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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미술관장.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나비미술관장.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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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총수 장남과 대통령 딸과의 결혼이라고…세상이 떠들석 했었지. 그런데 그런 가정사를 누가 알겠어요. 안타까울 뿐이죠. (이혼)조정이 잘 되지 않겠어요?"

재계 한 고위급 인사와 나눴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예상은 빗나갔다. 한때 세기의 결혼이라며 떠들석했지만, 결국 그들은 30년 결혼 생활을 끝내기로 했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이야기다.

2020년, 이들에겐 '세기의 소송'이 기다리고 있다. 이유는 재판 결과에 따라 재계순위 3위 SK 그룹의 지배구조까지 영향을 받을수 있기 때문이다. 세기의 결혼에서 세기의 재판으로, 그동안 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재판부는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시계를 30년전으로 잠깐 돌려보자. 지난 1989년 청와대 영빈관. 두명의 선남선녀가 나란히 모습을 나타냈다.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씨와 고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다. 청와대서 열린 이날 결혼식 주례는 이현재 국무총리였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미국 시카고대에서 유학 중에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이후 1988년 약혼에 이어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 현직 대통령의 딸과 재벌 총수의 장남, 결혼식장은 청와대, 주례는 국무총리, 말그대로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호사가들 사이에선 '세기의 결혼' 부터 '정략결혼' 등 여러 말들이 나돌았다.  

세기의 결혼과 SK의 성장 그리고 특혜 의혹 

SK의 전신인 선경그룹이 급성장한 것은 1980년 한국석유공사(이하 유공)를 인수한 후부터다. 70년대 초반 고 최종현 회장이 정유공장을 만들고, 1차 석유파동 당시 중동으로부터 석유 수입 금지 조치를 뚫고 원유를 들여온 일화는 유명하다. 정부가 유공 민영화 방침을 밝힌 후, 당시 재벌간 치열한 인수전이 펼쳐졌다. 최 회장이 당시 사우디와 장기 원유공급계약과 1억불 차관까지 들여오자, 정부는 선경의 손을 들어줄수 밖에 없었다. 유공을 인수한 선경은 재계 순위를 5위권까지 끌어올렸다.

최근 들어 일부에선 유공 인수를 두고, 노 관장과 연관지으며 특혜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유공인수전 자체가 1980년이었고, 노 관장은 당시 대학생 신분이었다. 또 최 회장 부부가 만난 것 역시 미국 유학시절인 80년대 후반으로 시기적으로 유공 인수전과는 사실상 관련이 없다.

선경은 정유사업과 함께 차세대 먹거리로 통신사업에 뛰어들었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룹내에서 통신사업 진출을 준비하면서 선경텔레콤을 세웠고, 91년 대한텔레콤으로 이름을 바꿨다. 정부는 91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에 나섰고, 국내 재벌기업들이 뛰어들었다. 1, 2차 심사때 큰 점수차로 선경이 사업권을 따내자, '대통령 사돈기업 특혜'라는 주장이 터져나왔다.

노태우 정권 말기에 대통령 선거까지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시 집권 여당 대선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이같은 의혹에 가세했다. 결국 1992년 선경은 이동통신 사업권을 내놔야 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재계 한 인사는 "대선을 앞두고 여야 가릴것 없이 선명성 경쟁에 나서면서, 그룹 외부로부터 엄청난 압력에 시달렸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그룹 인사들이 정당하게 획득한 사업권을 반 강제적으로 반납하게 한것 자체가 오히려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회고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첫해인 1993년 선경은 상장기업이던 한국이동통신 민영화 입찰에 참여한다. 이어 94년에 막대한 비용을 감수하면서 인수에 성공했다. 한국이동통신의 주가는 93년 초 8만원선이었다. 하지만 민영화에 따른 재벌기업의 참여소식이 알려지자, 주가는 크게 뛰었다. 결국 선경은 이동통신 주식을 한 주당 33만5000원, 127만주(23%)를 사들이는데 모두 4271억원을 써야했다. 오늘날 에스케이텔레콤이 이렇게 나왔다.

또 최근 선경의 지난 한국이동통신 인수과정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쪽 영향이 미치지 않았느냐는  의혹도 나왔다. 하지만 1993년은 김영삼정부 집권 초기에 노태우 정권과 거리를 두면서 각종 개혁 정책을 펼쳐 나갈때 였다. 오히려 선경그룹 내부에서조차 이동통신 주식을 너무 비싸게 사는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그룹의 성장과 4년 전 최 회장의 갑작스런 고백…'이혼 거부'로 맞선 노 관장

1998년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시절 최종현 회장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SK는 최태원 회장의 2세 경영 시대를 맡는다. 물론 그룹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수펙스 추구협의회 의장에 손길승 부회장이 선임되면서, 대주주와 전문경영인이 함께하는 경영실험도 이어졌다. 2000년대 들면서 SK는 외국계 투기자본인 소버린자산운용의 적대적 인수합병 공격과 검찰 수사 등으로 부침을 겪기도 했다.

이후 SK는 그룹 지배구조를 지주회사체제로 바꾸고, 하이닉스 반도체를 인수하면서 또 다시 전환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특히 최 회장 스스로 그룹 경영의 목표를 '이익 극대화'에서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중요시하면서 '행복 극대화'를 주창하고 나선 것은 의미심장하다. 재계 주변에선 SK의 이같은 변신에는 최 회장의 신변 변화에서 찾기도 한다.

이는 최씨 부부를 둘러싸고 터져 나오는 여러 루머들과 무관하지 않았다. 결국 최 회장이 직접 나섰다. 그는 지난 2015년 12월 세계일보에 한 통의 편지를 보냈다. 노 관장과 결혼 초기부터 10년 넘게 성격 차이 등으로 쉽지 않은 결혼 생활을 해왔다는 고백이었다. 

이어 최 회장 자신이 다른 여성과의 만남을 가졌고, 딸을 낳았다는 사실까지 공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당시 혼외 딸 나이가 6살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 부부의 별거기간은 10년 안팎에 달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 회장의 고백과 SK 주변인사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지난 2011년 검찰의 최 회장을 상대로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한 수사를 계기로 이들 부부가 사실상 결별 상태였다는 것.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당시 노 관장이 회사와 최 회장에 대해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다녔고, 이에 최 회장이 큰 분노와 배신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최 회장은 지난 2013년 이혼 소송을 위해 이같은 내용을 담은 소장을 쓰기도 했다.

또 지난 2015년에 노 관장이 최 회장의 광복절 특사에 반대하는 청원을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낸 사실도 뒤늦게 공개됐다. 결국 최 회장은 지난 2017년 정식으로 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냈지만, 노 관장은 "이혼할 의사가 없다"고 거부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4일 노 관장이 최 회장을 상대로 이혼에 따른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소송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치욕적인 시간을 보낼 때도 일말의 희망을 갖고 기다렸으나 이제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게 됐다"면서 소송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노 관장의 소송으로 이들 부부는 사실상 이혼에는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노 관장이 요구한 재산분할 내용이다. 결과에 따라 그룹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 관장의 요구는 위자료 3억원 이외에 최 회장의 재산 분할이다. 분할을 청구한 재산 규모는 최 회장이 갖고있는 그룹 주식의 42.29%다. 최 회장은 SK그룹 주식의 1297만5427주를 갖고 있다. 노 관장 요구대로 라면 548만7377주를 넘겨 줘야 한다. 지난 10일 SK 주식의 종가 24만6000원으로 따지면 1조3498억원에 달한다. 금액도 금액이지만, 최 회장의 그룹 지배권은 크게 약화될 수 밖에 없다.

1조3500억 규모의 재산분할 요구…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그렇다면 과연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법조계에 따르면 보통 이혼소송에서 위자료의 경우 1억원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결정된다고 한다. 노 관장의 위자료 3억원은 재벌그룹이라는 특수성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재산분할의 경우 법원은 통상적으로 혼인기간과 재산형성의 기여도 등을 감안해 결정을 내린다. 노 관장 쪽은 최 회장과의 혼인 기간이 30년이 넘는다는 것과 결혼 이후 SK그룹의 성장을 집중적으로 소명하면서, 자신의 기여도를 밝힐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재계와 법조계 주변에선 그룹 성장 과정에서의 노 관장의 기여도를 어떻게 볼 것이냐를 두고 논쟁이 치열하다. 그룹 성장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 등 노 관장 일가의 도움이 인정된다면, 재산 형성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반면 재산 분할의 경우 결혼 이후 늘어난 재산에 대한 기여도를 따지기 때문에, 최 회장과 노 관장이 이미 결혼할 때부터 자신들의 재산이 있었다면, 기여도가 크게 인정되지 않을수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재산가의 이혼소송에서 법원의 판단 등은 다소 보수적인 입장이 많았다. 삼성가 이부진 신라호텔 사장과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의 이혼 소송 경우, 지난 9월 2심 재판부는 임 전 부사장이 요구한 1조2000억원 가운데 단 141억여 원만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이 부사장의 재산 대부분이 결혼 전에 이미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지난 2006년 강신호 동아쏘시오그룹 명예회장의 전 부인이었던 박아무개씨가 제기했던 이혼 및 재산분할소송은 합의금 53억원으로 종결 됐다. 이들 부부는 1950년에 결혼한 후, 1970년대부터 별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택진 NC소프트 대표는 지난 2004년 정아무개씨와 이혼하면서 당시 300억원어치인 회사 지분 1.76%를 지급했다.

재벌총수 장남과 대통령 딸과의 결혼. '세기의 결혼'은 30년 만에 끝을 앞두고 있다. 최 회장은 최근 들어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책임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그룹의 역량을 쏟고 있다. 노 관장도 어느 때보다 사회 공동체를 강조하고 있다.  앞으로 이어질 '세기의 소송'이 어떻게 막을 내릴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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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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