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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경이롭고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한 제천 남근석.
 자연의 경이롭고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한 제천 남근석.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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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올 봄날에 일흔을 못 넘기고 떠난 가까운 지인이 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삶에 대해 이런저런 상념에 빠져들다 일상에 묶여 한동안 잊고 살았던 산이 문득 그리워졌다. 세상사로 인해 지친 마음을 늘 다독거려 주던 산으로 한걸음에 달려가고 싶던 차에 창원봉우리등산클럽 회원들이 가는 충북 제천 동산(東山, 896m) 산행을 함께 나서게 되었다.

지난 14일 오전 8시 마산역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갑오고개(충북 제천시 청풍면 학현리)에 이른 시간은 11시 20분께. 구부러진 고갯길을 오를 때 갑자기 차멀미가 나서 산행 초입부터 머리가 자꾸 어지럽고 속도 울렁거렸다. 더군다나 가파른 오르막이 계속 이어져 숨이 턱까지 차올라 연신 거칠게 뿜어내는 내 숨소리가 요란스레 들려오는 듯했다. 그래도 1년 반 만의 산행이라 산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는 일행.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는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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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 제천 동산(896m) 정상에서.
 충북 제천 동산(896m)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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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30분 정도 걸어갔을까.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는 구간이 나왔다. 예전엔 스릴을 즐기는 재미가 쏠쏠해서 바위 타는 산행이 꽤나 신났었다. 그런데 오랜만의 산행이라서 그런지, 나이를 먹어 가며 도전하려는 용기가 사그라져서 그런지 지레 겁부터 났다.

하지만 혼자 걸으면 힘든 길도 일행이 있으면 마음이 든든해진다. 그저 산이 좋아서 같은 길을 걷다 보면 일면식이 없는 사이라도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 로프는 바위를 타는데 필요한 안전장치이나 길을 같이 걷는 산객들은 자연에 대한 감탄과 경외심이 매개가 되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의 끈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1시께 동산 정상에 올랐다. 제천시 금성면 성내리와 단양군 적성면 하원곡리에 걸쳐 있는 동산은 새목재와 갑오고개 사이에 우뚝 솟은 산이다. 새목재는 까치성산으로 불리던 작성산과 동산을 이어 주는 길목 역할을 하는 곳이다.

    오솔길 같은 평탄한 숲길을 걷기도 하고
 오솔길 같은 평탄한 숲길을 걷기도 하고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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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서 도시락을 끄집어내 일행들과 함께 이곳서 점심을 먹었다. 제피잎을 섞은 가죽나물무침, 가리비전, 삶은 낙지 등 맛난 반찬을 챙겨 온 분들 덕분에 즐거운 식사였다. 정상에 이르렀다는 기쁨에 점심밥까지 먹고 나니 피로가 가시면서 새로운 힘이 솟구치는 것 같았다. 배낭을 다시 메고 유쾌한 발걸음으로 이내 중봉을 향했다.

군데군데 로프 잡고 바위를 타는 아슬아슬한 길로 잘못 들다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야 하는 아슬아슬한 길들이 이어지고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야 하는 아슬아슬한 길들이 이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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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초록빛 나뭇잎들을 간질거리는 평탄한 숲길이 이어졌다. 걷기에 그다지 무덥지 않아 여름 산행으로 딱 좋은 오솔길 같은 능선길이다. 어느새 중봉(892m)에 도착하였는데 쉬지 않고 곧장 성봉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번 산행길에서는 멋들어지게 생긴 소나무들을 꽤 만날 수 있었다. 사진을 찍으면 그대로 한 점의 분재 작품이 되는 멋진 소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중봉(892m)에서.
 중봉(892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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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봉(804m)에서.
 성봉(804m)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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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 발을 헛디딜까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혹 발을 헛디딜까 조심스럽게 내려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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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 따라 간간이 조망을 즐기면서 30분가량 걷다 보니 성봉(804m)에 도착했다. 그런데 성봉에서 길을 잘못 들어 그만 예정된 산행 코스와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유격훈련을 받는 것도 아니고 위험하게도 군데군데 로프를 잡고 바위를 타야 하는 아슬아슬한 길이었다. 로프를 잡고서도 혹 발을 헛디딜까 내내 두려웠고 어찌할 방법이 없어 바위 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썰매 타듯 내려가기도 했다.

생각지도 않게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은 아스라이 보이는 남근석 때문이었다. 멀리 무암사 같아 보이는 절집이 어렴풋이 보일 때만 해도 설마설마했는데, 점점 윤곽을 드러내는 거대한 돌의 형상이 11년 전 가을이 짙어 가던 무렵 감동으로 마주했던 바로 그 남근석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마주한 남근석 앞에서 옛 추억에 잠기다.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마주한 남근석 앞에서 옛 추억에 잠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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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한 바위들을 타며 너무도 힘들게 내려온 탓에 몸이 지칠 대로 지쳐 있었음에도 오랜 세월이 지나 다시 남근석 앞에 서니 옛 감동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내가 꼴린다는 말 할 때마다
사내들은 가시내가 참… 혀를 찬다
꼴림은 떨림이고 싹이 튼다는 것
무언가 하고 싶어진다는 것
마음속 냉기 풀어내면서
빈 하늘에 기러기 날려보내는 것

- 함순례의 '꼴림에 대하여' 일부

동산의 생명력, 더 나아가 경이롭고 강한 자연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듯한 우람한 남근석. 왠지 야릇한 기분도 들긴 하지만 자연이 빚은 예술적 형상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우리들 삶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가 오히려 이로움을 주기도 하는 것 같다. 잘못 들어선 길에서 지금보다 훨씬 젊었던 시절의 나를 새삼 발견하고 잠시나마 옛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산은 내겐 그리움이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어쩌면 나 자신으로 돌아오는 길인지도 모른다. 내가 걸어온 삶의 시간들이 헛된 낭비가 아니었기를 바라며 이제는 정말이지, 삶의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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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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