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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구 이리)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픈 속살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제강점기의 동네 이름과 상가(이리극장, 대교농장) 여관(나루토) 관공서(철도관사, 동양척식주식회사 이리지점 관사 및 직원사택, 익옥수리조합, 이리농림학교 축산과 교사)등이 시간과 오가는 사람만 달리할 뿐 당시의 상흔을 오롯이 품고 있다. 또 익산역(구 이리역)은 일제의 가혹한 수탈, 강제 부역과 공출의 역사적 현장이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원도심 상권이 무너지면서 개발이 멈추다시피 했고 상가와 주택의 공실이 늘어나면서 찾아오는 사람이 적어 당시 현장이 어느 정도 보존될 수 있었던 역설적인 아픔의 현장이기도 하다.

최근 원도심 살리기 운동으로 활기를 찾고 있는 익산역 앞 문화의 거리는 역사의 아픔과 치욕의 기억을 간직할 것인지 씻어낼 것인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익산 최고 번화가에 지어졌던 나루토 여관이 그 논란의 중심에 서있다.

나루토여관(鳴門旅館)은 일제 식민시대 사카에초(榮町-영정, 현재 중앙동)에 지어졌다. 일본 시코쿠(四國)의 도쿠시마현(德島縣) 출신 일본인이 자신이 살던 곳의 지명(鳴門)을 따서 '나루토'로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현재 일본의 도쿠시마현에도 오래된 나루토 호텔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본채는 일본식 목조 건축물로서 평면은 'ㄱ'자형으로 2층 규모이고 다다미방, 도코노마, 오시이레(붙박이 벽장)가 그대로 남아있다. 

도코노마[床の間 ] 도코[床-상]와 같은 말이다. 일본식 방의 상좌(上座)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으로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꾸며놓는다. 보통 객실에 꾸민다.
▲ 나루토 여관(일제 강점기 일본인이 지은 여관) 도코노마[床の間 ] 도코[床-상]와 같은 말이다. 일본식 방의 상좌(上座)에 바닥을 한층 높게 만든 곳으로 벽에는 족자를 걸고 바닥에는 꽃이나 장식물을 꾸며놓는다. 보통 객실에 꾸민다.
ⓒ 나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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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일제가 물러가고 순천여관과 홍도여관으로 이름과 주인이 바뀌고 개·보수를 하며 한 세기를 버텨왔지만 세월을 부침을 비켜 갈 수는 없었다.

주거환경 개선사업 지역으로 함께 포함된 인근의 익산문화재단 건물(구 익옥수리조합)은 등록문화재로 등재됐지만 나루토 여관은 오랫동안 방치된 탓에 건물상태가 낡아 문화재 등재가치는 적은 편이다.

일제 강점기 최고 번화가에 있던 나루토 여관. 관리 소홀로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다.
▲ 쓰러질 듯한 나루토 여관 일제 강점기 최고 번화가에 있던 나루토 여관. 관리 소홀로 붕괴될 위기에 처해있다.
ⓒ 나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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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의 바람과 함께 쓰러질 듯 겨우 버티다 잊혀질 것만 같았던 나루토 여관은 2년 전 장경호 회장(익산시 도시재생 주민협의회)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장경호 회장과 인근 주민들은 나루토 여관을 단순한 건축물로 보지 않고 도시재생과 문화관광 자원으로서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시민들을 만나 온·오프라인 서명운동을 하고 근대문화재, 도시재생 전문가 등을 수소문하여 SNS를 통해 널리 알리는 등 나루토 여관에 대한 관심을 호소하였다. 결과 전국의 관련 전문가들도 나루토에 대한 가치에 대해 큰 관심과 성원을 보내고 있다.

최근 익산시는 장경호 회장과 함께 '나루토여관 활용을 바라는 시민들 모임'과 임형택 시의원의 요청에 의해 2017년 2월 원광대학교 건축학 교수에 의뢰하여 조사 작업을 진행하고 의견서를 냈다.

이후 '나루토여관 활용을 바라는 시민들 모임'은 아파트 시행사인 LH와 익산시 관계부서, 익산시의회와 시민들을 한데 모아 간담회를 개최하고 나루토 살리기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결과적으로 나루토 여관을 실측하여 자료로 남긴다는 데 공감을 얻어 내는 성과를 냈다. 하지만 원형보존이 아닌 실측을 통한 자료 보존의 수준에 그쳐 아파트가 들어서면 나루토 여관은 해체될 것으로 보인다.

장경호 회장(우측 하단) 과 '나루토 여관 살리기 시민 모임'이 주관한 간담회 모습
▲ 나루토 여관 살리기 간담회 장경호 회장(우측 하단) 과 '나루토 여관 살리기 시민 모임'이 주관한 간담회 모습
ⓒ 나영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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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광대 건축학 교수는 "나루토여관은 실측 및 사진촬영 등을 통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된다"며 "기록으로 남겨놓을 경우 필요하다면 다시 복원할 수도 있고, 관련 자료들을 문화예술의 거리에 조성되는 익산근대 박물관에 전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는 검토 의견서를 내놓았다.

임형택 시의원은 "익산시가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면 더욱 효과적으로 복원하고 활용할 수 있었을 텐데, 사전에 대응하지 못해 아쉽다"며 "현재 문화재청에서도 근대문화재 보호 등을 위해 제도개선, 예산확보를 추진 중이고 문재인 대통령도 근대문화유산 활용을 공약한 만큼 지역의 보배와 같은 유산을 쉽게 폐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로선 LH가 실측조사를 하여 자료와 활용 가능한 자재를 보관하는 것이 최선이다"고 말하면서 "익산시 역사문화재과, 주택과는 즉시 철거를 중단하고 실측조사가 될 수 있도록 대책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의 후쿠치야마 공립대학에서 14년 간 교수로 근무하고 현재 인천대학교에 재직 중인 이정희 교수가 화교정착역사와 남부시장 주단포목거리 조사를 위해 지난 5월 익산을 방문하였다.

이 교수는 인천, 대구, 부산 등의 근대유산보존에 관한 많은 연구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전문가이다. 이교수는 "익산의 근대문화유산이 잘 보존된다면 고대문화와 잘 조화되어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고, 구도심의 쇠퇴를 나루토 여관과 같은 근대건축물과 스토리텔링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진행한다면 인구가 증가하고 상권도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소중한 근대문화 유산이 사라지는 것은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며 "나루토여관을 잘 보수하여 게스트하우스와 근대자료관으로 활용한다면 일본인, 중국인 관광객도 올 것이다"고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근대 이리 역사의 일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소 나루토여관. 새로운 역사 컨텐츠를 개발하고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성공적인 사례로 만드는 것은 더욱 그렇다. 관광객 유치와 구도심 활성화의 프레임에 갇혀 몇 안 남은 역사의 흔적을 홀대하고 또다시 새로운 기억을 만드는 사업은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다. 살아 있는 역사와 공간을 재대로 활용할 수 있는 지혜와 행정의 뒷받침이 절실하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익산참여연대 소식지에도 실릴 예정입니다.



태그:#익산 나루토 여관, #익산 근대문화, #익산 문화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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