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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오전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포철중학교를 찾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23일 오전 수능시험을 치르기 위해 포철중학교를 찾은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 조정훈

"제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게 기도해주세요."

수학능력시험(수능)을 하루 앞둔 22일 저녁 비상계획 최종 확인을 위해 통화한 경상북도교육청 관계자가 지진 상황을 가정한 기자의 질문에 답하다 이렇게 간절한 바람을 전했다. 이는 포항에서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과 그들 가족 대부분의 염원이기도 했다.

포항의 지진계는 수능 수험생들의 입실이 완료될 때까지 강력한 여진 없이 조용했다. 수험생과 가족들, 교사들은 수능날만큼은 아무 탈이 없기를 소원했다.

배웅 나온 교사들에게 와락 안기는 수험생들

 23일 오전 수능 제80지구 제7시험장이 마련된 포항 이동고등학교 앞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안아주고 있다.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된 수능이 실시된 이날 포항 지역 수험생은 6098명이다.
23일 오전 수능 제80지구 제7시험장이 마련된 포항 이동고등학교 앞에서 교사가 학생들을 안아주고 있다. 지진으로 일주일 연기된 수능이 실시된 이날 포항 지역 수험생은 6098명이다. ⓒ 정민규

23일 포항 지역 수험생은 6098명. 12곳에 흩어진 시험장에서 일제히 시험이 치러진다. 제80지구 제7시험장이 마련된 포항이동고등학교에서도 505명이 수능을 치른다. 시험을 치르기 편한 복장을 한 수험생들이 교문을 통과할 때마다 응원 나온 학교 후배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교사들은 자신에게 쪼르륵하고 달라와 와락 안기는 수험생의 등을 토닥여 줬다. 담임교사들은 수험생들이 한 명씩 들어갈 때마다 명부를 확인해 이름을 표시했다.

포항여고 김경민(39) 교사는 "지난 일주일 동안 아이들이 유언비어에 현혹되지 않는 데 중점을 두고 지도를 했다"면서 "특히 학교가 지진 피해로 수험장에서 취소되는 일로 학생들이 동요가 커 고민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 교사는 "포항 지역 수험생들이 지진으로 다른 지역 수험생들보다 불리한 조건에서 시험을 치르게 돼 교사로서 안타깝다"면서 "제발 오늘은 무사히 시험이 치러지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수험생들 "시험 칠 수 있게 돼 다행"


 23일 수능시험이 치러진 포철중학교 교문 앞에서 한 학생이 수험표를 들고 시험실의 위치를 찾고 있다.
23일 수능시험이 치러진 포철중학교 교문 앞에서 한 학생이 수험표를 들고 시험실의 위치를 찾고 있다. ⓒ 조정훈

포항고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르려던 수험생 561명은 대체시험장으로 바뀐 포철중학교에서 시험을 치른다.

일찍부터 시험장을 찾은 학생들은 수험표를 들고 교문 앞에 붙여진 배치도에서 자리를 확인한 후, 학교 안으로 향했다. 수험생들을 응원하기 위해 나온 후배들은 큰 목소리로 "화이팅"을 외치고 "선배님 힘내세요"라고 응원했다.

이승건(포항중앙고) 학생은 "수능을 바로 코앞에 두고 지진이 발생해 너무 힘들었다"면서 "주로 집에서 공부했는데 조그만 흔들림에도 불안하고 심리적으로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정재(포항이동고) 학생은 "심리적으로 불안했지만 집에서 공부하면서 이겨내려고 노력했다"며 "오늘 새벽까지도 학교를 또 옮겨 시험을 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눈물 보인 학부모들 "아이들 보니 가슴 아파"

 23일 오전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포철중학교 앞에서 수험생 부모가 학생들을 응원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23일 오전 수능시험이 치러지는 포철중학교 앞에서 수험생 부모가 학생들을 응원하는 피켓을 들고 서 있다. ⓒ 조정훈

학생들과 함께 각 수험장을 찾은 학부모들은 교문 앞에서 학교를 바라보며 자신의 자녀가 제대로 교실을 찾아갔는지 걱정하는 모습도 보였다. 일부 학부모는 피켓을 만들어 와 수험생들을 응원했다.

하지만 지진이 발생한 후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학부모는 자녀를 배웅한 뒤 등을 돌린 채 눈물을 닦기도 했다.

포항이동고 앞에서 재수생인 딸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이승운(51)씨는 "집이 포항에서 제일 높은 48층 아파트에서도 41층이라 유독 진동이 컸다"면서 "딸아이가 겁이 많아 오랫동안 준비해 온 시험을 잘 치르지 못할까 걱정이다"는 우려를 전했다.

오민환(48)씨는 한참을 서서 학교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오씨는 "지진으로 아이가 집에 머물 수가 없어 막바지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면서 "아이가 인터넷에서 포항 아이들 때문에 수능이 연기됐다는 악성 댓글로 상처도 많이 받아 부모로서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고 말했다.

포철중학교에서 만난 학부모 김성희(45)씨는 "학교 앞에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저 버스를 타야 되는 거 아닌가 하는 마음에 지진이 더 실감 나더라"며 "시험을 치르다 지진으로 포기하고 나오면 어쩌냐는 생각하니 가슴이 아프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시험 시작되자 비상 수송 버스 철수... 마지막까지 긴장

 23일 오전 수능 제80지구 제7시험장이 마련된 포항 이동고등학교에서 대기중이던 비상 수송 버스가 운동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23일 오전 수능 제80지구 제7시험장이 마련된 포항 이동고등학교에서 대기중이던 비상 수송 버스가 운동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 정민규

오전 8시 10분 입실이 마감되자 학교 운동장에서 대기하던 비상수송용 버스가 외부로 철수했다. 만약 시험 중 지진이 발생하면 학생들이 운동장으로 대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능은 시작됐지만 긴장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지진계가 설치된 각 시험장에는 소방관과 경찰, 건축구조 기술자, 의사, 심리 상담사들이 배치되어 있다. 비상 추가 인력도  언제든 투입될 수 있게끔 대기 중이다.

학생 심리 상담 업무를 맡고 있는 박진숙 경상북도교육청 장학사는 "지진을 겪은 아이들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가 있어 신경을 쓰고 있다"면서 "시험 중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긴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진#포항#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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