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샘~ 잘 지내셨어요?"
"잘 지내지? 방학했어? 학교생활은 즐겁고?"
"네~ 1학기 내내 좋은 성적을 받았어요. 방학 동안 알바할 거예요."

 
제자(아래 P라 칭함)의 목소리는 항상 반갑다. P는 올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P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충분히 갈 수 있는 실력을 가졌지만 가정형편상 대학을 포기하고 전북에 있는 한 마에스터고를 선택했다.
 
다른 친구들이 인문고 진학을 위해 공부할 때 P는 혼자서만 특성화고 입학에 필요한 영어 면접을 준비하면서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담담한 성격의 아이다. 가정형편을 걱정하고 일하는 엄마를 염려하는 속 깊은 P의 눈빛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고등학교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을 때였다.
 
"대학에 가지 않아도 전공 분야를 공부하고 성적이 좋으면 대기업에 취업을 할 수 있대요."
 
P의 표정만으로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황금빛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그때 당시의 나는 P에게 격려를 해주고 같이 기뻐해 줬지만 진심은 아니었다. P와의 전화를 끊고 나서, 읽고 있었던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을 다시 펼쳤다.
 
과도한 업무와 사내 폭력의 두려움에 떨다가 생을 포기한 김동준.
구의역 김군.
CJ 조연출 이한빛.
LG유플러스 골센터 전주센터 현장실습생 홍수연.
세 가지의 기계를 책임지고 일하다가 그 기계 안에서 생을 마감한 이민호.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겉표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겉표지
ⓒ 돌베게

관련사진보기


죽음에 중요도를 따질 수는 없지만 아이들의 죽음은 더 각별하다. 어른들의 이기심이 이 아이들을 비롯한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더 많은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지하철을 고치다가, 자동차를 만들다가,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다가, 콜 센터에서 전화를 받다가, 생수를 포장・운반하다가, 햄을 만들다가, 승강기를 수리하다가… 그러니까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 영역에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의 흔적이 남아 있다."
 
"우리는 자라면서 언제 어떻게 배우는 걸까. 부당한 상황에서는 참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위험하면, 불안하면, 힘들면 작업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회사는 그만두어도 된다는 것을. 세상에 원래 그런 건 없다는 것을."
 
"너나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었을까. 지금에야 가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이 작지만 큰 사람들의 목소리가 우리 삶을 숙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주기를, 이미 노동자이거나 언젠가 노동자가 될 아이들에게 존엄을 지키는 노동의 가치관을 심어주기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조금씩 지워주기를,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도 괜찮다는 가능성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의 메시지는 명확하다. 은유 작가는 '겸손한 목격자'의 태도로 이 책을 썼다. 책을 읽고 있는 나는 '겸손하지 못한 방관자이며 가해자'란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이천제일고등학교 교사인 장윤호는 이런 말을 했다.
 
"내가 치킨 배달을 시켜서 먹는데 치킨 값이 만 원이다. 비싸다고 느껴요. 그런데 배달 알바 오는 아이들이 많잖아요. ... 나한테 배달 온 아이가 최저임금도 못 받아요. 얘한테 최저임금을 제대로 챙겨주기 위해서는 내가 만이천 원에 먹어야겠죠. ... 나도 노동 착취를 하고 있구나."
 

이 부문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노동 착취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의 행위라고만 생각하고 살았구나'란 생각에 무서움마저 든다. 특성화고에 다니는 학생들마저도 '알지 못하는 아이들의 죽음'을 먼 일로 느꼈다고 한다.

나 또한 뉴스나 기사에서 사고 소식을 접할 때마다 나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부정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알아가고 깨닫고 성장한다.

"반항하는 것도 사회적 지위나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 위원장인 이은아의 말이다. 이은아는 학교를 졸업하고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이란 단체가 있다는 걸 알았다. 이은아는 체공녀 강주룡처럼 어떤 단체인지 궁금해서 가입했다가 '해야만 한다'고 깨닫고 위원장의 자리에까지 갔다. 목소리를 키우라는 건 본인이 원하는 바를 소리 내어 말할 자격이 있다고 스스로 느끼라는 뜻이라고 한다. 
 
고 김동준 사건을 담당했던 노무사 김기배는 "우리에게 주어진 빈틈, 채워져야 할 빈틈이 있다"고 했다. 우리가 사회적으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얼마나 도덕적으로 살아왔는지를 떠나서 우리 모두에게는 빈틈이 있다.

나 또한 내가 방관자이며 가해자란 걸 몰랐다. 이런 게 그가 말한 빈틈이 아닐까. 아이들은 배우고 성장하고, 어른인 우리는 각자의 빈틈을 깨닫고 메워나가면, 앞으로의 세상에도 변화가 일어나길 바란다.
 
P가 꿈꾸는 황금빛 미래가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을 예정입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은이), 임진실 (사진), 돌베개(2019)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