점) 등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공무원의 부패 수준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도 비교 대상인 아시아·태평양국가들 중에서 가장 나빴다(2.93점). 홍콩(1.93점), 호주(2.05점), 대만(2.12점), 일본(2.24점)에 비해 점수가 좋지 않다. 더 충격적인 점은 국민이 인식하는 종교지도자의 부패 수준 역시 아시아·태평양 비교 대상 국가 중 최악이라는 점이다. 미얀마, 몽골 등의 국가와는 상당히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 밖에 한국 국민들은 지방의회의원과 기업경영자의 청렴도가 낮다고 인식한다. 대통령(또는 수상)의 부패 인식 평가는 태국 다음으로 캄보디아와 함께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법원판사는 캄보디아, 파키스탄, 미얀마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세무공무원은 파키스탄, 말레이시아에 이어 3위이며, 경찰은 15개국 중 중간 수준인 8위를 차지하였다. 경찰이 다른 부문보다 상대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는 다른 아시아·태평양 국가의 국민들이 경찰을 가장 부패한 집단으로 보는 것과 상당히 차이가 있다.

한국사회 각 부문의 부패 정도를 비교하여 보면, 국민들은 국회의원이 가장 부패한 집단이라고 보고 있으며, 지방의회의원, 공무원, 기업경영자들이 그 뒤를 잇는다('전혀 부패하지 않다' 1점, '일부 부패가 있다' 2점, '상당수가 부패하다' 3점, '모두 부패하다' 4점).

여기에서 특징적인 점은 대통령의 부패 정도에 대한 평가가 타이에 이어 2위권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결과는 2016. 9.12 - 2016. 11.3일에 걸쳐서 이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과 관련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스캔들의 영향이 충분히 반영되어 있지 않았을 수 있다.

부문별 부패 수준 국가별 비교(점)
 부문별 부패 수준 국가별 비교(점)
ⓒ 이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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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사용한 자료는 세계부패바로미터 조사이다. 세계부패바로미터(Global Corruption Barometer, GCB)는 국제투명성기구에서 세계 주요 국가의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각 국의 부패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사회 각 부문의 부패 정도에 대한 조사와 일반 국민들이 경험한 뇌물 제공 빈도를 측정하는 것이 이 조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에 대한 조사는 2016.9.12에서 11.3에 걸쳐서 유·무선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진행되었다(95% 신뢰구간에서 +/-3.1%포인트). 이 번 조사는 중동지역을 제외한 아시아지역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2017년 조사 결과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그리고 이 조사는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부패 문제를 이해하는 데 소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아울러 향후 한국사회가 나아가야할 부패추방정책에 상당히 큰 의미를 던지고 있다. 이 조사가 우리 사회의 반부패정책에 던지는 함의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겠다.

첫째, 지난 1월 발표된 CPI(부패인식지수)와 GCB에서 한국의 부패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다. 두 조사는 한국 사회의 부패가 심각하다는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시민의식에 비추어 보아도 권력집단의 부패는 부끄러운 수준이다.

둘째, 보통의 시민들이 일상생활과 관련된 뇌물은 선진국 수준으로 낮다. 이 점에서 우리 사회는 상당히 깨끗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일반 시민들이 접촉하는 정부의 각종 민원창구나 경찰, 법원, 학교, 의료시설 등에서의 뇌물 관행은 상당히 낮은 나라에 속한다.

셋째, 한국 사회의 부패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하나의 시사점을 주고 있다. 시민의 일상적인 생활과 관련된 일상의 부패는 선진국 수준으로 좋아졌지만 고위층의 부패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비교하여도 최악의 수준이라는 점이다. 두 지표는 뚜렷한 대비를 보여주고 있어 우리 사회가 부패추방을 위한 사회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권력층이 중심이 된 거대 부패(Grand Corruption)가 문제라는 것이다.

넷째, CPI(부패인식지수)와 GCB(세계부패바로미터)의 비교에서 찾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의미는 일반 시민들이 한국 사회의 권력집단에 보이는 극히 부정적인 시각이다. GCB 조사결과는 CPI 조사결과에 비해서 훨씬 부정적이다. CPI는 아시아 국가들에서 중상위 수준을 보여주고 있지만 GCB 결과는 아시아·태평양 국가들 중에서 하위권이다. 이 둘 사이의 차이가 중요한 이유는 두 조사가 이루어진 조사 대상의 차이 때문이다.

CPI는 국내·외 고위기업경영자와 전문가를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진 반면에 GCB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에 주목하여야 한다. CPI 조사 대상 집단과 GCB 조사 대상 집단의 차이가 있다. GCB 평가가 CPI에 비해서 훨씬 낮다는 원인을 필자는 빈발하고 있는 고위층의 대형 부패사건의 영향,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사회의 상층부에 대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시각에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두 조사는 모두 인식조사이어서 조사 대상자의 인식이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GCB는 의식조사이다. 따라서 실질적인 부패수준과는 일정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국가별로 사회 구조, 사회적 상황, 국민들이 부패를 인식하는 방식 등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GCB 조사 결과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이러한 점을 충분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이 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의 부패 양상과 수준, 그리고 부패에 대한 시민들의 시각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는 유의미한 자료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상학씨는 한국투명성기구 상임이사입니다.



태그:#GCB, #GLOBAL CORRUPTION BAR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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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 한국본부 / 한국투명성기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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