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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사온의 전통(?)을 깨고, 한파와 미세먼지가 번갈아 찾아오는 요즘 겨울, 지난 여름의 최강 무더위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덥다, 더워!'를 입버릇처럼 내뱉었던 여름 더위를 잊고, 우리 몸은 변화된 계절의 리듬에 금세 장단을 맞추고 있다. 추임새는 '춥다, 추워!'로 바뀐 지 오래다.

2018년 여름 기록을 보면, 폭염일수 31.4일(평년 9.8일), 열대야 일수 17.7일(5.1일)로 모두 역대 최다 1위에 해당하는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8월 1일에는 기온이 강원 홍천에서 41.0도를 기록해 관측 기록 사상 최고를 나타냈고, 서울도 39.6도가 관측돼, 111년만에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여름철 전국평균기온은 역대 1위, 최고·최저기온은 2위였다. 반갑지 않은 이런 기록은 폭염으로 끝나지 않았다.

여름 폭염을 느끼기 전에 강한 한파도 경험했다. 2018년 1월 23일~2월 13일에는 전국 최고기온이 0.6도로 본격적으로 기상을 관측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에는 태풍 영향으로 10월 전국 강수량이 역대 최다 1위를 나타내기도 했다. 폭염, 한파, 폭우, 태풍 등 경험치를 벗어난 기후 현상이 점점 우리의 일상과 가까워지고 있다.

재난에 해당하는 이런 기후 현상에 하나 더 추가해야 할 상황이 도래했다. 바로 미세먼지의 습격이다. 지난 14일 오후 3시까지 서울 지역의 하루 평균 초미세먼지 농도는 118㎍/㎥로, 2015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존 최고기록인 작년 3월 초미세먼지 농도 99㎍/㎥보다 크게 높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자 수도권에는 미세먼지 비상저감조치가 사흘 연속 발령됐는데, 제도 시행 이래 사흘 연속은 처음이다.

기후 현상의 불평등

눈여겨볼 지점은 이런 기후의 영향이 모두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여름에 단골로 TV 화면에 등장하는 쪽방촌의 풍경을 보자. 에어컨도 없이 허름한 단칸방에서 부채질하는 어르신의 모습에서 우리는 굉장한 이질감을 느낀다. 전기세가 아까워 기부받은 선풍기도 꺼둔 채 더운 여름을 나야 하는 그들의 삶과 벽걸이 에어컨이 모자라, '투인원 에어컨', 또는 천정의 '시스템 에어컨'으로 교체하는 사람들의 삶은 분명히 다르다. 폭염은 저소득층, 어르신, 장애인 등 소위 취약계층에게 훨씬 혹독하다. 매년 여름 발생하는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에 속한다.

비단 폭염만이 아니다. 극심한 한파가 찾아올 때도 느껴지는 온도만 다를 뿐 빈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은 유사하다. 홍수나 태풍과 같은 재난도 사람의 소득 수준에 따라, 사는 곳에 따라 전혀 다르게 영향을 미친다. 부의 크기가 기후 현상을 대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얼마 전 미세먼지가 극심했던 날의 모습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치는 미세먼지를 피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해 극장가, 키즈카페, 쇼핑몰 등 실내 놀이 공간이 붐빈다는 뉴스를 접할 수 있었다. 싸지 않은 가격의 공기청정기를 둔 집안에서 주말을 보내기 지루한 사람들이 실외에 나갈 필요 없이,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곳으로 몰린 것이다.

'미세먼지 나쁨'에 대처하는 평범한 일상으로 보이지만, 집안의 공기청정기도, 이동할 수 있는 자동차도, 소비 행위가 이뤄지는 상업시설도 누군가에게는 그림의 떡일 수 있다. 모든 공간에 침투할 수 있는 공기 중의 미세먼지이지만, 호흡하는 공간의 선택권은 불평등하게 주어진다.

미세먼지가 나쁠 때는 노동이 이뤄지는 장소도 문제가 된다. 주차장의 주차요원, 오토바이 배달원, 길거리 판매원, 폐지 수집 어르신, 공사장 노동자 등 어쩔 수 없이 실외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더하다. 초미세먼지까지 막아준다는 마스크가 약국에서 3,000원 정도인 걸 생각하면, 쉽게 구입하기도 어렵다. 혹여 마스크가 있다고 해도 직업 특성상 고객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부류의 노동자들은 항상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힘들다고 호소한다.

고용노동부가 최근 옥외작업자를 위한 미세먼지 대응 건강 보호 지침을 내놨다. 사업주는 미세먼지 주의보 단계부터 노동자에게 마스크를 나눠줘야 하고, 작업 강도도 줄여야 한다. 지키지 않을 경우를 위한 처벌 조항도 있다. '정부가 노동자의 마스크까지 챙겨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책의 세심함은 다른 기후 현상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다.

기후가 예전 같지 않다. 재난에 버금가는 기후변화는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사회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다양한 정책들이 논의되겠지만, 그 시각은 사회적으로 어려운 처지의 사람들에게 먼저 향해야 한다. 이상 기후 현상이 사람들에게 불평등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기후로 인해 어려움을 당할 때 평범한 선택의 범위에 전혀 접근할 수 없는 계층이 우리 사회를 이루고, 함께 일하고 있다.

태그:#기후 불평등, #폭염, #미세먼지, #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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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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