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솟값이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요리할 때 꼭 필요하긴 한데, 장바구니에 대파 하나 집어넣는 게 그렇게 망설여집니다. 어디 야채뿐일까요. 조류인플루엔자 유행으로 달걀값도 들썩입니다. 이런 상황 탓에, 직접 야채 등을 키우며 식자재를 자급자족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일명 '파테크'(파+재테크)족이 등장한 겁니다. 왕초보부터 베테랑까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의 그 생생한 경험담을 들어봅니다. [편집자말] |
작년에 이어 올해도 도시 텃밭 분양을 신청했다. 나이가 드니 자연스럽게 생긴 관심이었다. 매번 신청하기 전, 과연 1년간 잘할 수 있을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 여러 가지 하고 있는 일들이 생각났지만, 주말의 모든 일정을 텃밭 키우는 데 투자하자고 생각을 모았다. 해마다 있는 집안 행사까지 걱정하며 신청했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결과는 탈락이었다.
가끔 남편은 퇴근길에 비닐봉지를 들고 오는 때가 있다. 열어보면 상추나 가지, 풋고추 등의 채소가 가득 들어 있다. 텃밭을 가꾸는 지인이 주었다며 싱싱한 채소들이 싱그러운 흙냄새와 함께 전달되곤 했다. 한번 받으면 일주일의 식탁이 풍성해지는 반가운 선물이었다. 특색 있게 돼지감자가 오기도 했고 고구마가 오기도 했다.
받아먹으면서도 직접 키워 수확하는 그 손길이 한없이 부러웠다. 이미 텃밭의 규모를 넘어서서 농사를 짓는 지인들은 한결같이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수확철이 되면 언제든 와서 캐가도 된다고 했지만, 남이 애써 키운 것을 캐러 간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았다. 다만 무심한 듯 넉넉하게 건네는 말 또한 부러웠다.
우리도 그 보람찬 노동을 해보자고 용기를 냈던 것이었다. 식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대로 노동의 수고와 수확의 감동을 느끼고 싶었다. 물론 경제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가장 컸고, 사 먹는 것과는 전혀 다른 채소의 향과 맛을 즐기고 싶기도 했다. 작년과 올해 연이은 탈락에 실망했지만, 아직은 감동에 참여할 준비가 덜 된 것이라고 애써 위로했다.
상추 모종이 단박에 내 마음을 빼앗았다
상추 값이 올라가는 장마철과 풋고추 가격이 고공행진을 할 때에는 텃밭 자랑이 귀에 들어온다. 직접 키우니 값의 오르내림에 관계없이 마음껏 식탁을 푸르게 채울 수 있다는 말도 뒤따랐다. 그럴 때면 삼겹살을 상추에 싸서 풋고추와 함께 먹는 그림이 더 절실해졌다. 매일 사 먹는 것도 아니면서 상추 값을 따지게 되고, 매스컴에서 한 번 더 강조하면 상추를 사서 먹는 것이 큰 호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비싼 채소를 가격과 상관없이 아무 때고 사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원칙이 있다. 제철 채소 이용하기, 비싸면 사지 않기. 가격이 올라 참을 때는 크게 한 쌈 싸서 입안 가득 채우는 식탁이 더 절실했지만, 대부분은 잘 이겨냈다. 다시 가격이 진정되면 양껏 사 왔고, 쌈이나 겉절이로 풍성하게 먹는 것으로 잘 참은 것에 보상을 하곤 했다.
매년 식목일은 아버님의 기일이기도 해서 고향을 찾는다. 산소에 들렀다 그냥 올라오기 서운해서 시골 장터를 둘러보곤 한다. 지난해, 시장은 입구부터 상추와 고추 등의 모종들이 가게마다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텃밭 분양에 탈락해서 아쉬움이 컸던지라 집에서라도 조금씩 키워보자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작고 예쁜 상추 모종에 단박에 마음을 뺏겼고 옆에서 말릴 틈도 없이 모종을 덜컥 샀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실내 텃밭에 대한 내용을 꼼꼼히 메모했고, 메모한 대로 모든 것이 다 있다는 곳에 가서 재료 일체를 샀다. 생각보다 재료비가 꽤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마침 분리수거하는 날이어서 다른 집에서 내놓은 스티로폼 박스까지 가져와서 밑에 구멍을 뚫고 흙을 채웠다. 모종을 조심스럽게 꺼내서 심고 흙을 다독여 자리를 잡게 했다.
물조리개로 물까지 듬뿍 주니 텃밭의 만족감이 따로 없었다. 마음은 이미 풍성하게 자란 상추가 곁을 내주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키우는 보람과 싱싱한 상추를 맛보게 될 환상에 취했고, 수확의 기대에 부풀어 들어간 돈에 대한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
심고 나서 하루에도 수십 번 그것들을 살폈다. 처음 며칠은 모종을 가져온 상태에서 이파리에 조금 더 생기가 있어진 것 같은 느낌 정도였다. 일주일쯤 지나니 상추 잎이 조금 단단해진 것 같았고 이파리가 하나 둘 더 생겨난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생각했던 한 주먹 꽉 차게 쥐어지는 커다란 포기는 아주 먼 얘기였지만.
그 상추의 '결말'
마음과는 달리 두 주가 지나도 상추의 크기에는 변화가 없었다. 크기는커녕 오히려 힘이 빠진 듯 시들해 보이기도 했다. 물을 더 열심히 주었고 이리저리 살폈지만, 뭔가 문제가 있다는 막연한 생각이 그쯤에서 들었던 것 같다. 포기를 들어내고 다시 심을 수도 없었고 그냥 둘 수도 없었다. 비실비실 그대로인 상추를 볼 때마다 남편은 한 마디씩 툭 던졌다.
"언제 먹을 수 있어? 그러게, 그냥 사 먹자니까."
장난 반 웃음 반인 그 말에 같이 웃을 수 없었다. 나의 베란다 텃밭은 한 달을 겨우 버티고 끝이 났다. 잘 키우기 위해 수없이 살폈고, 가족 모두에게 엄마가 키운 싱싱한 상추라고 소개하며 밥상에 올리는 것을 상상했지만, 주인을 잘못 만난 상추는 딱 한 번 우리에게 어린잎을 내어주고는 모두 시들시들 옆으로 쓰러졌다.
식물을 키우는 데 관한 한 나는 가족 모두가 인정하는 '마이너스의 손'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집에 온 화분은 일 년을 넘기지 못하고 모두 죽어 버려졌다. 상추라도 다를 리가 없다는 경고를 모종을 살 때부터 들었지만,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잘할 수 있다고 장담했는데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한때 집에서 만들어 먹는 요거트 열풍이 불었던 적이 있었다. 나 역시 따뜻한 물만 부으면 요거트를 만들어준다는 것을 홈쇼핑을 통해 구입했고 여러 번 만들어 먹기도 했다. 사 먹는 요거트에 비해 만들어 먹을 때는 질적으로 다르다는 느낌도, 경제적으로도 득이 된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용기 가격만큼이나 만들어 먹었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한때는 집에서 만드는 치즈가 유행하기도 했다. 여기에도 기꺼이 동참했다. 베로 만든 보자기를 크기별로 시장에서 사 왔고, 레몬즙 짜는 기구와 필요할 때 바로 꺼내 쓸 수 있도록 레몬도 냉장고에 넉넉하게 채워 두곤 했다. 수제 치즈로 만든 샐러드 식단은 처음 만들었을 때 딱 한 번뿐이었다. 양껏 산 레몬이 냉장고에 남겨졌다가 쓸모를 잃고 버려진 것 같고. 치즈 만들어 먹는 것은 요거트보다 더 빨리 끝났다.
요거트를 만들던 용기는 현재는 파를 썰어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치즈는 만드는 것을 그만둔 지 2년도 더 넘은 것 같다. 이후 한 번도 만들어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베보자기는 삼계탕에 넣는 찹쌀 담는 보자기로 용도 변경되었고, 레몬즙을 짜는 기구는 어디 숨어 있는지 찾을 수도 없다.
연이은 실패에도 봄이면 뭔가 심고 싶다. 하지만, 상추 이후로 얘기도 꺼내지 못한다. 남편은 뭐든 전문가가 만든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농사의 전문가가 만든 상추를 필요에 따라 적당히 사서 먹으면 된다고 강조한다. 요거트도 치즈도 많이 연구한 사람들이 만든 것을 먹으면 된다며 그게 오히려 절약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인다.
대부분 동의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걱정이 올라온다. 마이너스의 손을 끝내 극복하지 못하면 내 밭에서 채소를 키워 먹는 꿈은 영영 포기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