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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남성 육아휴직자 중 60% 이상이 300인 이상 기업에 다니고 있다.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 중 60% 이상이 300인 이상 기업에 다니고 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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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5일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2017년 육아휴직자 9만123명 중 남성은 13.4%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8.5%였던 2016년보다 4.9%포인트 늘어난 수치로, 남성 육아휴직자가 점점 늘고 있다는 통계가 무척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전체 남성 육아휴직자 중 62.4%가 300인 이상 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라는 데 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자 중 절반 이상이 대기업에 편중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참고로, 30인 이상 100인 미만인 중소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는 고작 9.7%로 나타났습니다.
 
회사에서 제가 맡은 업무가 언론 홍보다 보니, 롯데나, 신세계백화점, 기아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홍보 담당자들과도 자주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홍보 담당자에게 듣고 새삼 놀랐는데, 롯데그룹은 작년부터 배우자가 출산하면 남성 직원도 한 달 이상 육아휴직을 쓰도록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제도'를 도입했답니다. 그 결과, 작년 제도 도입 이후 남성 육아휴직자가 1천1백 명을 넘었다네요. 이는 지난 해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우리나라 전체 남성육아휴직자 수인 1만2천여 명 중 약 10%에 해당하는 어마어마한 통계입니다.
 
저는 휴일에도 문을 열어야 하는 업계 특성 상, 특히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임직원들은 일과 생활의 균형을 지키는 게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알아보니, 광주 신세계백화점은 협력업체 사원의 자녀를 포함한 임직원 자녀들의 보육을 책임지기 위해, 매장 내에 주말에도 문을 여는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더군요. 이러한 가족 친화적인 제도 덕분에 해당 기업들에 대한 제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됐습니다. 제가 어렵지 않게 육아휴직을 쓴 이후, 다니던 회사에 대한 애정이 더욱 커진 것처럼 말이죠.
 
한국 사회의 보수적인 기업 문화와는 별개로, 대다수 남성들은 육아휴직을 경제적 요인 때문에 망설이기도 합니다. 롯데그룹은 이런 현실을 감안해, 남성 육아휴직자들에게도 휴직 첫 달 통상 임금의 100%를 보전(통상임금과 정부지원금과의 차액을 회사에서 전액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남성 육아휴직 확산에 기여하는 훌륭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수의 대기업들이 이런 제도들을 도입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이런 제도를 도입할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규모에 따른 기업 간 제도 차이가 크지만,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균형을 맞춰줄 정부의 제도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런 상황에선, 기업 간 남성 육아휴직 신청 비율도 꾸준히 격차를 보이겠죠. 사회 전체적으로 남성 휴직자가 늘어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이런 식으로 대기업에만 남성 휴직자가 편중되는 것에 문제는 없을까요? 잠깐만 생각해봐도,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직원들은 더 행복해지고, 육아휴직을 쓰지 못하는 직원들과 그 아이들은 마음 아파하지 않을까요?
 
당장, 복지형평성 차원에서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고용노동부의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한 해 동안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지급된 급여는 총 400억 원입니다. 이중 58.4%인 233억 원이 300인 이상 대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29.5%인 118억 원이 100인 이하 중소기업의 남성 육아휴직자에게 지급됐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육아휴직자의 급여가 차이난다는 점은, 세금을 바탕으로 마련한 정부 지원금이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쓰이지 못하고 있다는 뜻 아닐까요?
 
여담입니다만, 제가 다니는 회사는 규모가 조금 큰 곳이라 그런지 복지제도가 꽤 잘 갖춰져 있습니다. 저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회사로부터 적지 않은 출산 축하금을 받았고, 몇 달 간 월급에 더해 소정의 육아지원금도 받았습니다. 하지만 앞 기사에서 언급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제 친구는 회사로부터 지원 받은 게 전혀 없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날 고작 하루의 휴가를 받아든 친구는, 회사로부터 지원금 같은 게 나오는지 묻는 제 질문에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육아휴직에 대한 복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아직 우리 사회는 출산에 대한 복지도 회사의 규모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아직 청년인 제게는, 취직을 위해 애쓰던 주변 지인들과, 취직 이후에는 소속된 직장의 규모에 따라 아이를 더 낳을지 말지 고민하는 그들의 현실이 뚜렷이 보입니다. 극단적으로, 취직을 하더라도 대기업에 다니는 사람들만 아이를 낳고 중소기업 종사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점점 아이 낳는 것을 기피하는 사회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조금 우려스러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의 위원장을 맡으며, 저출산 극복이 국정 운영의 최우선 과제임을 시사했습니다. 그간의 대책은 육아휴직 확대, 아이돌봄지원 강화, 청년고용 등 늘 언론을 통해 접했던 내용 그대로입니다. 올 7월부터 부부 중 두 번째 육아휴직자의 급여를 200만 원까지 올리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도 대폭 확대한다는 지원책도 눈에 띕니다. 하지만 이런 정책들이 정말 획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저출산을 극복시켜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상향된 육아휴직 급여조차, 주로 대기업의 육아휴직자들에게 돌아가 양극화가 더욱 심해지진 않을까요?

[육아대디의 대한민국 들여다보기]
[1편] 저는 대한민국의 '특별한' 육아대디입니다
[2편] 강제 야근과 폭탄 회식이 아내를 울립니다



태그:#육아휴직, #육아휴직급여, #롯데, #신세계, #육아지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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