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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가는 쥐들의 출몰로 시작된 오랑시의 페스트
  죽어가는 쥐들의 출몰로 시작된 오랑시의 페스트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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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사라지리라 믿었던 코로나가 1년이 지나도록 기승을 부리며 전례 없던 일상을 가져왔다. 마스크 착용은 어디서든 필수가 되어버렸고, 마음 편히 외식도, 여행은 고사하고 동네 카페도, 미용실도 안 다닌 지 오래다. 간간이 배달음식과 동네 마트 위주로 도보권 내에서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조심스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변한 이런 우리의 일상을 일찌감치 내다본 소설이 있다. 바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이다. 

신기하게도, 페스트의 광풍에 습격당한 오랑시 시민들의 모습은 코로나를 겪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기차가 끊기고, 연일 확진자와 사망자의 통계 수치를 주목하고, 격리와 방역이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단절감으로 고통받는 귀양살이의 심정으로 일상을 버텨야 했던 모습들이 말이다. 

페스트를 겪는 다양한 오랑시의 시민들과 코로나를 겪는 요즘 우리들의 면면을 견주다 보면, 70여 년 전 작가가 페스트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분명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패배를 경험해도 본분을 잃지 않는 이들 

<페스트>에서 단연 첫 번째로 눈에 띄는 인물은 의사 '리외'이다. 그는 손쓸 틈도 없이 발병 2, 3일 만에 죽어가는 환자들을 보며 도지사에게 시급한 격리와 방역 조치를 이끌어내고, 부족한 병상 확보를 위해 유치원과 호텔 등을 보조 병원으로 만들어 관리한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밤늦게까지 병원 밖의 환자들에게까지 왕진을 다니며 시종일관 극한에 다다르는 성실성으로 자신의 직분에 충실히 임한다. 그의 일상은 환자들의 죽음을 매일같이 겪을 수밖에 없는 끝없는 패배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는 무릎 꿇지 않고 계속해서 싸워나가는 것만이 필연적 진리라고 믿는다. 왜 그렇게 사람을 살리는 일에 헌신하냐고 묻는 친구에게 리외는 답한다. 
 
"... 이건 도의의 문제입니다. 웃기게 보일지 모르지만,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도의뿐입니다.... (중략)... 내 경우, 그것은 내 본분을 다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영웅주의에 도취된 일시적 호기도 아니요, 승진을 노린 명예욕의 발로도 아니요, 보수는 더더욱 아닌 그저 인간된 자로서의 도의를 말하는 리외라는 인물이 범상치 않다. 도의를 느끼는 인간이라면 직분을 다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 그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것만이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그의 일갈은 당연히 오늘날 전국의 코로나 전담 병원과 선별 진료소에서 매일 확진 환자를 마주하고 코로나와 사투를 벌이고 계신 의사분들과 간호사분들을 떠올리게 한다. 

방호복 안에서 한여름 불볕더위에 피부가 짓물러가면서도, 한겨울 한파에 손이 얼어가면서도, 화장실 한 번 마음 편히 가지 못하고, 물 한 모금, 식사 한번 제대로 못 드시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헌신해 주시는 의료진들이야말로 진정한 '리외'의 현신이 아닌가 싶다. 

혼신의 힘을 다해주시는 의료진분들이 그곳에 계시기에 지금껏 전방위적 확산을 피해 왔을 것이며, 혹시 확진되었다 하더라도 회복을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이리라.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눈 내리는 지난 1월 12일 오후 양천구의회 주차장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업무를 마친 의료진이 내리는 눈을 보며 잠시 여유를 즐기고 있다.
 눈 내리는 지난 1월 12일 오후 양천구의회 주차장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업무를 마친 의료진이 내리는 눈을 보며 잠시 여유를 즐기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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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에서 눈길을 끄는 두 번째 인물은, 보건위생대를 자발적으로 조직하여 리외를 돕는 '타루'이다. 어려서부터 깊은 인간애에 눈 뜬 그는 인간의 목숨을 앗아가는 페스트야말로 세상의 악 또는 부조리이기 때문에 이에 맞서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지인, 친구들과 함께 방역이 미진한 지역의 예방 보조 작업과 의사들의 왕진을 보조하며 환자들의 이송 작업을 맡는다. 언제라도 페스트에 노출되어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외와 함께 주축이 되어 페스트와 싸우는 인물이다.

오늘날 '타루'같은 인물을 찾는다면, 코로나 1차 유행 때 대구, 경북지역의 부족한 병상과 인력난 소식을 듣고 자신의 병원 문을 닫고 대구로 달려가신 전국의 의사, 간호사님들이지 않을까 싶다. 휴직 중이거나 본업을 접고라도 급한 현장을 먼저 찾아 나서 발 벗고 도와주셨던 그분들 덕분으로 1차 유행이 진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최근 일일 확진자가 천여 명을 넘어섰을 때에도 수천 명의 간호사분들과 심지어 보건교사들까지 의료현장 파견에 자원했다는 뉴스를 접했다. '그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말씀하셨다는 그분들을 보며 절로 숙연해진다. 

보통 사람들의 '선한 양심'

세 번째 인물은, 일반 시민으로 상징되는 시청 하급 공무원 '그랑'이다. 젊지 않은 그는 공무와 자신의 볼 일로 피곤함에도 늘 저녁에 두 시간씩 보건위생대의 서기 역할을 맡아 모든 등록이나 통계 작업을 성실히 수행한다. 작가는, 선한 양심으로 맡은 일을 성실히 하려고 노력하는 이런 그랑 같은 사람이야말로 페스트와 싸우는 사람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조용한 미덕의 대표자라고 적고 있다.  
 
"... 이 이야기 속에 영웅 한 명이 정말 필요하다면, 서술자는 가진 것이라고는 그저 약간의 선한 마음과 보기에도 우스꽝스러운 이상만을 가지고 있을 뿐인 이 보잘것없고 존재감 없는 영웅을 제안한다...."

'그랑'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 인지도 모른다. 코로나의 일선에 있지는 않지만 앞장선 의료진과 담당자들이 힘을 잃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 주는 작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직접 만든 마스크와 손소독제를 나눠주고, 공적마스크 5부제 실시 때 바쁜 약국을 찾아 포장 및 판매를 도와주며, 지역의 다중이용시설 및 소상공인 업소를 정기적으로 방역, 소독을 실시하는 등 표나지 않으면서도 우리 곁에서 꾸준히 품 들여 주신 많은 시민들의 작은 선행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힘든 의료진을 응원하기 위해 도시락과 응원키트 등을 무료로 준비하신 이웃들의 이야기도 예외가 아니다. 물론 말없이 방역 수칙을 준수하며 일상을 감내하는 일반 시민들도 여기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모두들 선한 양심으로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싶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주문해둔 점심 도시락을 찾아 든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2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에서 주문해둔 점심 도시락을 찾아 든 직장인들이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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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기자 '랑베르'이다. 그는 취재하러 잠시 오랑에 들렀다가 페스트의 발병과 함께 도시 봉쇄로 발이 묶여 호시탐탐 탈출 기회를 엿보지만, 페스트에 맞서 싸우는 리외와 타루를 보고 느낀 바 있어 뒤늦게 자신도 보건위생대 일에 열심히 참여하게 된 인물이다.

그가 결정적인 탈출 기회마저 포기하고 남았던 건 아마도 동료들을 저버리는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던 것 같다. 개인적 선택을 우선시하지만 결국은 연대로 돌아설 줄 아는 성찰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페스트>의 다음 인물은 종교인인 '파늘루' 신부이다. 신부는 페스트를 신이 악인에게 내리는 징벌로 규정하고 모든 일은 하느님이 다 알아서 하실 거라며 사람들에게 이를 설파한다. 하지만 타루의 권유로 보건위생대의 일원이 된 후, 어느 날 오통판사의 순진무구한 어린 아들이 끔찍한 고통 속에서 처절하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페스트가 신의 악인에 대한 징벌이라는 믿음에 혼돈을 느낀다. 그때 아이의 죽음을 함께 지켜보던 리외는 신부에게 묻고 말한다. 
 
"아, 적어도 저 아이는 아무 죄가 없었어요. 그건 잘 알고 계시지요?" 
"... 우리는 신성모독이나 기도를 초월해서 우리를 모이게 하는 뭔가를 위해 함께 일하고 있어요. 그것만이 중요합니다. "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종교인은 어떤가? 티 내지 않고 노숙인 무료급식과 방역 활동 등 필요한 곳에 손길을 더해주시는 훌륭한 분들도 많이 계신 줄 알지만, 최근 광주의 안디옥 교회를 다룬 기사("더 큰 하나님 은혜 경험... 코로나 폭증 교회의 기도, 다 틀렸다" 오마이뉴스, 2021/2/2)를 봤다.

집함금지를 어기면서까지 대면 예배를 중시한다거나 코로나의 종식을 하느님이 이루시리라는 기도 내용 등은 여전히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시대의 종교인의 역할이란 어떤 것일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는 대목이다. 

<페스트>의 마지막 인물로, 페스트가 가져온 혼란을 틈타 죄를 짓고도 체포되지 않아 기뻐하며 오히려 배급품 암밀매에 관여하는 등 재앙에 편승하여 잘못된 이익을 쫓는 '코타루'가 있다.

그는 페스트에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리외와 타루가 못마땅하고 페스트의 혼란기가 오래가기를 바란다. 무릇, 인간이 재앙을 만났을 때 이를 필사적으로 물리치려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재앙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만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임을 작가가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다. 

<페스트>를 읽으며 현재의 나는 페스트의 어느 인물에 가장 가깝고, 또 어느 인물로 향하고 싶은지 생각해 본다. 리외나 타루같은 역할은 못 할망정 최소한 사회에 해를 끼치는 코타루같은 사람만은 절대로 되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작가가 주요 인물들을 통해 전한 메시지를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즉, 내가 선 위치에서 선한 양심으로 인간된 도의를 다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기를 잊지 않는 것 말이다. 그렇게 오랑시 시민들이 페스트를 끝내 극복해 낸 것처럼 우리도 코로나를 이겨낼 마지막 순간은 곧 오고야 말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페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민음사(2011)


태그:#페스트, #코로나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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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궁금한 게 많아 책에서, 사람들에게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을 즐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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