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국가 주도로 출산을 장려하기보다, 모든 개인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키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사회를 먼저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개인의 행복이 먼저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2세를 꿈꿀 수 없습니다. 저는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며, 부모가 될지 말지는 그에 따라 각자가 자연스럽게 선택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 개인이라야 비로소 부모가 될 수 있을 테니까요. 출산 지원금을 확대하는 것도 좋지만, 당장 중소기업에 다니는 제 친구가 명절에는 연차를 쓰지 않고도 푹 쉬고, 갓 태어난 아이를 위해 법적으로 보장된 휴가도 눈치 안 보고 쓸 수 있는, 그런 사회가 되길 바라는 이유입니다.
 
제6기 저출산위에서는 저출산 극복을 위해 무엇보다 '워라벨(일과 생활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행복한 사회를 위한 본질적인 접근에 기대감이 크지만, 반대로 한계에 대한 우려도 큽니다. 정부 주도의 대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법제화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워라벨을 위해 정부에서 임시공휴일을 지정하더라도, 강제조항이 아니라 임시공휴일에 쉬는 회사가 별로 없는 것처럼 말이죠.
 
워라벨을 위한 법제화는 결국,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당장 이번 설날을 가족과 보내기 위해 연차를 쓰고 쉴 수밖에 없던 제 친구의 경우를 볼까요? 살펴보니 근로기준법 55조에서는 1주일에 1회 이상 부여되는 유급 휴일과, 5월 1일 근로자의 날만 법정휴일로 지정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당연히 휴일로 생각했던 석가탄신일, 크리스마스, 명절 등은 관공서가 쉬는 날이지, 모든 근로자가 법적으로 보장받는 휴일이 아니었던 셈이죠. 문재인 정부는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휴식권 차별을 해소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이에 대한 개정법은 올해로 9년째 국회에서 표류 중입니다.
 
저는 지금의 회사에서 명절에 연차를 쓴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 친구에겐 미안하지만, 대한민국 사회에서 저는 남다른 혜택을 누리고 있었죠. 대다수 근로자들이 명절에 연차를 써야 쉴 수 있다는 사실이 제겐 조금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육아는 개인이나 가정이 아닌,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 할 책임이라 말합니다. 하지만 개인의 휴식과 휴일에 대해서도 차별이 존재하는 이런 현실 속에서, 육아는 오로지 개인이나 가정에게만 떠밀려진 숙제 같아 보입니다. 모두가 저녁 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때, 이 숙제가 조금을 풀릴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바라는 세상, 아이가 바라는 세상
   
▲ 아이가 아픈 날, 아내와 저는 꼼짝없이 아이에게만 매달려있어야 했습니다.
▲ 아이가 아픈 날 ▲ 아이가 아픈 날, 아내와 저는 꼼짝없이 아이에게만 매달려있어야 했습니다.
ⓒ 나승완

관련사진보기


육아휴직 도중, 아픈 아이 때문에 며칠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삼 일째 되는 날임에도 아이 이마가 뜨거웠거든요. 더는 안되겠다 싶어 새벽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소아 응급실이 있는 병원이 제가 사는 광주에 딱 한 곳 있더군요. 집에서 병원까지는 운전해서 삼사십 분 거리였습니다. 그렇게 가까운 편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추운 새벽 차를 끌고 병원까지 가는 동안, 그래도 내가 사는 지역에는 소아 응급실이 갖춰진 병원이라도 있어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아니, 대체 선생님은 언제 오냐구요."
"이봐요. 우리가 기다린 게, 지금 한 시간이 넘었잖아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 한 부부가 간호사를 향해 화를 내고 있었습니다. 교대하기로 한 당직 의사가 아직 출근하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나 봅니다. 아이의 인적사항을 작성한 제게 접수처 간호사는 대기인원이 많아 조금 오래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저는 한 시간을 조금 더 기다린 후에야 의사에게 겨우 아이를 보일 수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을 먹였더니, 다음날 다행히도 아이가 기력을 조금 차린 듯 보였습니다. 문제는 새벽에 아이의 열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같은 병원을 찾아야 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때에도 아픈 아이를 안고, 한 시간 이상 기다려야 했습니다.
 
제가 사는 광주광역시에도 소아 응급실이 있는 병원은 고작 하나뿐인데, 하물며 소아 응급시설이 갖춰져 있지 않은 도서 지역의 부모들은 갑자기 아픈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요? 늦은 새벽, 광역시 단위의 광주에 있는 병원에서조차 저는 길게 늘어서 치료를 기다리고 있는 아픈 아이와 부모들을 보았습니다. 만약 교통사고 등 위급한 사고를 당한 아이가 병원에 찾아오면, 제대로 치료를 받을 수 있을지 여전히 저는 궁금하기만 합니다.
 
작년 대선에서도 각 후보들은 아동 수당을 높이겠다거나, 아동의 입원진료비를 국가가 책임지게 하겠다는 등의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습니다. 현재도 아동복지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국회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당장 아이를 키우는 제 입장에선 아이의 건강과 관련된 소아 응급실이나, 어린이집 등의 보육 시설을 어떻게 확충할 것인지에 대한 눈에 띄는 정책이 보이지 않아 아쉽기만 합니다.
 
주위로부터 어린이집은 미리 알아봐야 한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듣긴 했는데, 설마 이렇게까지 어린이집을 구하는 게 어려울지 몰랐습니다. 제가 회사에 복직하게 되면, 아이를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종일반을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맡겨야 합니다. 현재 다니는 어린이집은 종일반 중심이 아니라, 새로 어린이집을 바꾸려 했거든요. 하지만 몇 군데 알아본 어린이집의 새 학기 일정과 제 아이의 적응 기간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어, 한동안 어린이집 문제로 고생했습니다.

결국, 지금 어린이집 선생님들께서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아이를 볼 수 있도록 돌아가면서 당직을 짜기로 하셨습니다. 제 아이 한 명 때문에 어린이집 전체가 운영 시간을 바꾸게 된 터라, 선생님들께는 여러모로 감사하고 조금 죄송스럽더군요.
 
그렇게 어린이집 문제를 해결한 우리 부부는 미리 서로의 일정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둘 다 직장인이라 아침 7시 30분까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저녁 7시 30분에 아이를 집으로 데리러 오는 일이 만만치 않아 보였으니까요. 결국 정부의 아이돌봄서비스를 통해 비용을 지불해서라도 도우미를 구해보려 했지만, 도우미를 구하는 데 몇 달은 걸릴 거라는 안내원의 말에 허탈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무원인 아내가 일단 유연근무제를 신청하여 출퇴근 시간을 조금 앞당기고, 출장이나 야근, 회식이 잡히면 바로 공유하기로 했습니다. 같은 날을 피해 서로 번갈아가며 어린이집에 들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둘 다 회사에 다니는 도중 회식이나 출장이 같은 날 잡히거나, 꼭 야근해야만 하는 일이 동시에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입니다. 혹시라도, 아이가 아파 부득불 둘 중 한 명은 회사를 쉬어야 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면 그때마다 주변 동료들에게 미안하고 눈치도 보이지 않을까요?

▲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모두 행복합니다.
▲ 행복 ▲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에서는, 아이와 엄마가 모두 행복합니다.
ⓒ 나승완

관련사진보기


아이를 낳고 키우는 대다수가 저희 부부처럼 육아에 대해 고민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병원이나 어린이집 사례처럼 가정에서는 노력해도 해결하기 힘든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잘 교육하는 책임을 사회가 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가정에게만 떠넘겨 버릴 때 문제가 생기죠. 개인이나 가정에서 돌볼 수 있는 한계를 넘어버리면, 자녀는 축복이 아니라 '웬수'가 되어버립니다.

저는 저녁 있는 삶을 보장하는 사회와,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사회가 어떠한 사회인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보육 정책이 수혜로 인식되고, 아이의 무상교육, 무상교복 같은 보편적 복지에 대한 논의들조차 정치권의 색깔 공세에 묻혀버리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의 모습이 제대로 이야기나 될 수 있을까요?

[육아대디의 대한민국 들여다보기]
[1편] 저는 대한민국의 '특별한' 육아대디입니다
[2편] 강제 야근과 폭탄 회식이 아내를 울립니다
[3편] 남성 육아휴직도 대기업-중소기업 '양극화'


태그:#워라벨, #휴가, #저출산, #어린이집, #유연근무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인의 감성으로, 모두가 함께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