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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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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사 임항준의 의견이다.

형법 제87조에는 국토를 참절하거나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한 자는……이라고 규정하고 폭동을 그 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는 바, 여기에 폭동이란 다수인이 결합하여 폭행이나 협박으로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치는 정도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어서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다수인의 결합을 필요로 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내란죄는 소요죄와 더불어 군집범죄 또는 다중범죄 내지 집단범죄라고 칭하여지고 있다.

그러면 내란죄나 소요죄에 있어서 범죄의 주체가 반드시 다수인의 결합임을 요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다수인이 집합하게 되면 그 다수인이 군집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 소위 군집의식, 군집심리가 발생되어 그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사고작용은 후퇴 내지 저하되고 그 군집된 다중은 오직 암시, 모방, 감정이입 등으로 인하여 그들 각자가 단독으로 있을 경우와는 전연 다르고 평상시에는 예기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감정이 폭발되거나 예측할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을 경계하여 집단범, 군집범의 처벌규정을 따로 규정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우선 내란죄가 성립되려면 반드시 다수인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다수인이란 위와같이 군집의식 군집심리가 형성되어 그 구성원 개개인의 사고와 행위의 단순한 산수적 집계가 아닌, 전연 별다른 맹목적인 감정이나 비합리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이 촉발되어 한 지방의 평온을 해치기에 충분하고 폭행 협박을 하기에 족한 다수인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10명 내외의 사람의 집합만으로는 위와 같은 군집의식이나 군집심리가 발생될 수 있는 다수인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할 것인바, 이 사건에 있어서는 김재규, 박홍주, 박선호 3인만이 대통령을 위시한 몇 사람을 저격한다는 것을 모의하였다는 것이고 구체적으로 누가 누구를 무슨 이유로 살해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범행한 자를 전부 다 합치더라도 6, 7명에 불과하니 동 인원으로는 형법 제87조 소정의 폭동을 할 만한 다수인이라고 볼 수 없다.

피고인 등의 행위가 형법 제76조에 해당할 수 없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해당한다고 본 원심의 조치는 폭동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있다고 아니할 수 없다.

또 가령 다수 의견대로 피고인 등의 행위가 형법 제87조  소정의 폭동을 하기에 족한 다수인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피고인들이 살인을 한 이상 형법 제88조의 내란목적살인의 1죄만 구성될 뿐 제87조의 내란미수죄에는 해당한다고 볼 수 없을 것인데 원심은 그 외에 제87조의 내란미수죄에도 해당한다 하여 그 양죄간에 상상적 경합관계가 있다고 판단한 조처는 위법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원심의 이론대로라면 상해치사한 자에게도 상해죄와 상해치사죄의 상상적 경합관계가 있어야 할 것이고, 강도살인한 자도 강도죄와 강도살인죄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처벌하여야 한다는 이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정치의 기본질서인 인간존엄을 중심가치로 하는 민주주의 질서에 대하여 중대한 침해가 국가기관에 의하여 행하여져서 민주적 헌법의 존재 자체가 객관적으로 보아 부정되어 가고 있다고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판단되는 경우에 그 당시의 실정법상의 수단으로는 이를 광정(匡正)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국민으로서는 이를 수수방관하거나 이를 조장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인권과 민주적 헌법의 기본질서의 옹호를 위하여 최후의 수단으로서 형식적으로 보면 합법적으로 성립된 실정법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의 인권을 유린하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문란케 하는 내용의 실정법상의 의무이행이나 이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저항권은 헌법에 명문화되어 있지 않았더라도 일종의 자연법상의 권리로서 이를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할 것이고 이러한 저항권이 인정된다면 재판규범으로서의 기능을 배제할 근거가 없다고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김재규, #김재규장군평전, #김재규상고심, #임항준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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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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