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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군데면 모를까 여러 출판사에서 일치된 견해를 답신으로 보내왔다.

"글은 참 좋은데... 뭐랄까 이 장르(서평집)는 유명한 사람들이나 쓰는 거예요. 요새 그렇잖아요. 유명한 사람한테 글을 쓰게 만들지, 글 잘 써서 유명해질 수 없는 세상... 출판 현실이 그래요, 죄송합니다."

처음 써보는 책이라 사실 아무것도 모르고 무작정 떠난 길이었다. 정치학을 7년쯤 공부했으면 책 한 권은 써야 한다는 치기 어린 윤리의식의 발로였다. 취업은 성공 후기가 있고 시험은 합격 수기가 있는데, 출판은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따라 할 본보기가 없으니, 일단 무작정 원고부터 쓰고 취준생 친구 녀석 자기소개서 양식을 빌려다가 알음알음 출간기획서를 만들어, 여기저기서 수집한 출판사 메일을 하루에도 몇 건씩 뿌리는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쳤다.

대부분의 출판사는 묵묵부답이었다. 기계식 답장이라도 보내주면 그나마 감사했다. 정성스러운 거절 메일을 받을 때면, 그 황송한 당혹감에 몸 둘 바를 몰랐다. 유명한 사람만 쓸 수 있는 장르라니.

다이어리가 베스트 셀러가 되고, 서평 다단계가 횡행하는 세상에서 왜 내 글이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인지 괜히 부아가 치밀기도 했다. 그래도 몇몇 편집자들은 계속 문을 두드리면 주인을 찾을 원고라고 따로 메일을 주며 나를 독려했다.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  나호선 지음 |정가 17,500원| 반양장본 | 352쪽 | 140*215mm
▲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  나호선 지음 |정가 17,500원| 반양장본 | 352쪽 | 140*215mm
ⓒ 나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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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는 계속 두드리는 자에게 우연의 얼굴을 하고 운명처럼 다가온다고 했던가.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이던 나는 학부 시절 정말 재밌게 읽었던 정치철학자 김만권 박사의 <호모 저스티스>를 다시 펼쳤다. 여기다. 직감이 왔다. 출판메일을 보냈다. 느낌이 좋았다. 왠지 몇 마디 덧붙이고 싶었다.

"여문책 출판사에서 나온 호모 저스티스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제 원고도 그런 멋진 책으로 만들어주세요."

괜히 한마디 덧붙인 이 말이 여문책 소은주 대표를 움직였다고 후일담을 전해 들었다. 대형출판사조차 신인에게 모험을 걸 수 없는 출판 환경이었다. 일본 저자의 책을 번역했다가 상당한 손해를 본 작은 출판사는 그 와중에 신인에게 흔쾌히 기회를 내어주었다.

기회를 갈구하는 청년과 돈보다 가치를 택한 작은 출판사가 만나 이름값 없는 청년의 사유를 세상에 펴내기로 결정했다. 그 책이 바로 내 첫 책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이다. 

정돈된 문장의 힘을 믿는 변방의 한 청년
 
그러나 정치의 도움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정치를 싫어했고, 분별없는 혐오가 퍼져나갔다. 권력은 가장 큰 혐오의 대상이었다. 투기로 고통받는 사람은 투기할 기회를 빼앗길까봐 노심초사했다. 뼛속부터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 성대결이 있었으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과 자기혐오 사이에서 방황하는 개인이 있었다. 동시에 이 모든 것은 이념의 렌즈를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면서도 이념이 왜곡해온 현상이기도 했다. 청년들은 세상이 불공정 하다며 또 한 번 촛불을 들었으나, 그 촛불의 그림자에는 세상의 평등과 권력과 혐오의 부당한 분개가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 서문  p.8



평등, 권력, 혐오. 나는 우리 시대의 화두를 이 셋으로 압축했다. 그리고 각각의 대주제에 맞춰 네 권씩 책을 선별해 열두 권의 서평을 한데 모았다. 이름값 없는 청년이 고전을 비롯하여 유명과 악명을 가진 책들에 젊은 생각을 얹어 보았다. 이 시기 아니면 절대 이런 감정으로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 느꼈기에. 본디 젊음이란 온갖 종류의 불평등, 권력의 만행, 약자에 대한 혐오에 특히나 민감한 시간이니까 말이다.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의 목차 목차
▲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의 목차 목차
ⓒ 나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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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통해 거대한 역사의 흐름과 완고한 사회의 구조, 충돌하는 가치관 사이에서 평범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다루고자 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실패한 첫사랑 평등, 세상을 뒤바꿀 무한한 가능성을 가졌으나 항상 잘못 쓰이는 권력, 불평등과 그릇된 권력의 결과로 가득 차는 이 땅의 혐오들. 그곳에서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감정을 느끼고 밥을 먹고 살아가는 것일까?
 
극한의 상황을 맞닥뜨린 평범한 사람들에게 스탈린과 트로츠 키의 차이를 설파하는 것, 파시즘과 가톨릭 독재를 구분시키는 것은 어떠한 의미도 갖지 못한다. 납득은 머리가 아닌 밥이 한다. 사람은 거창한 이념과 교리 한 줄보다 싹이 난 감자 한 톨의 소중함에 목숨을 건다. 복잡한 전쟁은 사소한 것에 이판사판의 각오를 다지게 만들지만, 이 사소한 이유가 복잡한 전쟁을 지탱하는 기둥이 되는 것이다.


'평등' 챕터가 인간 세계의 구조를 다뤘다면, '권력' 챕터는 그 구조에서 발현된 역사를 다뤘고, '혐오' 챕터는 구체적인 우리네 삶을 담았다. 자세한 내용은 책에서 직접 확인해주길 부탁한다. 평범한 사람과 민주주의, 자유와 평등, 권력과 혁명, 이념. 그리고 역사의 진보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이 꼭 마음에 들 것이다. 

저자가 없어 한동안 외로울 책의 탄생을 축하하며
 
혁명은 한 인간의 내면에서 출발해 비로소 세상에 닿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막 첫걸음을 뗐다. 평범한 해방의 길을 뒤따르기 위해서. 걸어가는 곳은 길이 되리라.

 
사실 이 책의 북토크를 기획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돌잔치를 하듯이, 새로 태어난 책에 대한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북토크를 위해 여러 사람이 자기 능력을 빌려주었는데, 코로나19로 중단되었다. 이 책을 쓰는 데 들인 공만큼 무얼 해보지 못하고 군대로 떠나는 게 정말 아쉬울 따름이다.

다만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걸 응원 삼아 훗날을 도모해야겠다. 책이 다시 빛을 볼 날이 올 거라 생각한다. 책을 냈다고 해서 일상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다만 많은 언론사에서 내 책을 다뤘을 때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는 점. 내 책에 대한 서평을 하루에도 수십 번 검색해 본다는 점 빼고는 말이다.

아쉽게도 나는 한동안 이러한 일상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책을 낸 지 두 달째 되는 3월 9일,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대 육군훈련소로 입영하기 때문이다. 내 책에 대한 출간 후기, 이것이 스물 아홉 먹은 지각 인생의 입영 전 마지막 글이다. 저자가 없어 한동안 외로울 내 책에 이 글을 바친다.

덧붙이는 글 | 2020년 3월 9일, 논산 연무대 육군훈련소로 입영합니다. 군 복무 잘 마치고 오겠습니다. 기회 부족에 시달리던 한 청년에게 기꺼이 기회를 내어준 여문책 소은주 대표님, 신인 발굴도 중요한 어른의 의무라며 기꺼이 추천사를 써주신 김만권 박사님, 지식보다 지혜를 몸소 보여주신 은사 정용하 교수님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 - 우리 사회를 읽는 청춘의 눈

나호선 (지은이), 여문책(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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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생각, 오래된 지혜를 만나다』의 저자, 정치학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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