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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때, 많은 시민은 "친일독재미화" 교과서를 우려하며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는 국정교과서 폐지를 발표했고, 한국사 과목은 다시 검정교과서 체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다면 "친일독재미화" 교과서를 폐지했으니, 앞으로의 교과서는 그 반대인 "항일민주" 교과서가 되어야 할까. 그렇게 된다면 올바른 역사 교육을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무리 좋은 뜻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런 방향 설정은 옳지 않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는 것은 애초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올바른 역사 교과서에 대한 환상

교육부 국정교과서 소개 홈페이지, "올바른 역사교과서" 라는 문구가 보인다.
 교육부 국정교과서 소개 홈페이지, "올바른 역사교과서" 라는 문구가 보인다.
ⓒ 교육부 홈페이지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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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가 검정교과서를 폐지하고 국정교과서를 도입한 근거는 바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이다.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논란은 박근혜 정부 이전부터 끊임없이 있었다.

2011년에는 '자유민주주의'를 비롯한 주요 용어의 사용을 두고 논란이 있었고, 금성출판사의 근현대사 교과서는 "좌편향" 교과서라는 색깔론 공세의 피해를 보기도 하였다.

2013년에는 뉴라이트 등 보수학자들이 주축이 돼 만들어진 교학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고, "친일·독재 미화" 교과서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이번 국정교과서까지, 그간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모든 논란은 결국 "친일독재미화", "좌편향" 이라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한쪽은 "친일독재 미화"를 막는 게 올바른 역사 교과서로 생각했고, 반대쪽은 "좌편향"을 막는 게 올바른 역사 교과서라고 생각했다. 방향만 다르지 양쪽은 모두 올바른 역사 교과서의 환상을 공유하고 있다.

친일독재미화 교과서라 반대합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 12일 국정교과서 폐지를 밝히며 "더이상 역사 교육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이용되지 않아야 한다는 대통령의 확고한 의지를 보인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많은 시민은 환호했고, "친일독재미화" 교과서의 폐지를 기뻐했다. 하지만 "국정"이라 환호하는 여론은 크지 않았다.

정치권은 "친일독재미화"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
 정치권은 "친일독재미화" 국정교과서를 반대했다.
ⓒ 더불어민주당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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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국정교과서 관련해서 정치권의 메시지도 친일독재미화 비판에 맞춰져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4년 국정교과서 반대 피켓을 들고 이순신 동상 앞에 섰으며, 서명운동을 한 바가 있다. 분명 국정교과서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친일독재미화"에 모든 초점이 모이면서 결국에는 국정교과서가 "국정"이라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시민이 잊거나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전체주의와 국정교과서

태평양전쟁 시기에 접어드는 1930년대 중반부터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검정에서 국정으로 바뀌었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천황에 대한 충성심을 높이고 애국심을 고취한다는 목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자리를 잃은 일본의 교과서 업체들이 조선용 검정 교과서를 제작하기 시작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박정희 시절에도 국사 교육이 강조되었다. 국민의 애국심, 충성심을 고취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종로에 들어섰고, 전국 각지의 역사 유적지가 이러한 일환으로 조성 및 복원되었다. 작은 사당에 불과했던 현충원은 성지화되었다. 행주산성, 오죽헌 등등의 전국의 크고 작은 역사 유적지에서 박정희가 쓴 현판, 박정희의 이름이 들어간 건립비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유신체제와 함께 역사 교과서도 국정화 체제로 전환되었다.

전체주의하에서 민족주의 역사 교육 강화는 필수적인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다양한 교과서는 존재할 이유가 없었다. 다양한 의견은 없고 하나의 의견만 존재해야 했던 시대였다. 민주사회의 기본은 다양한 시민들의 목소리고, 전체주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막는 폭력이다. 이러한 폭력을 반대하는 시각의 연장선에서 국정교과서는 "국정"이라는 이유만으로 폐지되어야 했다. 폭력을 행하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국정교과서를 반대할 때 "친일독재"는 그 아래의 문제이다.

해법은 한국사에 대한 강박을 버리는 것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모임의 포스터. 이순신 동상이 가지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국정교과서를 지지하는 모임의 포스터. 이순신 동상이 가지는 상징성은 무엇일까.
ⓒ 올바른 교과서를 지지하는 지식인 50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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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교과서 찬성과 반대 시위에도 공통점이 있다. 모두 세종로의 이순신 동상 앞에서 열린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각 주최자는 이순신 동상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의 상징이라서 생각해서 장소를 선정하지 않았을까. 찬성과 반대 모두 전체주의, 민족주의의 상징물 아래에서 천명되었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시각이 그래왔던 것과 같다.

과감한 주장이지만 국정교과서의 망령을 떨쳐내는 것은, 우리 사회에 진리처럼 각인된 한국사 교육에 대한 강박을 깨는 것이 시작이라고 본다. 지난 몇 년간, 한국사 교육이 강조되며 한국사는 수능에서 필수가 되었고, 공무원 시험에서도 필수가 되었다. 유명 예능프로그램에 한국사 강사가 출연해 "자랑스러운" 한국사를 알려주고, 아이돌 가수가 한국사 인물을 모르면 비난받는다. 자랑스러운 한국사라면 누구나 알아야 한다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적 강박관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그러한 강박은 올바른 역사 교육을 확립하겠다는 국정교과서의 탄생으로 귀결되었다. 한국사 수능 시험 필수와 국정교과서는 모두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되었다.


태그:#국정교과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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