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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에 대한 연재는 자칫 비법조계의 시민들로서는 "나와 무관한 로스쿨 문제에 관심 없어, 지들 밥그릇 싸움이지 뭐" 하며 지나치기 딱 좋은 주제다. 하지만 어떤 법조인이 얼마나 배출되어야 하는지는 법률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WHY 로스쿨? WHY 로스쿨정상화? 4부]에서는 평범한 시민에게로, 국회로, 시민단체로 다가가 '시민이 체감하는 법률서비스의 문턱'에 대해 살펴본다.

먼저 <① 2만명 시대라는데... 여전히 보이지 않는 '내 옆의 변호사'>에서 우리사회 평범한 이들이 변호사를 얼마나 가깝게 생각하는지를, <② 어서와, '덴마크,독일의 보편적 법률복지'는 처음이지?>에서 복지선진국 덴마크와 독일 시민들에게 법률서비스 문턱은 얼마나 낮은지를 들여다본다. 마지막으로 <③변호사 대신 박주민 찾는 주민들, 왜?>에서는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으로부터 법률서비스 문턱을 낮추기 위한 공공법률서비스 법안들에 대해 들어본다. [기자말]

 
서울시는 2014년부터 동 주민센터별로 '마을변호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변호사들이 월 1~4회 주민센터를 찾아 직접 시민들을 만나 법률상담을 하는 것. 동별로 변호사가 지정되지만 시민들은 주거지와 상관없이 상담받을 수 있다.
 서울시는 2014년부터 동 주민센터별로 "마을변호사 제도"를 운영 중이다. 변호사들이 월 1~4회 주민센터를 찾아 직접 시민들을 만나 법률상담을 하는 것. 동별로 변호사가 지정되지만 시민들은 주거지와 상관없이 상담받을 수 있다.
ⓒ 출처 : 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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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다는 변호사, 내 눈엔 왜 안보이나  

서울에 거주하는 주부 A씨는 "서울시 마을변호사 제도 자체는 참 훌륭하지만 다소 개선, 확대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변호사가 흔해졌다지만 A씨의 친인척이나 친구 중 법조인은 아무도 없다. 그런 A씨는 최근 이사를 앞두고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고민하던 중 마을변호사 제도를 알게 되어 이를 이용해 보았다.

그런데 A씨가 구청에서 만난 마을변호사는 조금 실망스웠다. 변호사가 바빠 보였고 자세한 상담이나 도움은 정식 변호사 선임 후에나 가능하단 뉘앙스의 말들을 남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을변호사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감동할 정도로 성심껏 상담해주고 따로 연락해 추가적 도움을 주는 마을변호사들도 있었다. 그러면 맘카페 등에서 '○○동 마을변호사 정말 잘 해준다'는 입소문이 나서 다른 동으로 그 변호사를 찾아가는 이들도 많았다.

A씨는 "변호사들이 무료로 이런 상담을 해주는 것 자체가 사실 너무 고맙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들의 착한 마음에만 기대하게 하니 간혹 불성실한 상담을 해주는 이도 나오는 것 같다. 정부가 지원하는 등 뭔가 대책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특정 요일에 상담할 수 있도록 돼있는데, 매일 진행되도록 역시 또 정부가 지원했으면 좋겠다 "고 했다.

초등학교 생활부장 교사인 B씨는 학교폭력 사건이 터지면 학생지도만큼 '절차적 문제'도 걱정이다. 관련 학생의 진술을 받고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열고 또 관련 기관들에 보고하는 일련의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절차상 하자가 있으면 그 부모가 담임 교사, 생활부 교사, 교감 등에게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일이 적지 않고, 정서학대라며 아동학대로 고소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수업시간에 관련 학생을 불러 조사하자 '학습권 침해'를, 수업시간 후에 조사하자 '부모 동의 없는 방과후 조사'를 문제 삼은 경우도 있었다.

B씨에 따르면, 몇 년 째 행정심판뿐 아니라 경찰·검찰을 거치고 형사·민사재판을 겪느라 심신이 피폐해진 교사의 얘기는 한두 학교만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교사들은 절차 하자가 없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만 비법률가인 교사들에게 이는 결코 쉽지 않다. B씨는 "경찰이나 검사, 판사가 아님에도 지금 학교에선 교사들이 수사나 재판 비슷한 것을 진행해야 하니 정말 미칠 노릇" 이라고 말했다.

요즘 교육청에서 변호사를 임용해 도움을 주고 있지 않느냐고 하자 "새발의 피"라는 답이 돌아왔다. 수많은 학교들의 수많은 학교폭력 사건들을 대체 교육청 변호사 한 명이 어떻게 다 해결하느냐는 거다. 그는 비현실적인 발상이지만 차라리 '1학교 1변호사'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교원이나 공무원은 '공제회'에 매달 몇 천 원씩 소액을 내면 전국 어디서나 거주지 인근에 지정된 변호사사무실에서 무료법률상담을 받을 수 있다. 또 교원노동조합의 경우 우리나라 노동조합 중 유일하게 상근변호사를 두고 교원들의 고충 처리 등 법적지원을 한다.

하지만 B씨가 보기에 수시로 위험에 노출되는 교사들에게 이 정도 법률지원으로는 부족함이 있다. 학교폭력만이 아닌 안전사고의 문제도 있고 특히 최근 교권침해 사레가 늘면서 교권침해에 대한 법적 도움이 절실하다는 게 B씨의 주장이다. 

실제 지난달 25일 경남도교육청은, 2018년 1학기 경남의 학교 현장에서 발생한 교권 침해만 폭언·욕설이 46건(60%), 성희롱 8건(10%), 교사 폭행 5건(6.5%), 수업진행 방해 3건(3.9%), 기타 15건(19.5%)으로 총 77건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위 발표와 함께 경남도교육청은 그 해결 방안으로 '경남행복교권드림센터'를 개관했다. 그 프로그램 중엔 법률상담도 들어 있다. 또 최근 교육청들이 연이어 보험료를 전액 시교육청이 부담하면서 교원들을 교원배상책임보험에 가입시키고 있다. 교원배상책임보험이란, 교원의 수업이나 학생 상담,지도 중의 우연한 사고에 대해 배상청구가 제기됐을 때 손해를 배상해주는 보험이다. 보험금엔 피보험자가 지급한 변호사 비용, 소송절차에 따른 비용, 화해·중재·조정에 따른 비용 등도 포함된다. 
     
하지만 B씨는 이러한 교육당국의 노력에 부족함이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최근 민간보험회사의 교권보호보험에도 가입했다. "우연한 사고시 교사를 대신한 배상을 넘어 보다 총체적인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B씨는 '마을변호사 제도 확대'를 대안으로 제안했다.

"교육과정에서 발생하는 일이고, 교사가 송무에 시달리면 교육에 전념하지 못해 그 피해가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가잖아요. 요즘 생겼다는 마을변호사 제도를 보다 확대하면 어떨까요? 수시로 학교현장을 잘 아는 변호사에게 상의하고 싶어요. 그렇게 관련 학생들도 교사들도 학교도 교육적, 법적으로 모두 상처 없이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 법률서비스 같은 게 갖춰졌으면 좋겠어요."

C씨는 몇 해 전 '나홀로 소송'을 했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건설회사에서 근무해온 C씨는 법학을 배운 일이 없다. 그런데 장인이 지방에 사둔 오피스텔에 문제가 생겼다. 거리 등의 문제로 임차인을 못구하고 장기간 방치했는데 몇 년 간 쌓인 관리비 2천여만 원에 대한 지급명령장이 날아왔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소멸시효'란 것이 있어 1천만 원 정도는 지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처음엔 지인의 도움으로 그 지역 변호사를 소개받아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변호사 역시 '소멸시효'를 언급했다. 그런데 변호사는 1심까지의 소송대리 비용으로 3백만  원을 요구했다. 지인 소개로 특별히 낮춘 가격이라고는 하지만 그리 어려운 법리 같지 않고 절감할 수 있는 금액의 30% 정도인 변호사비는 좀 비싸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C씨는 퇴근하면 늦도록 인터넷 검색을 하며 관련 내용들을 공부했다. 대법원 사이트에서 판례 검색도 했다. 그리고 직접 답변서를 작성하여 제출, 조정을 통해 천만 원 가량 덜 낼 수 있었다. 그 사건과 관련해 C에게 든 비용은 비행기 항공료 외에는 거의 없었다.

다시 비슷한 일이 있어도 '나홀로 소송'을 할 것인지 묻자 C씨는 "경우에 따라 다르다"고 답했다. 관리비 관련 사건은 다소 쉬운 법리에 의한 것이고 다투는 금액도 그리 크지 않아 스스로 해보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설명이었다. 또 C씨는 "쉬운 사건인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법의 문외한인 내겐 품이 많이 드는 일이었다"면서 "이렇게 좀 쉬운 사건이고 다투는 금액이 크지 않을 때는 변호사 수임료가 좀 더 낮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D씨는 요즘 직장 동료들과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다. 경영난이라며 직장에서 몇 달째 월급을 주지 않자 직원들이 버티고 버티다 하나 둘 사표를 내고 있어서다. D씨 역시 퇴사를 준비하며 밀린 월급과 퇴직금을 어떻게 청구하나 퇴사한 동료들에게 물었단다. 그런데 돌아온 답들이 제각각이었다. 몇몇은 노동조합을 통해, 몇몇은 삼삼오오 각기 다른 변호사사무실을 통해 임금 청구를 진행하고 있었고 그에 들이는 비용도 각기 달랐다.

왜 모두가 노동조합을 통해 청구하지 않았느냐는 물음에 D씨의 대답은 "모든 직원이 노동조합에 가입된 것은 아니니까" 였다. D씨는 "노동조합 소속 직원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사건을 진행하는 것 같았어요. 또 한 직원은 다른 이들에 비해 자기만 너무 많은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했다며 불만이기도 했어요. 이번 사건을 겪으며, 노동조합 외에 직군별, 직장별로 함께 법률적인 도움을 받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라고 했다.

공연예술계에서는 장기간 연습에 참여해도 연습 시간은 배제된 채 공연 횟수만 보수 책정에 계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습'은 '노동'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프리랜서 연극인 E씨에 따르면, 공연이 끝난 뒤 약속된 보수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공연에 따라 계약서를 안 쓰고 구두로만 약속하는 관행 탓에 그 청구가 쉽지 않다. 또 계약서를 쓴 경우에도 소액의 보수를 받자고 변호사를 선임하기도 뭣하고, 소송으로 이어지는 것 자체가 두려워 포기하는 경우들이 있다는 게 E씨의 설명이다.

E씨는 그래도 최근 예술인재단이 생겨 법률상담 등의 도움을 준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2011년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의 안타까운 사망 이후 '예술인 복지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이듬해에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이하 '예술인재단')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E씨는 그 재단의 상근 변호사·노무사들이 소송지원까지 해준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기자가 그 내용을 전하자 "아직 모르는 이들도 있는 것 같고 아직 실효성을 말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노무사이자 변호사인 F씨는 "변호사가 노무사의 일을 한다면 시민들에게 보다 도움이 될 테지만 이런 이들이 거의 없다"고 말한다. 노동위원회를 상대로 한 행정심판을 준비할 때는 노무사의 도움으로도 가능하지만 재판으로 이어지면 현재로서는 변호사에게만 그 사건 대리를 맡길 수 있다. 그러니 처음부터 노동 전문 변호사에게 사건을 맡기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돈 때문입니다. 노동 분야에서 변호사를 찾아가면 같은 일로 노무사의 도움을 받을 때 드는 비용보다 몇 배를 더 지급해야 해요. 그러니 그냥 행정심판 단계에서 끝나고 소송까지는 안가겠지 하며 일단 노무사부터 찾는 거죠."

그러면서 F씨는 "유사직역 때문에 논쟁이 있는데 일단 노무사 등이 소송대리권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외로 하고 행정심판 등 현재 노무사와 변호사가 모두 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만 말을 하자면, 사실 지금 변호사들은 그런 일들을 '못 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측면이 있어요. 시민 입장으로만 보자면, 노무사인 변호사나 노동분야를 잘 아는 변호사들이 늘어 노무사의 일을 노무사만큼씩만 받으며 노무사들과 경쟁하는 게 제일 좋은 모습이긴 하잖아요? 그런데 변호사들이 그걸 안하는 거죠. 돈이 안 되니"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변호사들이 노무사 수준의 비용만 받으려고 한다면 시민들의 선택권도 보다 보장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굳이 법제를 마련하지 않아도 변호사직역과 유사직역 간 갈등이 자연스레 해결될 수도 있다는 것. 하지만 그는 "민감한 문제라서 사실 이런 얘기를 드러내고 하지는 못한다"고 했다.

로스쿨생 G씨는 가끔 '무료법률상담'을 해준다. 교통사고가 나거나 임금체불 등의 문제를 겪는 친구들이 전화로 법적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아직 공부중인 터라 잘 모른다고 해도 한사코 도움을 청한단다. 대부분 '아는 변호사가 없어서' 그러는 것 같지만, 요즘 무료상담 하는 곳도 전화하거나 찾아가라고 해도 변호사가 직접 상담해주지 않을 것 같아 못미덥다고 한다. 행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해 친구들에게 해가 될까 싶다면서 G씨는, "변호사들이 늘었다는데도 일반인들은 좀더 변호사가 가까워지길 바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변호사 과잉 시대'라는데 왜 '내 옆의 변호사'는 없나 

우리나라 법률복지의 대표적인 모습은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법적지원과 형사재판에서의 국선변호인제도다. 하지만 이 제도들은  '모든 시민'에게 열려있지는 않다. 그래도 최근 행정관청의 변호사자격자 임용이 늘고, 마을변호사나 법률홈닥터도 등장했다. 논란이 있기는 하나 이른바 '삼례슈퍼 살인사건'을 계기로 수사단계에서부터 피의자를 지원하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도 추진 중이다. 시민에게 보다 낮은 법률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노력들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

하지만 변호사가 2만 명을 넘어서며 바야흐로 '변호사 과잉 시대'를 맞이했다고 해도, 우리사회의 평범한 시민들은 아직 '내 옆의 변호사', '보다 낮은 법률서비스의 문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기사를 쓴 박은선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http://www.lawlowyer.net) 소속으로, 기사의 수익금은 로스쿨 정상화 및 법조문턱 낮추기 운동에 전액 기부합니다.


태그:#변호사 과잉 시대?, #법조문턱낮추기실천연대, #법률비용보험, #형사공공법률서비스, #마을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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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사회과 교사였고, 로스쿨생이었으며, 현재 [법률사무소 이유] 변호사입니다. 무엇보다 초등학생 남매둥이의 '엄마'입니다. 모든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 행복할 권리를 위한 '교육혁명'을 꿈꿉니다. 그것을 위해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글을 씁니다. (제보는 쪽지나 yoolawfi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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