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까지만 해도 혼수품목의 필수였던 미싱이었지만 요즘은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나 소장하고 있는 골통품의 반열에 오른 재봉틀이 되어버렸습니다. 물론 자동화된 전동 미싱들은 봉제공장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일반 가정에서는 세련되고 내구성이 좋은 기성품 의류들이 범람하기 때문에 별로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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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0년 된 미국산 [싱거] 재봉틀이며 미국 보스톤 시에 이삭 메리트 싱거라는 사람이 삯바느질을 하며 가정을 꾸려 가는 아내를 위하여 개발하였으며 1851년 뉴욕에 공장을 설립한 싱거는 한 가정에 미싱 한 대를 보급한다는 목표로 재봉틀을 생산했다. 미국에서 처음 판매된 싱거 재봉틀의 가격은 100달러였고 세계 최대 재봉틀 회사가 된 싱거의 획기적인 아이디어 중 하나는 할부 판매방식을 도입한 것이며 이로 인해 저소득층 가정에서도 재봉틀을 구입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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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스무 살 즈음에 충장로에서 사촌형님이 운영하던 한광미싱상회에서 미싱과 인연을 맺어 지금까지 미싱과 평생을 살아 온 장춘원씨는 "70~80년대는 봄 여름철에 인근 시골마을로 50대에서 100대까지 미싱을 싣고 찾아가서 집집마다 미싱을 외상으로 판매하고 가을걷이가 끝나면 수금하던 시절이 전성기였다"며 수입이 좋았던 젊은 시절을 회상합니다.
광주광역시 남광주시장 천변쪽에서 한일미싱상회를 운영하고 있는 장춘원(76세)씨는 3월24일 오후에 고장 난 미싱을 들고 찾아 온 단골손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결혼할 때 장만했던 미싱을 오래 사용하다보니 여기저기 고장이 나서 수리하기 위해 중년부부가 찾아 온 것입니다. 혼수품이기도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에 손때가 묻어있고 정이 들어있는 애장품이라서 고장이 나면 장춘원씨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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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싱 수리를 맞기러 온 중년부부가 수리하는 장면을 지켜보고있는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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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싱 한 대당 100여가지의 부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수리를 맡기러 온 분의 설명을 듣자마자 망설임도 없이 미싱을 해체하여 고장 난 부분을 완성하는 손놀림은 가히 달인의 경지였습니다. 평생을 미싱과 함께 살아왔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한 장소에서 50년을 넘게 운영하다보니 이제는 터줏대감이 되었고 미싱수리를 위하여 전국에서 찾아오는 고객도 있다고 합니다.
요즘은 미싱을 사용하는 가정이 사라지다보니 찾아오는 고객도 점차 줄어들지만 오래된 고객들의 잊지 않고 찾아 줌에 항상 감사하다는 장춘원씨는 "죽지도 말고 가지도 말라"는 고객들의 농담 같은 덕담에 늘 행복하다고 이야기 합니다. 오늘도 76세의 노익장을 과시하며 날마다 즐겁게 생활하시는 모습에서 광주사람들의 저력을 보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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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지도 말고 가지도 말라”는 고객들의 농담 같은 덕담에 늘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미싱수리사 장춘원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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