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 가운데 하나인 감귤. 맛과 영양, 효능도 탁월해 '국민과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 가운데 하나인 감귤. 맛과 영양, 효능도 탁월해 '국민과일'로 불러도 손색이 없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감귤.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 가운데 하나다. 영양이나 효능도 탁월하다. 감귤은 알칼리성 식품으로, 비타민C가 듬뿍 들어있다. 피부 미용과 피로 해소, 감기 예방에 좋으며, 어린이 발육과 고혈압·항암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맹이는 물론 껍질까지도 다양한 효능을 지니고 있다. 한방에서는 귤껍질을 약재로 쓴다. 목욕할 때 쓰기도 한다. 버릴 것 하나 없는 과일이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진 소안도 감귤밭. 소안도에서는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무농약으로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진 소안도 감귤밭. 소안도에서는 농약 한 방울 치지 않고 무농약으로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소안도 주민이 감귤을 수확하고 있다. 소안도에서는 이목리, 부상리를 중심으로 농가 45곳에서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소안도 주민이 감귤을 수확하고 있다. 소안도에서는 이목리, 부상리를 중심으로 농가 45곳에서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새콤달콤한 감귤을 재배하고 있는 남녘의 섬으로 갔다. 한반도의 끄트머리, 완도 화흥포에서 뱃길로 1시간이 채 안 걸리는 소안도다. 소안도의 감귤밭은 11만㎡가량 된다. 10여 년 전부터 감귤 재배를 시작했다.

지금은 이목리, 부상리를 중심으로 농가 45곳에서 감귤을 재배하고 있다. 모두 농약 한 방울 치지 않는 무농약 재배다. 수확은 지난 11월 초부터 시작됐다. 12월 말까지 60t 남짓 딸 것으로 예상된다.

주민들의 설명에 따르면, 소안도 감귤은 쉽게 물러지지 않는 게 특징이다. 20일가량 보관할 수 있다. 무농약 재배를 한 탓에 상대적으로 껍질이 거칠다. 풍부한 일조량과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덕에 당도가 높다. 맛이 좋다. 껍질은 얇다. 상품성이 좋다는 평을 받고 있다.

학교 세우며 일제에 저항한 주민들

 소안도 가는 길. 소안도는 보길도, 노화도와 인접해 있는 완도의 섬이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항일의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안도 가는 길. 소안도는 보길도, 노화도와 인접해 있는 완도의 섬이다. 일제강점기를 전후해 항일의 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지금의 소안도는 감귤 재배지로 유명하지만, 본디 항일의 섬이었다. 독립유공자 19명과 애국지사 57명을 배출했다. 함경도 북청, 경상도 동래(현 부산광역시)와 함께 세 손가락에 꼽힌다. 배를 타고 소안도에 들어가면 표지석이 먼저 눈에 띈다.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고 새겨져 있다.

소안도의 항일 역사는 깊다. 18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맹선리 짝지에 막사를 짓고 어업을 하던 왜인들을 섬주민들이 쫓아냈다. 동학혁명 땐 동학군이 소안도에 들어와 훈련을 했다. 여기에 접장을 따로 뒀을 정도로 동학교도가 많았다. 1894년 12월엔 동학의 지도자 이강욱, 나민홍, 이순칙 등 7명이 이 섬에서 죽임을 당했다.

 소안도에서 본 당사도 전경. 1909년 소안도 주민들이 이곳 자지도(당사도)의 등대를 습격, 일본인 간수를 처형했다.
 소안도에서 본 당사도 전경. 1909년 소안도 주민들이 이곳 자지도(당사도)의 등대를 습격, 일본인 간수를 처형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소안도의 맹선리와 바닷가 풍경. 소안도는 항일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감귤을 재배하며 빼어난 풍광으로 여행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소안도의 맹선리와 바닷가 풍경. 소안도는 항일의 섬이었지만, 지금은 감귤을 재배하며 빼어난 풍광으로 여행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1909년엔 자지도(지금의 당사도) 등대 습격사건이 있었다. 일본이 우리의 수산물과 쌀 면화 등을 수탈해 갈 목적으로 세운 자지도 등대를 소안도 주민 이준화 등 6명이 습격했다. 등대를 지키고 있던 일본인 간수 4명을 처단하고 등대를 부숴버렸다. '의거'였다.

또한 1909년부터 1921년까지 13년간, 친일파 이기용에게 넘어간 토지소유권의 반환을 요구하는 지난한 투쟁을 벌여 승리를 거뒀다. 1913년엔 소안도에 있던 서당을 통·폐합해 신식교육기관인 중화학원을 설립했다. 비밀 항일단체와 배달청년회도 결성했다.

1919년 3.1운동에도 일찍이 참여했다. 서울 탑골공원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지 보름 만이었다. 소안도 주민 송내호, 정남국 등이 주도해 3월 15일 완도읍장에서 만세시위를 펼쳤다. 유관순 열사의 아우내장터 만세시위(4월 1일)보다 보름이나 빨랐다.

 주민 모금에 의해 설립됐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됐던 사립 소안학교. 토지반환 소송에서 승소한 주민들이 ‘배움만이 살길이고, 항일의 길’이라며 설립했던 학교다.
 주민 모금에 의해 설립됐으나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됐던 사립 소안학교. 토지반환 소송에서 승소한 주민들이 ‘배움만이 살길이고, 항일의 길’이라며 설립했던 학교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소안항일운동 기념탑과 기념관. 소안도의 항일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소안도 가학리에 있다.
 소안항일운동 기념탑과 기념관. 소안도의 항일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소안도 가학리에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사립 소안학교 설립과 강제 폐교사건도 있었다. 1921년 토지반환 소송에서 승소한 주민들은 '배움만이 살길이고, 항일의 길'이라며 사립 소안학교 설립을 결의했다. 곧바로 설립기금 1만 454원을 모았다. 현 시세로 1억 원이 넘는 돈이다. 이 기금으로 1923년 사립 소안학교를 세우고 학생 수 270명으로 개교했다.

당시 소안도에는 일본인이 세운 공립학교가 있었다. 일본 군무원 자녀 등 30여 명이 다녔다. 반면 소안학교에는 완도 해남은 물론 멀리 제주에서 학생들이 유학을 왔다. 소안학교는 일제에게 '눈엣가시'였다. 결국 일제는 국경일에 일장기를 달지 않는다, 국상에도 조의를 표하는 상장(喪章)을 붙이지 않는다, 독립운동가를 양성한다는 등의 이유로 강제 폐교 조치를 내렸다.

소안학교 강제 폐교에 맞서 섬 주민은 복교운동을 벌였다. 섬주민 1000가구 가운데 800가구가 참여했다. 일제 경찰로부터 보안감시 대상인 '불령선인'으로 불리며 온갖 감시와 고초를 겪었다. 감옥에 간 동료들을 생각하며 겨울에 이불을 덮지 않은 채 차가운 방에서 지냈다. 일제에 부역한 이들에게는 불씨를 나눠주지 않고, 경찰과는 말도 하지 않는다는 불언동맹도 실천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내부.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20명의 흉상과 함께 독립운동가 69명의 존영이 모셔져 있다.
 소안항일운동기념관 내부.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20명의 흉상과 함께 독립운동가 69명의 존영이 모셔져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소안도 주민들의 토지소유권 반환 요구 승기기념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세워져 있다.
 소안도 주민들의 토지소유권 반환 요구 승기기념비.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세워져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이같은 소안도의 항일정신은 가학리에 설립된 소안항일운동기념관에 가면 엿볼 수 있다. 기념탑과 함께 세워졌다. 소안도 사람들의 항일정신이 오롯이 밴 소안학교가 있던 그 자리다.

기념관에는 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은 20명의 흉상과 함께 독립운동가 69명의 존영이 모셔져 있다. 일제강점기 애국·애족 정신이 깃든 승리기념탑도 세워졌다. 현재도 나라사랑의 의미로 집집마다 365일 태극기를 내걸고 있는 섬이다. 뼛속까지 항일의 섬인 소안도다.

나무 776그루로 이뤄진 숲... 겨울에 가도 좋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소안도 미라리 상록수림. 갯돌해변과 어우러진 숲이 아름답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소안도 미라리 상록수림. 갯돌해변과 어우러진 숲이 아름답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소안도 미라리 해변. 갯돌해변이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멋진 여행지다.
 소안도 미라리 해변. 갯돌해변이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한다.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멋진 여행지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소안도의 풍광도 빼어나다. 미라리와 맹선리의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갯돌해변과 어우러진 미라리에는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생달나무, 동백나무, 해송 등 776그루로 이뤄진 숲이 형성돼 있다. 면적이 1만6000㎡에 이른다. 여름은 물론 겨울에도 손색없는 관광지다.

맹선리에는 수령 200∼300년 된 후박나무 등 상록수 245그루가 해안선을 따라 방풍림을 형성하고 있다. 면적이 8500㎡에 이른다. 마을의 풍광을 아름답게 해준다.

소안도의 둘레길도 잘 다듬어져 있다. 대봉산 동쪽을 끼고 도는 북암과 비자리를 잇는 길이다. 오래전에는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던 길이다. 1980년대 들어 우회도로가 개통되면서 묵히다시피 했다. 소안도가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되면서 다시 단장됐다. 흔한 나무 데크를 설치하지 않고, 사람들의 손으로 직접 돌을 다듬고 흙을 다져 정비했다.

 소안도 맹선리의 빤스고개 표지석. 빤스고래는 가학산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맹선리와 진산리를 잇는 고갯길을 가리킨다.
 소안도 맹선리의 빤스고개 표지석. 빤스고래는 가학산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맹선리와 진산리를 잇는 고갯길을 가리킨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빤스(팬티)고개'로 가는 길. 빤스고개는 오래 전 소안도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길이다.
 '빤스(팬티)고개'로 가는 길. 빤스고개는 오래 전 소안도 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린 길이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가학산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맹선리와 진산리를 잇는 '빤스(팬티)고개'도 왠지 모르게 애틋하다. 맹선리 주민들이 건너편 진산리 들녘에서 수확한 볏단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속옷이 땀에 흠뻑 젖었다고 해서 이름 붙은 고갯길이다. 섬사람들의 애환과 추억이 서려 있다.

이 길을 천천히 걸으며 소안도 감귤로 목을 축이면 더 맛있다. 일제강점기 때 차디찬 감옥에서 겨울을 보내던 항일 지도자를 생각하며 이불도 덮지 않았던 소안도 사람들의 마음을 떠올려보는 것도 남다른 소안도 여행법이다.

 감귤나무와 어우러진 소안도의 민가. 일년 내내 태극기를 게양하는 섬답게 집에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감귤나무와 어우러진 소안도의 민가. 일년 내내 태극기를 게양하는 섬답게 집에 태극기가 내걸려 있다.
ⓒ 이돈삼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소안도로 들어가는 배는 완도 화흥포항에서 탄다. 아침 7시 첫배를 시작으로 7시 50분, 8시 50분, 9시 50분, 10시 50분 등 매 시각 50분에 출발한다. 하루 11차례 오간다. 뱃삯은 편도 6200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