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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에 지친 어느 날,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집어든 책 한 권이 저를 지옥에서 구해줬습니다. 작가의 한 문장에 고민이 풀리고 고뇌가 치유됐습니다. 아플 때 '약'이 돼준 책들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오은영, KOREA.COM)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오은영, KOREA.COM)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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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건 소아과 바닥에 널브러져 떼를 쓰는 아이 때문이었다.

아이는 생후 18개월이 되자 '엄마 바나나 먹고 싶어요' 등 기본을 갖춘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온몸으로 자기주장을 관철하려 했다. 마트에서 발견한 바나나를 당장 손에 쥐여 주지 않으면 바닥에 누워 브레이크댄스를 추듯 구르는 식이다.

그날 소아과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급한 일정이 있어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야 하는데, 정수기에서 물 떠 마시기에 재미가 들린 아이는 돌아가기 싫다고 뻗댔다. 내가 납치하는 양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우는 것으로 모자라, 엉덩이를 뒤로 빼고 상체를 뒤로 젖히며 유모차에 안 타려고 기를 썼다. 반값등록금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되는 대학생들이 부당한 처사에 저항하는 듯이.

나는 집에 가야 했다. 협조하지 않는 아이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만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숱한 육아서적과 기사, 방송에서 들은 게 있었다.

'아이에게 욱하거나 때리면 정서적으로 상처를 줄 수 있다.'
'말로 화를 설명해라. 소리를 지르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건 비교육적이다.'

스스로 해결해야 할 감정을 아이에게 푸는 부모만큼은 되고 싶지 않았다. 이미 목젖까지 차오른 화를 이 악물고 참았다. 남아 있는 체력을 바닥까지 긁어 힘으로 아이를 유모차에 앉힌 후 재빨리 병원 건물에서 벗어났다.

집에 가자마자 남편에게 애를 안겨주고 침대에 누웠다. '잘 참았어' 하고 나 자신을 다독이는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자아가 마구 크는 아이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흔들리는 모습이 한심했다.

아이만 낳으면 신사임당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와 서점에 놀러 간 어느 날이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육아·교육 분야 진열대를 둘러봤다.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가 눈에 들어왔다. 이전에도 서점 갈 때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서 봤던 책이지만 흘깃 째려만 보고 사진 않았다.

일부 육아 서적들처럼 저마다의 사정이나 삶의 맥락은 고려하지 않은 채 '이렇게 해'라고 훈계하는 책일까 봐 두려웠다. 그런 책들은 괜히 읽으면 아이를 향한 죄책감만 커질 뿐이었다.

이날은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거라도 읽어봐야 싶었다. 육아가 뜻대로 안 되는 부모 앞에 나타나 자상하면서도 엄격한 눈빛으로 솔루션을 제시하는 '애통령' 오은영 박사의 책 아니던가. 그에게는 왠지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책에는 원하던 정보가 있었다. 연령대별 훈육법과 아이가 못 참고 떼쓸 때의 대응법이 구체적으로 제시돼 도움을 얻었다.

육아 정보가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꿀팁'에 감동한 게 아니었다. 엉뚱한 대목에서 얻은 뜻밖의 조언이 마음의 족쇄를 풀어줬기 때문이다.

오은영 박사는 부모의 육아가 힘든 이유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하나는 연습이 없어서, 또 하나는 끊임없이 나를 내주어야 하는 과정이어서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를 내준다는 것은 더 사랑해 주고, 더 이해해 주고, 더 참아주는 것이다. 나의 시간을 아이에게 내주고, 나의 체력을 아이에게 내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어렵고 잘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매일 울고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훈련으로 능력을 쌓고 정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일. 개인의 욕심과 엄마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마음. 그게 나의 모성이었다.
 매일 울고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훈련으로 능력을 쌓고 정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일. 개인의 욕심과 엄마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하는 마음. 그게 나의 모성이었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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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아이가 태어나면서부터였다. 가끔 마음 어딘가에서 '나를 빼앗기고 있다'는 생각이 튀어나와 흠칫 놀라곤 했다. 유독 체력과 시간이 부족할 때 그랬다. 육아 때문에 잠도 편하게 못 자고, 운동도 편하게 못 하고, 여행도 못 가고, 영화관 나갈 여유도 없고…. 아이 때문에 못 하게 된 것만 자꾸 떠올랐다.

부모가 되면 자연스럽게 희생이란 게 되는 줄 알았다. 친정엄마에게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배우고 들어오며 자랐다. 아이만 낳으면 저절로 신사임당이 될 거라고, 출산의 순간 모성이 100% 이상 발휘돼 아이에게 한없이 배려하고 자애로운 엄마가 돼줄 거라고 믿었다.

모성은 본능이 아니었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아이는 부모의 체력과 시간으로 자란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포기하지 못했다. 편하게 먹고, 푹 자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던 나를 유보하는 게 쉽지 않았다. 불완전한 생명체를 지켜야 한다는 두려움, 수면 부족에 따른 피곤함과 짜증이 밀려올 때면 책임감을 쥐어짜 내 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울고 반성하고 되돌아보며 훈련으로 능력을 쌓고 정으로 사랑을 키워가는 일. 개인의 욕심과 엄마의 책임감 사이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 하는 마음. 그게 나의 모성이었다. 엄마로서 내어주는 일 역시 숙련 노동과 비슷해서 초보인 시절에는 늘 한계에 부딪히는 게 당연했다.

내어줄 수 있는 만큼만 내어주기

오은영 박사는 나를 내어주는 일이 힘들면 감정조절이 잘 안 되고, 위태로운 감정이 계속되면 순간적으로 욱할 확률이 높다고 지적한다. 그런 부모를 위한 해법 중 하나로 '언제나 아이를 최우선으로 대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아이에게 내어줄 수 있는 만큼만 내어주라는 뜻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을 넘어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려고 애를 쓰면 반드시 탈이 나게 돼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욱하고 후회하는 엄마들을 보면 평소에는 아이에게 과도하게 잘한다. 아이가 그림책을 읽어달라고 하면 원하는 대로 계속 읽어준다. 다섯 권만 읽어 줘도 될 것을 열 권 넘게 읽어 준다. 입에서 단내가 나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다 별안간 '벌써 몇 번째야? 좀 그만해. 두 권만 읽기로 했잖아' 하면서 버럭 화를 내 버린다. 이러면 아이에게 책을 읽어준 효과가 없다. 오늘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전해진 긍정적인 영향이 자기 전에 책을 읽어주면서 뱉은 욱으로 마이너스가 돼 버린다.

유기농 재료만 골라서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먹이고, 공부도 가르쳐주고, 그림책도 재밌게 읽어 주고, 좋다는 체험 학습도 데리고 다닌다. 뮤지컬도 관람시켜 주고, 박물관도 데리고 간다. 그러다가 한번 욱하거나 아이를 때리거나 하면 아이에게는 결국 마이너스다."

돌이켜보면 워킹맘이 되고서부터 내 육아는 무리의 연속이었다. 부모로서 낮 동안 함께해주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아이와 있을 때는 100% 이상으로 최선을 다하려 했다. 퇴근 후 체력이 바닥 나 입에서 단내가 나는데도 방긋 웃으며 인형극놀이를 무한 반복하고, 회사가 멀어 동이 트기 전에 출근해야 하는데도 새벽까지 아이를 위해 반찬을 만들었다. 주말에는 평일에 못 놀아준 만큼 함께 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피곤함을 무릅쓰고 온종일 박물관으로, 놀이동산으로 종횡무진 움직였다.

나의 갸륵한 노력을 아이는 당연히 알아주지 않았다. 반쯤 감기는 눈을 부릅뜨고 자정까지 놀아줬는데도 안 잔다고 소리 지르고, 새벽에 잠 안 자고 반찬을 만들어줬는데도 '밥 먹기 싫다'며 뱉어버리고, 즐겁게 놀자고 놀이동산에 데려갔더니 뜻대로 안 된다고 바닥에서 김밥 말 듯 구르고…. 그럴 때면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분노, 억울, 허무, 실망 등의 감정이 욱하고 치민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너는 도대체 왜 그래?'

오은영 박사는 "최선을 다하는 것은 좋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어야 한다"고 충고한다. 육아는 장기전이기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관건이라는 뜻이다. 그는 단 한 권이라도 체력이 허락하는 만큼만 기분 좋게 읽어 주는 육아법이 부모와 아이 모두에게 훨씬 좋다고 본다.

"스무 번 중에 열아홉 번은 친절한 엄마인데 한 번은 광분한다면, 차라리 그 열아홉 번을 너무 애쓰지 않는 것이 낫다. 그리고 그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 그게 아이한테는 훨씬 더 이롭다. 열아홉 번 애쓴 것이 다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애를 쓰는 것보다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하는 한 번을 안 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아이를 키울 때도 상위레벨이 있다. 아이에게 절대 욱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육아의 가장 상위 레벨의 가치다. 아무리 시간과 돈, 체력을 들여서 최선을 다해도, 부모가 자주 욱하면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다. 좋은 것을 먹여 주고 보여주는 것보다, 욱하지 않는 것이 아이에게는 백배 더 유익하다."

지금의 나는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아이를 위해 체력과 시간을 쓴다. 반찬을 만들기 힘들 때는 유아식 배달을 신청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아이와 일찍 잠들려 한다(아이가 협조를 안 하는 게 문제지만...).

무리하는 육아에서 벗어나자 감정조절도 한결 수월해졌다. 여전히 아이는 자기 뜻이 관철되지 않으면 울며 떼를 쓴다. 그럴 때면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미안하지만 이만큼만 해줄 수 있어' 하고 양해를 구한다. 아이에게 모든 걸 완벽하게 해주겠다는 목표치도 내려놨다. 때로는 좌절도 겪고 안 되는 것도 있다는 현실을 아는 게 아이의 교육에도 좋다는 생각이다.

몸이 덜 힘들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아이가 악을 쓰며 울고 사람 많은 데서 데굴데굴 굴러도 비교적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게 됐다. 그런 상황에선 여전히 머리가 새하얘지긴 하지만 '아직 모르는 아이니까 하나씩 가르쳐줘야지'라며 기다려주는 게 가능해졌다.

내려놓아야 내어줄 수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육아다.


못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오은영 지음, 코리아닷컴(Korea.com)(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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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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