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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초기 조선의 근대화와 자주독립을 위해 젊음을 바쳤으나, 청나라로부터는 모략당했고, 조선으로부터는 추방당했으며, 본국 정부로부터는 해임당했다. 어느 날 일본의 호젓한 산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이한 비운의 의인 조지 포크에 대한 이야기이다.[기자말]
* 이 기사는 구한말 조선에 머문 미 해군 중위 조지 클레이턴 포크의 이야기를 사료와 학술 논문 등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이전 기사 : 서양인 최초, 연해주에서 만난 조선인 관찰기]

한국인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제 곧 이야기의 무대가 미국으로 옮겨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 땅의 조선인들을 다시는 만나 볼 기회가 없을 것 같군요. 아무래도 미련이 남습니다. 때문에 이번에 미진한 내용을 다뤄보고 다음에 미국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조선왕국 안에 빈둥거리는 양반과 탐관오리가 없다면 조선인들은 발전하게 될 거라는 비숍 여사의 언급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비숍의 바람과는 달리 조선에는 기근과 관리의 수탈이 더욱 심해졌던 것 같습니다. 살 길을 찾기 위해 고향을 떠나 국경을 넘었던 조선인들이 19세기말에 이르러 더욱 늘어났으니까요. 여기 그 현황을 엿볼수 있는 지도 한 장을 소개합니다. 19세기 후기 러시아 땅의 조선인 마을 분포도입니다. 
  
19세기 후기 조선인 러시아 진출 책 'Sovereignty Experiments' 속 내용 촬영. 조선인, 러시아인, 코샄인 분포
▲ 19세기 후기 조선인 러시아 진출 책 "Sovereignty Experiments" 속 내용 촬영. 조선인, 러시아인, 코샄인 분포
ⓒ Sovereignty Experi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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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은 식별이 쉽지 않지만 네모는 조선인 마을, 동그라미는 러시아인 마을(짙은 것은 1883년 이전 형성 마을, 옅은 것은 그 이후 형성), 십자가는 코샄인 마을을 표시합니다. 이 지도는 2019년 7월 미국에서 출간된 <주권 실험Sovereignty Experiments: Korean Migrants and the Building of Borders in Northeast Asia, 1860–1945>( Alyssa Park)이라는 책에서 따 온 것입니다. 다음에 나올 마적 이야기도 이 책을 참고한 것이구요.  

지도를 유심히 살펴 보면, 우리의 예상을 넘어선 진실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우선 두만강에 인접한 러시아 땅을 주목해 봅니다. 국경이 무의미할 정도로 조선인 마을이 밀집되어 있습니다.

러시아인 마을은 오히려 희소합니다. 마치 조선 땅 같습니다. 더 북방으로 올라가면서 조선인 마을은 상대적으로 적어지지만 결코 약세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위로 뻗어나가는 형세여서 조선인의 진취성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지도는 19세기 제정 러시아 자료를 근거로 작성된 것입니다. 이제 조선인 마을이 들어선 곳들을 나열해 보겠습니다. 아래 리스트는 제정러시아 및 조선의 자료에 의거하여 정리해 본 것입니다. 마을이 들어선 연도 순(괄호 속에 연도 표기)이며, 명칭은 가능한 범위내에서 러시아어, 한자어, 조선토속어 등을 병치하였습니다.
   
레자노보(1864, 지신허地新墟), 얀치혜(1867, 연추延秋, 煙秋), 시지미(1867), 니콜라예프카(1868, 신영구新英溝/ 신영동新英洞), 바라노브카(1869), 니콜스크-우스리크 (1870, 소왕령蘇王營/소왕영宋皇營/쌍성자雙城子), 파타쉬( 1871, 소도소所都所/바도쇠), 블라고슬로벤노예(1871, 사만리沙萬里), 아지미(1872), 코르사코프카(1872, 하구河口), 크로우노브카(1872, 황구黃口), 시넬리니코보(1872, 신안평永安坪), 크라베(1873), 블라디보스토크(1874, 해삼위海蔘威/해삼海蔘/구개척리), 나고르나야(1875, 와봉臥峰/누블뫼), 사뵤로브카(1875, 나선동羅鮮洞/흑정자), 크라스노셀로(1875, 녹도鹿島/녹둔도鹿屯島), 아보(1876), 노바야제레브냐(1878, 주류하珠留河), 부르시예(1878), 푸칠로브카(1878경), 자레치예(1880), 랴자노브카(1880), 로마노브카(1883, 신병하新兵河), 페스차나야(1884), 크레르키(1884), 암바-비라(1884), 수하노브카(1885, 남석동南石洞), 케드로바야빠지(1885), 멍구가이(1885, 맹령孟嶺/맹고개/멍고개), 다우지미(1888년경, 대오길밀大烏吉密), 수청청지동(1896, 水淸淸支洞)
기타 오시포프카(인동仁洞/아래 농평), 안드레예브카(?), 스하야레츠카(?), 카자케비체카(?)등은 연도 미상.

좀 과장하자면, 밤하늘의 별처럼 많군요. 대부분 매우 생소한 이름들이지만 어떤 곳은 조선의 토속어로 표시되어 있어 흥미롭습니다. 조선인의 숨결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아무튼 우리는 19세기 후기 조선인의 북방진출 자료를 통해 그들의 기백과 개척 정신을 엿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인들에게 시련과 공포를 안겨 주었던 마적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마적 떼는 잔인한 만행으로 악명을 떨쳤습니다. 특히 조선인 마을이 많은 수이푼 강 지역에서 자주 출몰하였습니다.

한국인들은 그들을 그냥 '마적'이라 부르지만, 여러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만자스 Manzas"라 불리기도 했고, 복면 색깔이 붉다고 하여 홍후즈(紅鬍賊, 붉은 수염)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중국인이라는 뜻의 키타이치(kitaitsy)라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인만 마적이 되는 건 아니었습니다. 현지인, 만주인, 중국의 한족, 몽골족 그리고 때로는 조선인도 섞여있는 혼성 집단이었습니다.

마적떼의 만행은 응징과 복수의 악순환을 야기하기 일쑤였고 그 과정에서 여러 집단이 개입되었으며 외교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이곳을 방문하기 3년전인 1879년 한 조선인 마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선 그 조선인 마을을 지도로 보겠습니다. 
 
푸칠로브카Putsilovka 19세기 조선인 마을
▲ 푸칠로브카Putsilovka 19세기 조선인 마을
ⓒ 구글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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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보스토크 좌상방향에 위치한 푸칠로브카(Putsilovka)가 사건의 현장입니다. 그 해 6월 마적떼가 마을을 공격하여 8명을 죽이고 12명에게 부상을 입혔습니다. 격분한 러시아 경비대가 2주 동안 마적 수색전을 벌였습니다. 수색대는 청나라 국경을 건너가 무려 120명을 살상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러시아 경비대의 표적이 되어 사살된 사람들은 실제로 아무 상관이 없는 청나라 만주족들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비극을 낳은 오인이었습니다. 이에 격노한 청나라 정부는 북경 주재 러시아 외교관을 추방시켜 버렸고 양국간에 심각한 외교 분규가 빚어졌습니다. 

조선인들은 이러한 시련 속에서도 꾸준히 성장해 갔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거기에는 조선 양반과 탐관오리는 없었으니까요. 당시 영어권 서양인들이 조선을 알고자 했다면 어떤 책을 보았을까요?

아마 존 로스 목사(John Ross,스코트란드 출신)가 1879년에 펴낸 <코리아의 역사 HISTORY OF COREA ANCIENT AND MODERN>를 보았을 겁니다. 로스 목사는 한반도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중국, 조선 및 러시아의 접경 지역인 동만주에서 조선인과 교류하였습니다. 특히 1876년 평안도 의주 출신 한약상 이응찬(李應贊)으로부터 조선어를 배웠으며 나중에 조선어 학습서를 내기도 하였습니다. 

존 로스는 <코리아의 역사>에서 외세의 한국 침략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한국인들이 그 침략들에 얼마나 용감하게 맞섰는지를 소개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조선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관리들의 탐학을 개탄하면서 그들이 백성들을 '쥐어짠다(squeeze)'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는 나아가 조선인들은 극도로 가난하지만 중국인 이상으로 교육을 중시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한글을 알아 보았다는 점에서 직관이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한글을 '코리언 알파벳'이라고 명명하면서, 가장 아름답고 완전하며 그 단순성과 효용성에 있어서 최고라고 극찬했습니다.
    
1882년 내가 처음 접했던 조선은 모순에 가득찬 수수께끼로 다가왔습니다. 한없이 낙후된 것 같기도 하고 높은 문화의 광채가 숨쉬고 있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불가사의한 모순으로 가득 찬 조선을 뒤로 하고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귀로에 올랐을 때에 나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883년 미국을 방문한 조선 사절단을 내가 안내하게 될 줄을. 나아가 그 다음 해에 서울에 부임하게 되리라고는 더욱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희한한 인연이 맺어졌을까요?

-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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