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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소확행(小確幸)', 일상에서 찾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당신에게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나만의 소확행'을 소개합니다. [편집자말]
엄마, '소확행'이 뭔지 알아? 작지만 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을 이르는 말이래. 2018년 트렌드라나 뭐라나. 신조어 못 알아먹는다고 기죽지 마요. 엄마보다 훨씬 젊은 나도 인터넷으로 신조어 찾아서 공부하고, 변환기 돌려서 '야민정음(어떤 단어의 글자들을 모양이 비슷한 글자들로 바꾸어 쓰는 것)'을 이해하니까.

글쎄 엄마의 막내딸이 어느덧 '잔치는 끝났다'의 서른도 까마득한,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이 같은' 나이가 됐네 그랴. 엄마, 나는 '소확행'이 넘나 많아서 날마다 바빠 죽겠어.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게 잔뜩 있어서 마음이 종종걸음으로 바빠. 아침에 눈을 뜨면 이걸 하면 좋겠다, 저길 가야겠네, 누구 보고 싶다, 먼저 핸드드립으로 커피 한 잔 내리고 나서,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

엄마가 들으면 짠할 40대 비혼 딸의 소확행

 먼저 핸드드립으로 커피 한 잔 내리고 나서,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
 먼저 핸드드립으로 커피 한 잔 내리고 나서, 이렇게 하루를 시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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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참, 엄마한테는 말 안 했는데 지금 두어 달 일을 쉬고 있어요. 그래서 출근을 안 해. 오래 전부터 나한테 중요한 일들 정작 엄마한테는 말을 안 해왔어. 엄마는 나의 '소확행'이 크나큰 근심거리고, 나는 내가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한테 '웅변'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갑갑했거든.

나는 부모와 자식은 '따뜻한 수프가 식지 않을 거리'에 살아야 좋다는 영국 속담을 비틀어, 우리 사이에는 적어도 따뜻한 국이 식을 정도의 거리가 필요하다고 굳게 믿어왔어. 그렇지 않으면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사랑이 맞붙어 기어이 생채기를 내고 마니까.

엄마는 내 '소확행'을 들으면 막내딸이 짠해서 죽을 날 눈도 제대로 못 감는다고 할 거야. 가령 이런 '소확행'들. 내 평생 통장에 이천 만원 이상 있어본 적 없는데, 날마다 내 취향의 동네 카페에서 커피 마시는 재미로 살아(그러다 신나서 '망원동 동네 가게 지도'를 만들었어!). 이런 '된장질'을 알면 엄마한테 등짝 스매싱을 당하겠지. 근데 이건 암 것도 아냐. 그 카페에서 엄마가 천인공노할 내용의 'BL'(Boys' Love) 소설을 써요.

이른 아침 한가한 카페에서 미소년들의 '사랑과 전쟁'을 주조하는 전지전능 작가 시점의 나, 이런 우쭐함을 알간? 하루키처럼 하루에 원고지 30장은 쓰고 싶은데 나는 고작 두 단락 쓰고 자빠졌다고. 그러니 20대의 '소확행'으로 거론되는 인형 뽑기나 비트코인 투자를 하고 있을 짬이 안 나. 글쓰기만큼 돈도 안 들고 자기 충족적인 '소확행'도 없을 거야. 특히 남과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을 위한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의 글쓰기라면 더더욱. 

다달이 후원금이 찍혀있는 통장도 내 '소확행' 중 하나에요. 최저임금 올라서 활동가들 월급을 올려야 하는 시민단체에서 일했지만, 급여의 5%씩은 늘 후원해왔어. 내 몸으로 일한 정직한 돈으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생각에 뿌듯했거든요. 길냥이들 사료값은 후원에서 제외했어요. 똑같이 생긴 '젖소' 고양이들 이름 지어서 부를 때, 걔들이 사료 먹을 때도 뿌듯해.

우리는 한 번도 체온을 느껴본 적 없는 데면데면한 사이지만 나를 보고 중성화 수술을 위한 통 덫에 들어가는, 신뢰로 다져진 관계야. 엄마는 자식 없는 나를 긍휼히 여기시지만, 걔들이 내 새끼들이야, 엄마. 그러니까 나를 불쌍히 여기지 마소서. 걔들은 나와 달리 평생 AS가 필요하지도 않고 아주 독립적이니까.  

홈쇼핑 보다 온수매트를 사준다느니, 모직코트를 보낸다느니 하는 엄마의 제안을 앙칼지게 끊는 나는 쓰잘데기 없는 물건을 정리하는 쾌감으로 살아. 엄마 걱정처럼 우리 집이 좀 썰렁하지만, 난 작고 단순한 유단포로도 충분하더라고. 군더더기 없이 심플한 살림을 꾸리는 것도 내 '소확행'이야. 집을 아지트 삼아 집에서 빈둥거리는 나는 공간을 물건으로 채우지 않고 여유롭게 놓아두고 싶어요.

가끔 내가 절래 절래 거절해도 엄마가 사서 보낸 물건들 있지. 찾지 마요, 엄마. 상태 좋을 때 이미 다른 집에 입양 보냈어. '심플라이프' 때문만은 아냐. 엄마가 보낸 물건들을 보고 있자면 이토록 내 삶을 부정하려는 엄마의 의지가 느껴져 마음에 두드러기가 돋아. 그건 제발 내 방식대로 살게 해달라는 나의 저항이야.    
 
우리 집 살림을 소꿉장난이라고 타박하는 엄마는 내가 돈이 없어서 필요한 물건도 못 산다고 생각하지. 가난해서 궁상스럽게 산다고 생각하니 막내딸이 짠해 죽겠지. 그래서 내가 망원역 근처의 '아름다운 가게'나 'MIU(마켓인유)' 같은 세컨 숍에서만 옷을 사는 것에도 화가 나잖아. 엄마, 나는 그 곳을 내 공유옷장으로 생각해. 완전 내 스타일이야.

변덕이 죽 끓듯 하는 내가 입다 질린 옷들을 들고 가면 포인트를 주거나 기부금 영수증을 끊어줘. 이로써 저절로 옷장 정리. 나는 그 포인트를 이용해 패스트패션 주기처럼 휙휙 바뀌는 중고 매장의 옷들을 거저나 다름없이 사 입고 말이야. 그 덕에 제 돈 냈다면 내 스타일로만 콕 찍어서 샀을 옷 말고, 다양한 스타일을 믹스 앤 매치해서 과감하게 입어요. 참새 방앗간 들리듯 동네 중고숍 쇼핑하는 게 내 '소확행'이야. 근데 최근엔 매장 노동자가 "쟤 또 왔어?"라는 표정이라 자제 중.       

지금, 여기의 일상을 천천히 즐기는 '욜로'와 '휘게휘게'

 엄마, 고백하자면 같이 사는 사람과 보내는 순간이 내 일상 최대의 '소확행'이야.
 엄마, 고백하자면 같이 사는 사람과 보내는 순간이 내 일상 최대의 '소확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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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잖아, 엄마. 난 막돼먹은 이 자본주의의 물신주의에서 벗어나 진정성 넘치는 미니멀라이프에 경도된 거야. 경도된 거 맞지. 종교에 빠진 교조주의적 말투까지 쓰잖아. 물론 내가 전문직이었거나 소득이 높아서 객관적으로 가난하지 않았다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엄마가 나를 이해했겠지. 근데 성공한 장애인만이 장애에 대해 이야기하고, 성공한 '흑수저'만이 불평등에 대해 토로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잖아.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면서도 소중하고 확실한 행복을 누린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요. 실은 나는 내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존 러스킨이 그랬거든. "내가 생각하는 부자는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단순히 무엇을 구매할지에 관한 선택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선택 말이다"라고. 나는 스스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선택을 했으니 이로서 '부자' 아니겠어? 내가 마흔을 넘기던 해에 엄마가 그랬지.

"이젠 네 나이에 '제대로' 결혼하기는 글렀지만, 우리가 죽고 나면 네가 명절 날 어디 가겠니, 우리 딸 외로워서 어떻게 살아. 결혼해, 막둥아."

엄마는 내가 '결혼 적령기'를 넘기자 남들 눈 신경 쓰는 '속물성' 결혼은 이미 포기했지. 이젠 먼 훗날 자기가 없을 때 '혼자'인 딸을 누가 돌봐줄까 슬퍼하는 진심의 결혼 타령이라 내가 화도 못 내겠어.

근데 엄마 딸은 칠순의 나이에도 명절 날의 서울을 자전거로 산책하고 저녁엔 침대에 누워 'BL' 소설 읽는 게 소원이야. 엄마, 미안하지만 난 벌써 명절 때 가만가만 내 집에 콕 박혀 있는 자체로 온전함을 느끼는 어른이 됐어요.  

엄마는 내가 나이를 먹어서 결혼할 곳이 '재취자리'밖에 없다고 생각하지? 엄마, 난 '제대로' 된 결혼의 정의는 조건 따위가 아니라 서로 평생 대화할 수 있는, 상성이 맞는 파트너를 만나는 거라고 생각해. 그런 점에서 '보스턴 결혼'이 '헤테로 결혼'보다, 내 스웨덴 친구 할머니처럼 76세에 결혼한 경우가 '결혼 적령기'의 결혼보다 더 '제대로'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이혼남'이면 어때.

근데 지금도 혼자 못 자는 바보 같은 나는 함께 밥을 먹고 아프면 서로 돌봐주고 재잘재잘 이야기하는 상성이 맞는 친구와 같이 살고 있어서, 지금 이대로도 좋아요. 순수하게 암컷끼리만 교미하고 생식을 하는 채찍꼬리도마뱀 안 부러운 공동체 생활이랄까. 엄마, 고백하자면 같이 사는 사람과 보내는 순간이 내 일상 최대의 '소확행'이야. 엄마는 사라지고 말 신기루처럼 여기겠지만, 제도가 보장하지 않는 관계도 '제대로'일 수 있어요.   

엄마, 직장을 쉬는 두 달간 새로운 취미 활동을 시작했어. 당분간 특별한 순간을 위해 해외여행을 가지 않는, 동네에서 여행하듯 살기로 했거든. 지금, 여기의 일상을 천천히 즐기는 '욜로'와 '휘게휘게'를 보러 북유럽에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아.

나는 지금 '망원동 휘게휘게'를 즐기고 있어요. 퇴직금을 털어 일주일에 한 번 드로잉 수업을 들으며 1일 1스케치를 하고, 일주일에 두 번 동네 피아노 학원에 가요. 내 주변의 중년들의 '소확생'을 물어보니 손이나 몸으로 직접 하는 소소하고 새로운 취미생활이더라고. 일상 세 컷의 사진으로 동영상을 만든다든가, 프랑스 자수를 뜬다든가, 스윙을 배운다든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몸으로 익히는 행복.  

얼마 전 피아노 교습비를 내는데 '무뜬금' 엄마 생각이 났어. 지금 내 나이보다 더 젊었던 엄마는 콩나물 값을 깎는 억척스러운 살림을 하면서 내 교습비를 꼬박 6년간 내줬잖아. 난 월간 <보물섬>을 보러 피아노 학원에 가는 '어린 짐승'이라 한번도 고마운 줄 몰랐어. 근데 처음으로 내 피아노 교습비를 내는데 엄마가 짠했어. 엄마는 피아노를 배워본 적 없잖아.

내가 나를 위해 쓰는 돈도 아까운데 새끼를 얼마나 사랑하면 그 돈이 아깝지도 않았을까, 싶었어. 그렇게 내 존재에 내려 앉은 사랑과 환대의 힘으로 나는 생각하는 대로 살면서도 '소확행'으로 채워준 일상을 살게 된 거 같아요. 가끔 내가 사라져야만 받아들일 수 있는 엄마의 사랑에 발작하곤 하지만, 엄마 고마워.

근데 사랑은 내리사랑이라고 내 새끼는 없지만 내가 받은 사랑과 환대를 공동체에 되돌려 주는 방향으로 살고 싶어요. 아마도 내 평생의 '소확행'은 BL 쓰기와 공동체를 널리 이롭게 하는 소소한 실천들이 되지 않을까. 카프카의 말처럼 "우리가 가진 유일한 인생은 일상뿐" 그 일상을 채우는 나의 '소확행'을 다정하게 확장하는 것, 요즘 저는 그런 고민을 하고 있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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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쓰레기쿠스, 알맹@망원시장, 쓰레기기덕질 운영자, 발암물질없는사회만들기국민행동 활동가

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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