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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의사의 기본소득'이 매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동네의사'는 과거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활동했고, 한국 최초의 에볼라 의사이기도 합니다. '동네의사'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서 기본소득의 필요성과 가능성을 풀어봅니다.[편집자말]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 1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후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3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 1일 오후 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 후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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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 안 부러지면 산재 처리 안 돼."

바로 며칠 전 일이다. 20대 청년이 쩔뚝거리며 진료실에 들어섰다. 그 뒤로 모친으로 보이는 여성(그렇다. 또 '엄마'다)도 따라 들어왔다. 필자는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20대가 되어도 엄마가 병원에 데려와야 한다니...' 환자의 오른쪽 발등이 심하게 부었고, 발가락 쪽으로 멍이 내려와 있었다. 발등을 누르니 환자는 심한 통증을 느꼈다.

사연은 이랬다. 2일 전 공사현장에서 굵은 쇠파이프가 발등에 떨어졌다. 무척 아팠지만 당장 일을 못 할 정도는 아니었다. 또 자신이 실수로 쇠파이프를 떨어뜨린 것이라, 아프다고 하소연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환자는 고통을 참으며 그날 일을 마쳤다. 다음 날 통증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아 일단 출근했다. 그런데 일을 할수록 발등이 점점 더 아팠다. 환자는 작업반장에게 통증을 호소하며 물었다.

"발등이 매우 아픈데, 산재 처리할 수 있나요?"

작업반장이 되물었다.

"뼈가 부러진 것 같아?"
"아니요.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뼈 안 부러지면 산재 처리 안 돼."


결국 환자는 고통을 참으며 그날 일을 마쳤다. 그다음 날 일어나자 제대로 걷기 힘들 정도로 통증이 심했다. 그런데도 집에서 그냥 쉬겠다는 아들을, 엄마가 병원에 데려온 것이다. 그때 필자는 그 엄마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꼈다.

국민건강보험과 산업재해보상보험 사이

일하다 다친 환자가 오면, 동네의원 접수 데스크에서는 까다롭게 묻는다. 만약 산업재해 환자가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으면, 동네의원은 나중에 건강보험공단과 번거롭게 서류를 주고받고, 본인부담금과 보험급여도 돌려줘야 한다. 산업재해는 국민건강보험이 아니라 '산업재해보상보험'에서 급여를 지급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사현장이나 영세사업장에서 일하다 다쳐 동네의원에 오는 경우, 산업재해 처리 여부가 불분명하거나 사업주와 아직 합의가 안 된 경우가 많다. 이 20대 청년처럼 자신이 산업재해를 당했는지 인지를 못 하는 예도 있다. 그래서 일부 동네의원은 이렇게 애매한 경우엔 일단 환자에게 진료비 전액을 받는 방식, 즉 '비보험'으로 처리한다. 나중에 근로복지공단에서 급여가 들어오면, 그때 환자에게 받은 진료비를 돌려준다. '비보험'으로 엑스레이 검사와 치료를 받으면, 진료비가 최소 수만 원이다. 이 역시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노동자들에게는 문턱이 될 수밖에 없다.

밖에서 분위기를 엿보고 있던 원무과장이 진료실에 슬쩍 들어와, 환자와 엄마를 데리고 나갔다. 산재 처리 절차에 관해 설명했을 것이다. 환자 분류가 '비보험'으로 바뀌어 다시 접수되었다. 그제야 필자는 환자의 발 엑스레이 검사를 할 수 있었다. 천만다행으로 골절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연부조직이 많이 다치고 걷기도 힘들어서, 환자의 다리에 부목을 댔다. 비록 '뼈는 안 부러졌지만' 산재 처리가 부드럽게 잘 되길 바랐다.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아 프로야구가 개막했다. 비록 무관중 경기이긴 하지만,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열리는 프로스포츠 경기라 화제가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는 코로나19 신규 환자가 하루 열 명 미만이고 학생들의 등교 날짜도 확정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자긍심을 느낄 만도 하다.

하지만 바로 일주일 전인 지난 4월 29일 이천의 한 물류창고에서 불이 나 38명이 사망하고 10명이 다치는 참사가 일어났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산업재해 공화국이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5년 'OECD 근로자 십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를 살펴보자.
   
 2015년 OECD 근로자 십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 통계청 자료에서 직접 작성
 2015년 OECD 근로자 십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 통계청 자료에서 직접 작성
ⓒ 정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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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십만 명당 치명적 산업재해 수는 5.3건으로, OECD 회원국 중 멕시코와 터키 다음으로 많다. 이는 OECD 평균인 2.7건보다 거의 두 배가 많은 수치이고, 가장 적게 일어나는 스웨덴의 7배가 넘는다. 고용노동부의 통계에 따르면, 2019년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는 2020명이었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은 적어도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가장 안전하지 않은 나라' 중 하나이다.

산업재해를 숨기는 사회

발등을 다친 청년을 엄마가 병원에 데려오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는 1~2주 그냥 앓다가 다시 공사현장에 나갔을 것이다. 그러다 한참 지나 통증이 재발하면, 동네의원에 가서 물리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일하다 다쳤지만 '번거로우니 그냥 건강보험 처리하겠다'고 우기는 환자들을, 필자는 진료실에서 여러 번 만났다. 과연 필자만의 경험이었을까?

건강보험공단이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에 연구용역을 의뢰해 실시한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방안 연구' 보고서를 보자. 이 보고서는 2016년도 기준으로 연간 최소 277억 원에서 최대 3218억 원의 재정누수를 추계했다. 많은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인한 부상이나 질병을 산재보험이 아니라 건강보험으로 처리하고 있다는 뜻이다. 얼마나 흔하게 벌어지는 일일까? 같은 연구자들이 1090명의 다양한 직종 노동자들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산업재해시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 이유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방안 연구' 보고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 산업재해시 산재 처리를 하지 않는 이유 "산재 은폐로 인한 건강보험 재정누수 방지방안 연구" 보고서,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 국민건강보험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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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를 실제 산업재해로 처리하는 비율이 38.9%에 불과했다. 응답자의 74.5%는 '회사 및 원·하청업체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고' 산재 처리를 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문제는 단지 산업안전공단에서 낼 돈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냈다는 데 있지 않다. 우리나라의 산업재해율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 자료(아래 그림)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 산업재해율은 0.5%로 OECD 평균의 1/4 수준이다.

선뜻 고개를 끄덕이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산업재해가 드물게 일어나지만, 사망 사고는 자주 발생한다는 뜻일까? 그보다는 작은 산업재해는 숨기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산업재해 사실을 숨기라는 압력이 작용하고 있다. 작은 재해에 눈 감는 일터에서 사망 사고 희생자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
 
 2015년 한국과 유럽 국가들의 산업재해율(한국의 사회동향, 통계청, 2018년)
 2015년 한국과 유럽 국가들의 산업재해율(한국의 사회동향, 통계청, 2018년)
ⓒ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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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은 왜 일터에서 다쳐도 정당하게 산업재해로 치료받거나, 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개선을 요구하지 못할까? 산업현장에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힘이 무척 약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정상훈씨는 기본소득당 당원입니다. 기본소득당은 평균나이 27세의 당원들이 만든 정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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