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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표지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표지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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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에서도 교정을 보다

어느 저자인들 자기 이름으로 펴낸 책에 공을 들이지 않으랴. 이번에 나온 나의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사계절)은 그동안 펴낸 책 가운데 가장 정성을 많이 들이고, 교정을 많이 본 작품이다. 원래 이 책은 안중근 의거 110주년이 되는 2019년 10월 26일을 겨냥해 그날보다 10일 쯤 앞선 10월 중순에 발간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저자와 출판사 간 교정쇄가 무려 예닐곱 차례나 오가다가 그만 데드라인을 훌쩍 넘겨버렸다.

10월 하순에야 마지막 교정쇄를 출판사로 넘겼다. 나는 그제야 가벼운 마음으로 11월 초순 민화협이 주관하는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 만 우키시마호 순난(殉難) 현장 답사길에 올랐다. 11월 4일 오후 5시, 일본 교토부 마이즈루만 현지에서 추도제가 막 시작한 그 순간에 내 손전화가 울렸다. 사계절 출판사 편집부에서 마지막 교정 지적사항을 전했다. 

내용인즉, 어린 유동하는 결과적으로 안중근 의사에게 이용만 당한 채 뤼순재판소에서 1년 6개월의 형을 받았다. 이에 대해 의거 당사자로서 아무런 사죄의 말도 없다는 것은 어린이 교육상 매우 좋지 않다는 것. 아마 안 의사도 당시 그 점을 대단히 미안해 하셨을 것이다. 그래서 본문 가운데 안중근 의사의 사죄 말 한 마디를 넣는 게 좋겠다는 얘기였다. 듣고 보니 안 의사의 속마음을 꿰뚫은, 역시 어린이 책 출판사는 뭔가 다름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래서 나는 그날 밤, 숙소에서 노트북을 켰다. 그런 뒤 1909년 3월 25일 간수 지바 도시치로부터 다음 날 사형 집행이 있을 것 같다는 귀띔을 받고, 안중근 의사가 잠들기 전 기도를 드릴 때 아래 문장을 새로 넣었다.
 
"… 그리고 거사 때문에 우덕순, 조도선까지 감옥에 가게 한 것도 미안했다. 더욱이 어린 유동하를 (러시아 말 통역으로) 꾀어 이 사건에 가담시킨 게 가슴 아팠다. 그래서 그를 위해 특별히 천주님께 기도드리고 긴 묵상에 잠겼다." -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106쪽
 
나는 이 책 후기 작가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애국자요, 영웅인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어린이들에게 들려드린다. 대한의 작가로서, 교육자로서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 눈빛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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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안중근을 만나다

내가 안중근 의사를 처음 알게 된 것은 1950년대인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그 무렵 내 고향 구미에는 영화관이 없었다. 구미면사무소 옆 의용소방대 창고에서 영화를 상영했다. 그 시절은 영화 한 편을 감상하려면 필름이 최소한 너댓 번은 끊겼고, 화면에서는 줄곧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그때 우리들은 영화의 감독, 주인공, 배우의 이름을 잘 몰랐다. 그저 등장인물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눴다. 좋은 사람이 나쁜 사람의 모함에 누명을 쓰고 곤경에 빠지다가 마침내 진실이 밝혀져 복수를 하면 손뼉을 치고, 나쁜 사람이 계속 좋은 사람을 해코치하면 눈물을 흘리거나 탄식했다.

그러면서 영화 포스터에서 악역을 맡은 배우 얼굴에 흠을 냈던, 픽션과 논픽션도 제대로 구별치 못하는 유치한 어린이였다. 영화 상영 중, 필름이 끊어지면 휘파람을 불거나 "내 돈 물리 도!" 하고 아우성쳤던 기억이 여지껏 뚜렷하다.

그런데, 그때 단체로 본 영화 중 <고종황제와 의사 안중근>만은 기억이 뚜렷하다. 주인공 안중근 역의 배우 겸 감독 전창근은 물론, 이토 히로부미 역을 맡은 배우 최남현까지.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 플랫폼에서 가슴에서 권총을 빼내 이토 히로부미를 장쾌하게 쓰러뜨릴 때 우리 악동들은 가마니를 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모두 박수를 보냈다.

그 뒤 나는 역사와 지리를 배우면서 중국 하얼빈은 까마득히 먼 붉은 나라, 도무지 갈 수 없는 나라의 어딘가로 새겨졌다. 그 먼 나라를, 나는 쉰이 훨씬 넘은 1999년 8월에 중국대륙 항일유적답사 길에 들르게 됐다. 그때 하얼빈 거주 동포사학자 서명훈 선생으로부터 하얼빈역 플랫폼 의거 현장에서 그날의 상황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귀국 후 <항일유적답사기>를 집필할 때, 마치 내가 안중근 의사가 돼 이토 히로부미를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기는 마음가짐으로 그 장면을 써내려갔다. 그리고는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라는 제목을 붙였다. 아울러 의거지 하얼빈역 플랫폼에는 아무런 표지도 없다고 국가보훈처와 광복회에 쓴소리도 했다.

여러 독자들은 그 대목이 매우 좋았다고 댓글이나 편지 또는 전화로 격려했다. 그 뒤 국가보훈처와 광복회의 노력으로 하얼빈역 플랫폼 의거지에 총을 쏜 자리와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진 자리에 표지를 했다는 보도를 보게 됐다. 글쓴이로서 보람과 기쁨을 누렸다.
 
 이오덕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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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

올해 초 사계절출판사 측으로부터 어린이용 <안중근> 이야기를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 순간 나는 가장 먼저 이오덕 선생님이 떠올랐다. 한 선배가 말했다.

"작가의 가장 바람직한 모습은 마지막에는 어린이를 위한 작품을 쓰는 일이다."

나는 이번 책으로 어린이용 도서를 올해 세 권째 펴내는데, 아마도 늘그막에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 직접 가르침을 받지 않았더라면 어림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이오덕 선생을 만나면서 '글은 쉽게 써야 한다'는 것과 '글의 민주화'를 배웠다. 

안중근! 누가 뭐래도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다. 안중근은 좌우, 남북을 막론하고 심지어 중국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다. 이런 위대한 인물을 글로써 그린다는 것은 그 영광 못지않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가.

다행히 나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기를 맞은 2009년 10월 26일, 우리나라를 출발해 러시아 연해주 연추하리(현 크라스키노 추카노프카)로 갔다. 거기서 100년 전 안중근 의사가 나라의 원수 이토 히로부미를 쓰러뜨리고자 갔던 그 길을 그대로 뒤따랐다. 안중근 의사 마지막 길의 출발점인 크라스키노에서부터 순국한 뤼순 감옥까지 150여 일의 여정을 한 치 어긋남이 없이 모두 답사했다.

당시와 똑같은 교통 기관을 이용하면서 아흐레 동안 안중근 의사 유적지를 샅샅이, 낱낱이 살펴보았다. 그러면서 현지 역사가에게 유적지에 대한 증언을 자세히 듣고, 카메라로 담아왔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행 열차로 갈아탄 우수리스크 역으로 아직도 당시의 모습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 행 열차로 갈아탄 우수리스크 역으로 아직도 당시의 모습이었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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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신을 다해 쓰다

나는 국내외의 많은 문헌을 자세히 보고, 현지답사 때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다시 대조 확인하면서 어린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영혼과 정신을 다해 <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을 썼다. 다시 태어나 쓴다고 해도 이보다 더 열과 성을 다해 쓸 수는 없을 듯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쓴 이 책을 감히 안 의사님 제단과 이 땅의 어린이들에게 바친다.

마침 출판사가 송진욱 일러스트레이터에게 의뢰했다. 본문 중간 중간에 어린이들이 아주 쉽고 흥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그림을 넣었다.

나는 이 책을 펴내면서 가장 크게 아쉬웠던 대목이 있다. 바로 아직도 안중근 의사의 유언대로 당신의 유해를 고국으로 모셔 오지 못했다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남북한 동포가 한마음으로 안 의사 유해를 국내로 모셔 와 성대히 국장을 치른 뒤 비무장 지대에 안중근 성지를 만들어 온 겨레가 자유로이 참배 숭모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음의 기도로 이 글을 마무리한다.

"안중근 의사님, 당신이 있었기에 이 나라, 이 겨레는 영원할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도 부디 이 나라, 이 겨레를 지켜 주옵소서."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뤼순감옥
 안중근 의사가 순국하신 뤼순감옥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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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청년 안중근

박도 (지은이), 송진욱 (그림), 사계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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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교사생활 후 원주에서 지내고 있다. 장편소설 <허형식 장군> <약속> <용서>, 역사다큐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사진집<지울수 없는 이미지> <한국전쟁 Ⅱ> <일제강점기> <개화기와 대한제국> <미군정 3년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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