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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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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교회랑 다른 모습을 한번 찾아보세요."

지난 25일 오전 11시. 제가 속한 울산 동구 등대교회는 예배시간에 맞춰  농촌으로 교회 탐방을 갔습니다. 저로선 처음 가보는 교회라 흥미로움과 호기심이 절로 발동했습니다. 이 교회는 우리 교회와 비슷하게 민중교회, 노동목회로 시작된 교회라 더욱 그러했습니다.

그 교회는 경남 거창군 복상면 산수리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농촌 교회입니다. 교회는 2층형 목조주택으로 가정집과 병합되어 있었습니다. 큰 거실을 개조하여 교회당으로 사용 중이었습니다.

예배시간이 되어 우리가 앉자,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던진 질문은 의외였습니다. 우리가 머뭇거리자 산수교회 담임 목사이신 이성호 목사님이 말씀을 이어갔습니다.

"네. 우리 교회는 헌금함이 없습니다. 처음엔 다른 교회와 같이 뒀었는데요. 시골서 농사짓다보니 필요가 없었습니다. 농사 지어 생계비 버는데 굳이 헌금함이 필요치 않더라고요."

처음부터 뜨악하는 놀라움. 울산에서 올라온 우리 교인들은 모두 같은 반응을 보였습니다. 놀라움은 계속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설교로 인도하지 않습니다. 돌아가면서 중보기도(이웃을 위한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성경구절을 나눕니다. 그리고 다함께 식사나눔을 하면서 생활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부터 중보기도를 돌아가면서 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진짜로 목사님이 설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각자 돌아가며 자신의 처지에 맞는 기도를 했습니다. 의무이진 않았습니다. 그냥 기도하고픈 사람만 했습니다. 목사님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참석자 중 속으로 기도하신 분도 계시고 소리내어 기도 하신 분도 계셨습니다. 장애인 문제, 여성 문제, 나라 걱정, 노동 문제, 환경 문제, 정치 문제 등 다양한 기도소리가 작은 공간에 울려 퍼졌습니다. 노동자인 저는 다음과 같이 소리 내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울산에서 왔습니다. 울산 동구 과학대 정문앞엔 1500일 가깝게 청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숙농성을 하고 있고 현대차에선 10년 경리직으로 다니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부당하게 해고되어 복직투쟁 중입니다. 또한 울산시청에서 위탁준 1366 여성긴급전화를 위장폐업시켜 하루 아침에 길거리로 나앉아 힘든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힘든 노동자의 삶을 보살펴 주시옵소서."

예배후 그 교회 사모님이 점심을 준비하여 함께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행적이 궁금 했습니다.

"저는 신학대학 다닐 때 교지 편집일을 했었습니다. 빈민가를 찾아 취재를 하면서 빈민사역에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87년 민주화 항쟁 이후 노동목회나 빈민목회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저는 농촌목회에 관심이 생기게 되어 찾다가 94년경 이 마을로 오게 된거죠.

농촌목회에 대해 알아보니 자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목회자도 1, 2년마다 바뀌는 실정 이었구요. 그래서 저는 평생 농촌목회를 결심하고 귀농을 하게 된 겁니다. 농민목회를 위해 농사공부도 열심히 했어요. 지금은 유기농으로 농사 지은 거 한살림에 납품도 해요. 이 지역은 배추, 고추, 사과, 오미자를 주농으로 합니다. 처음에 와선 몇 년간 힘들었어요. 외지에서 왔고 목사라니까 원주민들이 많이 부담스러워 했지요. 지금은 저보고 마을 이장 하라해서 4년째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웃음)."

그 마을에는 54가구 113명의 마을 주민이 살고 계시다 합니다.

"거창지역 농목모임을 하는데 7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어요. 그 모임을 하면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사명을 가지고 그루터기처럼 사시는 숨은 분들이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대부분 농촌이 그러하듯이 그곳도 어르신들이 많으시다 합니다. 25년 그곳에 사시면서 일곱분에게 세례를 주셨는데 모두 돌아가셨다 합니다. 농촌이 그만큼 노령화 되어가는 추세라며 안타까워 하셨습니다.

참 독특한 목사님을 뵈었습니다. 헌금통을 없애고 생활비를 농사로 만들어 내며 살아 가시는 그 목사님이 참 존경스러워 졌습니다. 도시에 사는 목사님도 노동 현장을 찾아 노동으로 땀흘려 생활비 벌고 헌금통 없애면 어떨까요? 그런 제안을 해봅니다. 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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