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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산단 부지에서 통일신라 후기~고려 초기(9~10세기)에 쌓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이 발굴됐다. 토성은 최근 진주대첩광장 부지에서 발견된 토성보다 훨씬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발굴 작업을 추진한 경상문화재연구원은 진주의 옛 지명을 따 이 성을 '강주토성'이라 명명했다.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단 조성터에서 발견된 '강주토성'
 진주시 정촌면 뿌리산단 조성터에서 발견된 "강주토성"
ⓒ 경상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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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토성은 전체 둘레 450m규모로 성벽의 최대 폭은 6m, 최대 높이는 2~3m 가량이다. 본래 높이는 5m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성벽 일부가 허물어져 현재는 2~3m 높이의 성벽만 남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토성은 전체구간의 1/3에 달하는 115m정도만 발굴된 상황이다. 나머지는 뿌리산단 부지 녹지구간에 걸쳐져 있는 것으로 짐작된다. 경상문화재연구원은 시와 협의를 통해 이 구간에서도 발굴작업을 펼칠 것인지 결정할 예정이다.

강주토성은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 사이 쌓여진 것으로 보인다. 토성 축조방법과 토성 부근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이 통일신라 후기~고려 초기의 것들이기 때문이다.

토성은 '판축법'으로 쌓여졌다. 판축법은 삼국시대부터 선조들이 성을 쌓으며 사용해 온 방법이다. 바닥에 석열을 배치, 일정 간격으로 나무판자를 세운 후 그 사이에 흙을 쌓는 방식이다. 토성 주변에서는 해자, 집수정, 소성유구, 수혈과 함께 가야시대 집터도 발견됐다. 가야시대 집터 위에 토성이 축조돼 토성은 가야시대 이후 축조된 걸로 보인다.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산단 조성터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산단 조성터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
ⓒ 경상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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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토성은 군사기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토성 인근에서 적군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한 연못해자와 성문기를 꽂은 것으로 보이는 나무흔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또한 진양지라는 향토자료에 따르면 이곳 일대가 주요 군사기지였다는 기록도 있다. 이에 경상문화재연구원은 "강주토성이 군사·행정적 역할을 겸하는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강주토성은 지난 16일 문화재청으로부터 보존결정을 받았으며 앞서 6월 보존을 위한 조치를 취해둔 상황이다. 경상문화재연구원은 지난 6월경 심광주 토지주택박물관장에게 자문을 요청해 토성상면에 1~1.5m의 성토를 깔고 마사토로 보강, 잔디를 식재했다.

한편 경상문화재연구원은 2017년 5월15일부터 뿌리산업단지 조성부지 내 89.978㎡ 지역을 시굴, 29.831㎡를 발굴조사 해왔다. 총 14구역으로 나눠 진행된 조사에서는 1,184점의 유구가 출토됐으며, 토성은 제 5구역(3.665㎡)에서 발견됐다.

토성이 발굴된 5구역은 보존결정이 내려졌지만, 그 외 구역은 본래 예정됐던 대로 공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토성의 나머지 구간이 있을 것으로 짐작되는 녹지구간은 이들 14구역에 포함되지 않는다.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산단 조성터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
 경남 진주 정촌면 뿌리산단 조성터에서 발견된 유물, 유적
ⓒ 경상문화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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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진주지역 독립언론 단디뉴스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강주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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