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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독서골든벨'이라는 대회가 있다. 3학년부터 6학년까지 각 학년별로 정해진 책을 읽고 퀴즈를 푸는 대회이다. TV프로그램 '골든벨'처럼 최후의 1인이 남을 때까지 문제는 이어진다.

책 내용으로만 문제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줄거리나 감동받은 내용, 기억에 남는 장면은 물론 누구누구 집의 대문 색, 창문 위치 등을 묻는 문제도 출제된다. 모든 책을 이런 방식으로 읽어야 하지는 않지만 초등학생이 정독을 해보는 경험으로 괜찮은 방식으로 여겨진다.
 
골든벨 대회 시작전의 아이들 대회 시작 전의 아이들 뒷모습입니다.
▲ 골든벨 대회 시작전의 아이들 대회 시작 전의 아이들 뒷모습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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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판에 이름 적는 강물이 강물이가 대회 시작전에 보드판에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 보드판에 이름 적는 강물이 강물이가 대회 시작전에 보드판에 이름을 적고 있습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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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시립도서관에서 주최하는 독서골든벨에 강물이가 학교 대표로 나가게 되었다. 시립도서관 홈페이지에는 학교장 추천 참가자 외에 일반 참가자 신청을 할 수 있다고 안내가 되어 있었다. 쌍둥이는 같은 경험을 해봐야 하기에(내 생각) 마이산도 참가 신청을 했다. 며칠 후 도서 제목이 발표되었다.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9권 : 일본의 지배에서 해방으로'이다.

지역 서점 세 곳(예스트서점, 우리문고, 양우당서점)에서 도서를 기증해 준다고 했다. 나는 도서관에서 참가 신청 확인을 하고 책을 받아왔다. 양장본으로 된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주어진 시간은 단 이주일. 나에게 책을 건네받은 아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강물 : 책이 너무 두꺼운데. 시간이 부족할 거 같아.
마이산 : 학교에서는 지금 삼국시대 배우고 있는데...


아이들의 반응은 내가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나 : 그래서 엄마가 미리 책을 읽어 봤어. 책에서 '용선생'이 옛날이야기 하듯 설명해주고 있어. 엄마랑 하루에 1교시씩 같이 읽어보자.

이 책은 총 7교시로 구성되어 있다.

- 1교시 : 식민지 조선 하늘 아래서
- 2교시 : 온 땅을 울린 '대한 독립 만세'의 함성
- 3교시 : 문화 통치, 조선인을 분열시키다
- 4교시 : 저항의 목소리들이 터져 나오다
- 5교시 : 화려하지만 허망한 도깨비 경성에서
- 6교시 : 일본의 침략 전쟁에 모든 것을 빼앗기다
- 7교시 : 힘을 모아 해방의 날을 준비하다


1교시를 읽은 첫날, 강물이와 마이산은 분개했다. 책에서는 조선인 아이들과 일본인 아이들이 받는 차별을 예로 들어준다. 같은 나이대의 이야기라서 아이들은 그 시대의 아이들을 친구로 여기며 안타까워했다. '조선 총독부, 헌병 경찰 제도, 회사령, 조선 교육령, 토지 조사 사업'과 같은 어려운 단어들은 하나하나 이야기로 만들어 설명이 되어 있다.

2교시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읽은 때는 올 봄에 봤던 영화 <항거>를 떠올리며 역시 분개했다. 아이들의 머릿속에서 영화의 영상과 책의 이야기가 만나 시너지 효과를 일으키고 있었다. 3교시로 이어지면서 아이들에게서 뜻밖의 반응이 나왔다.

강물 : 좀 이상한데, 조선인을 차별하지 않고 정책을 부드럽게 바꾼다면서 경찰을 3배쯤 늘린다고?
마이산 : 자유를 준다면서 신문과 잡지 내용을 미리 보고 고쳐 주겠다고?


초등학생 아이들의 눈에도 일본의 꼼수는 그대로 읽혀졌다. 어린아이도 알 수 있는 눈가림을 무력을 앞세워 행하는 일본이 행한 문화 통치는 읽어주는 내내 "말도 안 돼"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역사책이라서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모든 기록이 담겨 있다. 수많은 사람들, 여러 단체들, 각각의 사건들의 이름과 날짜 등등이 아이들에게는 어려웠다.

강물 : 그런데 날짜가 너무 많이 나와.
마이산 : 엄마 이거 다 외워야 해?


큰일이다. 아이들이 역사를 암기과목으로 인식하려고 한다. 내가 중학생, 고등학생이었을 때, 근대사는 역사교과서의 맨 뒷부분에 실려 있었다. 가끔은 기말고사 범위에서 벗어나 아예 수업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공무원 시험을 보는 친구들은 "왜 이렇게 단체가 많아. 이름도 비슷비슷한 사람들이 뭐 하러 이렇게 많이 헷갈리기 쉬운 단체들을 만든 거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불만을 토해내기도 했다.

나 : 아니야. 너희들 책 읽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어?
마이산 : 화가 났어. 왜 일본은 우리나라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지. 왜 쫓아내지 못했는지.
나 : 그거면 됐어. 역사는 암기하는 게 아니라 기억해야 하는 거야.


책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조선인 관리는 퇴직하라!', '일본인 교사에게 배우지 말라!', '일본인 공장의 직공들은 총파업을 하라!', '농민은 일본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바치지 말라!', '일본 상인과는 관계를 끊어라!' 그 시대의 전단지에 있던 내용들이다. 이 부분을 읽을 때 아이들에게서 나온 대화는 다음과 같다.

강물 : 나도 이렇게 하고 있어.
나 : 뭘?
강물 : 뭘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고. 나도 일본 게임 안 하잖아.
마이산 : 맞아. 일본 만화도 안 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나도 독립운동 하고 있는 거야.


아이들은 전에 'No No Japan'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나 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 생각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 나는 이것이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골든벨에서는 지정도서 외에 '군산의 문화재와 관광지'에 대해서도 문제가 출제된다고 했다. 군산시 홈페이지에서 조회를 해보니 문화재와 관광지가 수백 개에 달했다. 일단 출력을 했는데 그 분량이 몇 십 페이지가 된다. 아이들에게 역사는 외우는 게 아니라고 말한 지가 불과 며칠 전인데 그걸 그대로 숙제처럼 건네줄 수 없었다.

군산 근대사거리에는 근대역사박물관, 구 군산세관, 구 조선은행 군산지점, 구 미즈상사,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 고우당, 히로쓰가옥, 동국사 등이 있다. 어릴 때 엄마 아빠와,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을 공부삼아 다시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내가 안 가봤던 곳(히로쓰가옥, 동국사)로 가기로 했다.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가옥) 군산 근대사 거리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입니다.
▲ 신흥동 일본식 가옥(히로쓰가옥) 군산 근대사 거리에 남아있는 일본식 가옥입니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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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사에 있는 소녀상 옆에서 군산 동국사에 있는 소녀상입니다.
▲ 동국사에 있는 소녀상 옆에서 군산 동국사에 있는 소녀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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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쓰가옥에 갔을 때 마침 내부 개방을 하고 있었다.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내부를 보면서 다시금 화를 치밀어 올랐다. "지금 보고 있는 이 가옥이 그때 기준 부유층의 중간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여기저기에서 탄식이 나왔다. 관람을 끝내고 나오면서 마이산이 물었다.

마이산 : 엄마, 그런데 왜 여기를 보존하는 거야?
나 : 기리라고 보존하는 게 아니라 잊지 말라고 보존하는 거야.


이번 골든벨을 통해 아이들은 우리 역사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고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그 곁에서 나 또한 같이 공부했다. 기억해야 하는 우리 역사를.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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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고 있는 평범한 아줌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은경의 그림책 편지',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연재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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