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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들보다 다소 긴 학업을 했고 다소 짧은 사회 생활을 하게 되었다. 내가 내 전공을 이용해 일을 할 기회는 이제 거의 끝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한 준비 기간이 길다 보니 내 전공과 관련된 일을 한 것이 길게 보면 12년 정도이다.

학업 기간에는 그 나름으로 바빴고, 일을 하면서는 또 그 나름으로 바쁜 시간이었다. 마음이 바쁘니 '봉사'는 사실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코로나19와 실업이 아주 풍부한 여유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다만 여유를 만들어 준 것은 좋은데 이것을 폼나게 쓸 환경도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루 한 번은 외출하자는 마음과 어차피 받을 거 빨리 받자는 마음으로 8월 31일에 검진을 받았는데 이때 위 내시경도 받게 되었다.

서울시 코로나19 심리지원단에서는 코로나19의 일상을 보내는 현 상황에서 심리 방역을 위한 마음 백신 7가지를 제안했다. 그것은 '격려 백신, 긍정 백신, 실천 백신, 지식 백신, 희망 백신, 정보 백신, 균형 백신'이다.

'격려 백신'은 '나를 긍정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스트레스 반응을 잘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자신을 격려한다. 다음으로 '긍정 백신'은 사회 전체의 스트레스가 극복되도록 내가 참여해서 도울 수 있는 작은 일을 찾아서 실천하는 것이다. '실천 백신'은 수칙을 잘 지키는 것이고 '지식 백신'은 제대로 잘 알자는 것이다.

이 외에도 언젠가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 백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대로 알아두는 '정보 백신', 감정과 사고의 균형, 몸과 마음의 균형, 가정과 일의 균형, 걱정과 안심의 균형을 위해 노력하는 '균형 백신' 등이 있다.

이중에서 나는 긍정 백신을 강하게 맞았나 보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헌혈'이다. 나는 한 번도 헌혈을 하지 않았다. 건강 검진에서 저혈압으로 판정을 받기도 해서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 번 가 보기나 하자 해서 헌혈의 집에 갔다. 그 날은 9월 3일이다. 

문진표에 답을 하고 혈액형을 확인하고 혈압도 측정했다. 저혈압이어서 할 수 없을까 걱정했는데 이번에는 아주 좋다고 하셨다. 한 달 정도 아프지 않고 혈압도 괜찮으니 당연히 헌혈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질문 중에 한 달 안에 내시경을 받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항목이 있었다. 나는 당연히 없다고 했다. 왜냐하면 내가 아프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 미처 건강검진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건강검진은 몸이 아파서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치료에 해당하지 않으니 내시경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이 부분은 완전 나의 큰 실수이다.

헌혈을 하기 위해 의자에 앉았을 때 내 팔에 주사를 꽂으려던 간호사 분이 주사 자국을 알아보고 피를 뺐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건강 검진을 받았다고 했다. 그때 위 내시경을 받았느냐고 하셔서 받았다고 했더니 그러면 헌혈을 할 수 없다고 하셨다. 

왜 건강검진의 위 내시경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의도치 않게 내시경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치료를 위한 것만으로 생각해서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으니 거짓 진술을 한 셈이었다. 만약 내게 주사 바늘을 꽂으려던 그 간호사 분의 눈썰미와 질문이 아니었으면 나는 정말 큰 잘못을 할 뻔했다.

위 내시경을 받고 한 달 동안 헌혈을 보류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지만 생명과 관계된 일이므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일로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외국에 나간 적도 없고 전염병 발생 지역에 간 적도 없고 감기에 걸리지도 않았고 혈압도 좋았으니 질문을 흘려 들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좋은 의도를 가지고 헌혈의 집에 갔지만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낼 뻔했다. 지금도 그 당시를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평소에 헌혈을 해 봤으면 이런 실수를 안 했을 테고, 아예 헌혈의 집에 가지도 않았을 텐데 착한 일 안 한 표시가 이렇게 난다.

한 달 후에 헌혈을 할 수 있으니 그때까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며 그 시간을 보낼 것이다. 두 달을 기다려 또 헌혈을 할 것이다. 두 달 걸러 빼 놓지 않고 해도 한 해에 여섯 번만 헌혈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십 년 동안 하면 예순 번이다. 앞으로 헌혈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비록 하지 못했지만 헌혈을 하러 가는 그 시간이 정말 행복했기 때문이다.

태그:#헌혈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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