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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적은 책이다. 유명인사가 휴가 기간에 읽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책을 냉큼 주문한 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5권짜리 대하소설인데 분량도 문제이지만 가격도 비쌌다. 바둑이라는 내가 잘 모르는 분야에 관한 책이기도 했다. 책이라면 충동구매를 일삼는 내게는 이 모든 것들이 장점으로 다가왔다. 과연 배송되어 온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잊혀가는 아름다운 순수한 우리말들이 가득했고 바둑에 관한 몰랐던 지식도 많았다. 스토리 전개도 좋았다. 보석 같은 책이라고 생각을 했고 연신 감탄을 했더랬다. 일에 치여서 한 달 만에 2권째를 읽었는데 3권으로 들어서면서 내 기준으로는 스토리 전개가 느슨해졌고 초반의 쫄깃한 재미마저도 줄어 들어가고 있었다. 

'놀이'가 '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웃기는 것은 내가 쓴 책에서 '재미없는 책은 그만 읽고 던져버리라'고 독자들에게 충고했지만 정작 본인은 이미 흥미를 잃은 책을 놓아주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이다. 유명인사가 읽고 감동을 한 책을 나도 읽었다는 자부심과 여러 책을 쓴 저자의 가오는 쉽게 포기 못 할 유혹이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렀다. 더 읽지 못하는 책을 붙잡고 4개월을 보냈다. 책의 적은 책이라고 한 이유다. 그 4개월 동안 다른 책을 읽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침내 더 견디지 못하고 '짐'을 내려놓았던 날의 '쾌감'을 잊지 못한다. 진도가 나가지 않는 책을 던져버리자마자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새로운 책을 닥치고 읽기 시작했다. 

마치 수십 년 동안 감옥에서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어쩔 수 없이 가끔 '짐'이었던 책을 보면 '죄책감'이 들기는 한다. 변대원이 쓴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는 나의 죄책감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 책은 아직 독서에 취미를 들이지 못하거나, 열심히 읽긴 하는데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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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바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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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유용함을 진지하게 설파하거나 여학교 기숙사 사감선생처럼 엄격하게 훈육하는 독서법을 말하지 않는다. 당연히 독서의 '재미'를 중요하게 여기고 어떻게 하면 책을 재미나게 즐길 수 있는지를 말하는 책이다.

교과서처럼 추상적이고 일반적인 잔소리를 늘어놓지도 않는다. 이 책에는 자신의 독서 생활에 대한 질문지를 제시하고 그 결과로 자신의 독서 생활 현황을 파악하게 하며 각자의 상황에 맞는 독서법을 제시한다.

변대원이 말하는 독서법은 급하게 삼키지 않고 잘근잘근 씹어 먹어서 책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을 꼼꼼하게 섭취하게 해준다. 재독과 천천히 읽기를 권한다. 책을 함부로 다루기를 원한다. 필사를 추천한다. 필사는 책을 가장 천천히 읽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일반적으로 필사를 문장력을 향상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지만, 필사야말로 책을 씹어 먹어서 그 책이 가지고 있는 영양분과 맛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이라는 저자의 주장에 공감한다. 

책에 메모하고 기록하는 것을 망설이지 말라는 저자의 말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책은 모시는 존재가 아니고 이용하고 즐기는 도구가 아니던가?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를 읽다 보면 몇 달 동안 내게 짐이었던 책을 던졌을 때의 쾌감이 느껴졌다. 이토록 자상하고 세심한 독서론이라니!

저자의 세심함을 확인시켜 주고 싶다. 저자가 추천하는 책에 메모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좋은 구절은 초록 색연필로 줄을 긋는다.
다시 읽고 싶은 구절이 있으면 상단 모서리를 접는다.
큰 울림을 준 구절이 있으면 하단 모서리를 접는다.
특별히 좋은 구절은 빨간 색연필로 줄을 긋는다.
특별한 키워드에는 동그라미를 친다.
글을 읽다가 떠오른 생각은 파란 펜으로 적는다.
당장 적용해야 하거나 중요한 내용은 빨간 펜으로 적는다.

모든 독자들이 이 메모 방법을 실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토록 꼼꼼하게, 진지하게, 철저하게 독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실천해 온 사람의 책은 꼭 한 번 읽어 봐야 한다. 적어도 책을 읽고 싶거나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책은 꼭 끝까지 읽어야 하나요? - 내 맘대로 읽어도 술술 읽히는 독서의 비밀

변대원 (지은이), 북바이북(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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