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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적이진 않지만 내향적인 사람들이 있습니다. 외향적인 사람들이 환대받는 세상에서 내향인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사람들에 대한 사는이야기입니다.[편집자말]
 외향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
 외향적인 사람들이 모이는 파티
ⓒ if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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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말들은 예고도 없이 툭툭 치고 들어온다. 사람을 적게 만나거나 대화를 아낀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아침 지옥철에서 나를 치고 가며 누군가 흘리는 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에게 누군가 내뱉는 말, 업무 미팅에서 농담이랍시고 상대 업체가 던지는 말에 종종 상처받는다. 왜 말을 저렇게 하지? 지금 나 들으라고 하는 이야기야?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의외라고 이야기한다. "너도 그런 이야기에 상처받아?", "넌 쿨하게 넘길 것 같은데?", "사람들 별로 신경 안 쓰지 않아?" 주변 지인들이 그렇게 이야기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외향적이기 때문일 것 같다. 늘 사람을 만나고, 대부분의 사람에게 상냥하게 대하고, 활기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향성과 외향성을 나누는 기준은 뭘까? 누군가는 그 기준이 '에너지를 안에서 얻느냐, 밖에서 얻느냐의 차이'라고 한다.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으면 내향적인 사람이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힘을 얻으면 외향적인 사람이란다.

누구나 상처받는다

사실 나는 외향성과 내향성 역시 성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분명하게 나누기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마냥 외향적이기만 한, 그저 내향적이기만 한 사람이 있을까?

같이 있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사람들과 많이 어울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자신에 대한 것을 숨기고 곁을 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수의 사람과 어울려도 깊은 관계를 맺는 사람도 있다. 모두 저마다 자기 안의 작은 혼란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이중성 사이를 저울질하며 스스로에 대해 조금씩 더듬어 알아가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럼에도 편의상 나를 그 두 가지 범주에 욱여넣는다면 나는 외향적인 사람에 가깝다. 낯선 사람을 대하는 게 그리 힘들지 않고, 새로운 사람의 독특한 매력을 발견하는 기쁨을 즐긴다.
 
 '딴짓'에서 운영하는 출판 수업
 "딴짓"에서 운영하는 출판 수업
ⓒ 박초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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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주일에 두 번 출판 강의를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청년들을 모아 요즘 세대의 고민에 관해 이야기하는 파티도 연다. 운영하는 바에서 비정기적으로 바텐더 수업도 한다. 늘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에너지도 많이 들고 다양한 일도 많이 겪는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면 사람에게 받는 상처가 덜할까? 외향성과 내향성을 가르는 기준이 '에너지를 얻는 방향성'이라면, 상처를 받느냐 안 받느냐는 '예민함'에 대한 이야기다. 그 둘은 다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상대의 무례한 이야기에 의연한 건 아니다. AI가 아니므로 상처받는 건 다른 사람과 매한가지다. 스스로 심지가 굳다고 자부하는 나지만, 차별적인 발언을 들을 때면 처음 링 위에 오르는 복서처럼 그 말이 주는 타격을 감내하지 못한다.

"그렇게 살면 돈은 좀 버니?"
"너 참 편하게 사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일 그만두면 되잖아."


그 말들은 '우리 사이에'나 '네가 걱정돼서' 혹은 '넌 활기차고 밝은 아이니까 이런 이야기 정도야'라는 가면을 쓰고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람을 좋아해도 무례한 말에는 화가 난다.

외향인에게도 내향의 시간이 필요하다

무례한 말에 상처받는 게 나뿐일까. 오죽하면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까.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면서 한 마디 쏘아주는 일은 보통 내공이 필요한 일이 아니다. 괜히 핏대를 올렸다가는 잘잘못에 상관없이 나만 예민한 사람 취급을 받을 수 있고,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넘어가기에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둘 중 하나만 하면 그나마 선방이다. 대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기분 상한 티만 잔뜩 내며 그 순간은 끝난다. 물론 할 말은 다 하지도 못한 채다. 그러니 무려 '웃으면서' 무례한 사람에게 할 말을 다 하는 방법이라니. 그런 내공, 돈으로 살 수 있다면 기꺼이 지갑을 열고 싶다.

인기가 많은 사람은 그저 웃고 떠들기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단어를 쓰면 저 사람이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우리 사이에 이런 것까지 물어도 되는 걸까?", "저 사람은 저 이슈에 민감한 것 같으니 그 이야기는 꺼내지 않아야겠다." 이렇게 다른 사람을 만나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사람이라면 응당 그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생각해야 한다.
  
 외향인에게도 내향의 시간이 필요하다.
 외향인에게도 내향의 시간이 필요하다.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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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적인 사람들은 사람을 좋아하고 많이 만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받을 일도 더 많이 생긴다. 더불어 사람들을 상처 주지 않으려는 노력도 많이 한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만의 공간에서 상처를 보듬고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사색할 때도 있다. 외향인에게도 내향의 시간이 필요한 셈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잠들기 전에 홀로 '이불킥'을 하게 되는 상황이 참 많다. 왜 부끄러운 일, 화나는 일은 침대에 누우면 생각나는 걸까? 내가 왜 그런 헛소리를 했지? 그 행동은 얼마나 바보 같아 보였을까? 곱씹고 곱씹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렇게 할 걸 그랬다'의 세계로 빠져든다. 공상 속에서 나는 <위대한 개츠비> 속 개츠비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인 인물이 되어 사람들의 찬사를 받는다. 실수 없는 완벽한 나!

이불 속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공상이나 하는 모습이 개츠비와 가장 거리가 먼 이미지라는 건 알고 있다. 허나, 공상이 마냥 쓸데없지만은 않다. '그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할 걸 그랬어'라며 해야 할 말을 이리저리 궁리해 보는 것이 꽤 도움이 된다. 특히 무례한 사람들을 느닷없이 맞닥뜨렸을 때, 예고도 없이 들어오는 그들의 훅을 적절히 피하는 요령이 생긴다. 말하자면 상상 트레이닝이랄까.

주변에 외향적인 사람이 있는가? 밝고 유쾌하며 자주 웃고 사람들 만나기를 즐기는 사람. 그들의 유쾌함에 경도되어 함께 왁자지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만, 그럼에도 예의는 지키자.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아니니까. 우리도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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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밥 벌어 먹고 사는 프리랜서 작가 딴짓매거진 발행인

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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