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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먹는 바나나는 노랗고 달다. 어디서나 간편하게 구할 수 있고, 오늘날에는 편의점에서도 판매한다. 그런데 이런 바나나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과거에 바나나 산업에서는 그로미셸이라는 단일 품종의 바나나를 재배하는 것이 유행했다고 한다. 라틴아메리카의 바나나 농장에는 사실상 유전적으로 동일한 바나나들이 자랐다.

어느날, 바나나덩굴쪼김병균이 파나마병을 일으키자 그로미셸 바나나 농장은 황폐화되었다. 병균이 토양에 잠복하기 때문에 농장 자체도 버려졌다. 그로미셸 바나나는 다른 품종인 캐번디시 바나나로 대체되었다.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면, 캐번디시 바나나는 바나나를 생산하지 않는 지역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품종이다.

농업이 단순화되면, 일정한 면적에서 식량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풍요는 취약하다. 만약 캐번디시 바나나가 전멸한다면, 우리는 또 다른 변종을 찾아서 심어야 한다. 그러려면 운이 따라야 하고, 서둘러야 할 것이다. 어쩌면 적절한 변종을 찾는데 실패하고 큰 재앙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바나나제국의몰락
 바나나제국의몰락
ⓒ 롭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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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제국의 몰락>은 바나나처럼 한 품종을 대량생산하는 현대 농업의 현실을 그린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NEVER OUT OF SEASON'이다. 언제나 제철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가진 편향이 산업적 작물 생산과 맞물렸을 때 일어나는 현상을 보여준다. 우리는 작물을 어디서 어떻게 재배하느냐에 무관하게 당이나 지방을 가장 값싸게 제공하는 작물을 선호한다. 그래서 작물 생산도 이에 맞춰 변화하여 단순화되었다.

콩고 분지에서는 열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오로지 카사바 한 종에서 얻고, 중국 일부 지역에서는 쌀이 섭취 열량의 거의 전부를 차지한다고 한다. 작물을 키워서 많은 돈을 벌려면, 가장 많은 수확량을 보장하는 작물을 가장 많이 심는 것이 유리하다. 그런데 이렇게 키우다 보면 수확량이 가장 많은 품종을 제외한 다른 종들은 버려진다.

그런데 이 책에 따르면, 작물에 닥친 위험은 우리가 농업을 단순화한 정도에 정비례한다고 한다. 한 품종을 병들게 하는 균이나 해충이 발생한 경우, 한 품종을 심었을 때 여러 품종을 심었을 때보다 피해가 빠르게 퍼지게 된다.

교통의 발달로 이런 피해의 속도는 더 가속화되었다. 전세계 모든 작물은 한 지역에서 재배되다가 해충과 병원체를 피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지금은 전 세계가 비행기와 배로 연결되어 있어서, 해충과 병원체가 엄청난 속도로 작물의 이동 속도를 따라잡고 있다.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병이 돈다고 해서 전혀 안심할 수가 없다.

문제는 한 번 해충과 병원체에 따라잡히면 작물을 구할 방법은 극소수라는 것이다. 야생종이나 토종의 생물다양성에 의존해야 한다. 병에 내성이 있는 야생종을 활용하거나, 곤충이나 균류를 먹는 천적을 활용해서 해충에 대항해야 한다. 그런데 환경은 점점 파괴되어 가고 있고 야생종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서 농업인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유전자 변형 작물을 만들거나 살충제를 자주 쓰는 일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항상 해충과 병원체는 그런 노력을 우습게 따라잡는다. 곤충은 한 곳에서만 저항성을 진화시키면 어디에서나 작물을 먹을 수 있다.

루이스 캐럴의 <거울나라의 앨리스>서, 앨리스는 붉은 왕비에게 왜 달려도 달려도 제자리에 머물러 있느냐고 묻는데, 붉은 왕비는 앞으로 나아가려면 두 배는 빨리 달려야 한다고 답한다.

마찬가지로 저자는 농업의 전체 역사는 좀 더 앞서려고 용을 쓰지만 결국 제자리에 머물고 마는 일련의 시도라고 본다. 책에 따르면, 살충제에 의존하는 작물의 비중이 커지면서 살충제 내성의 진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이 책은 현대의 농업이 농화학 테러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단일 품종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한 품종만 공략할 줄 알면 지역 전체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농업을 붕괴시킬 수 있다. 브라질에서는 한때 카카오를 많이 재배했는데, 카카오나무가 균류가 침투해서 종양을 만드는 빗자루병에 걸리면서 카카오 농장들이 큰 타격을 입었다.
나쁜 병원체, 불운, 어리석은 결정, 어려운 경제 상황과 인센티브가 겹친 결과는 재앙으로 나타났다. 1989년에 바이아의 카카오 생산 농장은 65만 헥타르에 이르렀으나 1992년에는 40만 헥타르만 남았으며, 어느 농장도 예전만큼 생상하지 못했다. 생산량은 75퍼센트 감소했으며, 빗자루병을 이겨내지 못한 탓에 그 뒤로도 결코 회복되지 못했다. -107P


놀라운 점은 이것이 자연스럽게 전파된 병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매듭을 묶어 병을 감염시킨 사실이 발견되었다. 브라질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고 많은 농장이 쇠락했다. 브라질은 세계 2위 초콜릿 생산국에서 초콜릿 순수입국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작물에 대한 공적 후원은 점점 감소하고 있는데, 기후도 변화하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품종을 육종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기후 변화와 인류의 식량 수요가 동시에 증가하면서 우리는 가뭄과 새로운 병원체 및 해충에 내성이 있는 새로운 품종의 작물을 육종해야 한다. 공적 후원을 받는 작물 연구에 대한 지원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유전자 변형 작물이 아니다. 종자 품종을 보존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새로운 문제에 대처할 능력이 점차 사라지리라는 것이다. - 257P


책의 저자는 작물의 야생종 친척을 보존하고,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종자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곤충이나 균류를 연구했을 때 점진적 혜택이 작고 느리더라도, 연구하지 않았을 때의 손실은 어마어마하고 즉각적이기에 제대로 투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물과 함께 살아가는 종을 진정으로 이해하기 위해, 농장과 과수원의 생물다양성에 대해 모든 분류군을 망라한 목록을 작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도 본다.

저자는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현지에서 재배된 다양한 식품을 섭취하는 문화를 선호하고 양성하면, 작물을 보전하고 우리 문화 파멸의 위기에서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어떤 사람들은 야생종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로 야생 동식물의 아름다움을 든다. 어떤 사람들은 야생종은 존재할 권리가 있다고 본다. 저자는 그런 논리에 동의하지 않아도, 우리 자신을 보전하려면 야생의 자연과 야생종을 보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야생의 자연을 보전해야 앞으로도 음식을 먹고, 차를 운전하고, 문명 속에 살아갈 수 있다는 저자의 의견은 설득력이 강하다.


바나나 제국의 몰락 - 풍요로운 식탁은 어떻게 미래 식량을 위협하는가

롭 던 지음, 노승영 옮김, 반니(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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