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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싶어요."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의 어린이 조합원이 한 말이다. 

지난 4월 22일, 지구의 날에는 40개국의 정상이 화상으로 만나 기후정상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 멕시코 출신 환경운동가인 시예 바스티다(18)는 지구 온난화 해결책으로 "기후 정의가 사회 정의라는 사실과 일치해야 하고, 전 세계가 신재생 에너지로 즉각 전환해 화석연료 보조금 지급 및 기반 시설 구축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청소년기후행동은 문재인 대통령의 기후정상회의 연설을 비판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가 다시 기후정상회의에 복귀한 것을 필두로 각국의 정상들이 앞다투어 온실가스 저감 목표를 상향 조정하고 있는 것에 반해, 문재인 대통령은 구체적인 목표치를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은 청소년세대가 앞장서서 기후위기문제에 대응하는 모습이 무척 대견했다.    

우리 근처에도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활동가들이 많다. 그중에서 은평구에서 뜨고 있는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아래 태바에협)'의 김원국 사무국장을 4월 20일 오후 6시, 은평구 인근에서 만났다.  
     
"손 내밀고 손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이 활동가"
 
4월 20일 은평구 불광동 인근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김원국.
 4월 20일 은평구 불광동 인근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김원국.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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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국은 부산에서 나고 자랐다. 대학도 부산에서 다녔다. 2003년 부산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가 전환점이 필요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 2004년에 평택환경운동연합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학생운동이 계파싸움으로 가는 게 환멸스러웠어요. 그래서 저는 학생운동 변두리에서 머물다가 시민운동에 관심을 가졌어요. 부산에는 시민운동 단체가 크게 세 곳이 있었어요. 부산경실련, 부산참여연대, 부산환경운동연합. 저는 자연스럽게 환경운동연합에 관심이 갔어요.

2001년 몽골에 사막화 방지 운동을 하러 갔어요. 황사가 몽골의 고비 사막에서 시작돼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날아오거든요. 한국, 일본, 몽골 3개 나라에서 황사 발현지에 나무를 심고 황사가 덜 일어나게 하는 국제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때 사막화 방지 운동을 처음 접하고 환경운동이 나하고 잘 맞는다는 걸 알았어요."


김원국은 어렸을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다. 특히 소설책을 좋아했다. 소설가로 등단하는 꿈을 꾸었다. 윤대녕과 은희경의 작품을 좋아했고 필사를 했다.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 보다 어렵다는 신춘문예에도 도전했다. 결과는 낙선이었다. 그의 겉모습은 한눈에 봐도 골방에 쳐박혀 밤새도록 책 읽고, 글을 쓰는 현역 작가라고 해도 믿을 만한 비쥬얼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를 글쓰는 사람으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신춘문예에 도전한 건 20대였어요. 그런데 소설이라는 게 경험에서 우러나와야 개연성이 생기잖아요. 그때는 어려서 그런 개연성을 담지 못했어요. 지금은 환경운동가로 20여 년 살았으니까 환경문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꿈'을 가지고 산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 역시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을 믿으며 살고 있다. 기후위기 때문에 5월에 피어야 할 꽃이 4월에 피고 겨울에 와야 할 눈이 4월 말에도 온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지금 내 꿈은 '4계절이 뚜렷한 한반도를 보는 것'이다. 허황된 꿈이 아니길 빈다. 

김원국은 환경운동연합에서 활동하다가 대형국책사업에 반대하는 투쟁의 현장에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개발을 막지 못하는 일이 반복되는 것에 소진되어 일을 그만둔다. '문화연대'라는 곳에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문화연대에서 활동할 때 제일 큰 이슈가 한미 FTA였어요. 당시 한미FTA저지범국민운동본부라는 큰 연대조직에서 문화연대가 제일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어요. 미행 당하는 활동가도 많았어요. 저는 그때 신혼이었고 아내가 임신한 상태였어요. 그런데 한미FTA 투쟁하느라고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바깥으로 많이 돌았던 것에 아내가 불만이 많았어요.

아이가 태어나고 육아 휴직을 했어요. 6개월 만에 복귀를 했는데 아이 키우면서 활동하기에는 활동비가 너무 적었어요. 잠시 운동판을 떠나서 돈을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문화연대를 그만두었죠. 작은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마침 그 출판사가 노동운동 선배들이 만든 출판사라 기자들도 활동가처럼 살고 있었어요. 정기적으로 만드는 잡지가 있어서 시민단체보다는 급여조건이 나았어요."


출판사에서 단행본 영업을 맡아 일하던 김원국은 출판사 일은 처음이라 배우면서 일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라는 출판단체에 운동권 출신 선배들이 많았다. 그가 영업을 맡았다고 하자, 이런저런 도움을 주었고 짧은 기간에 영업 노하우를 배울 수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편집일도 하고, 정기적으로 잡지를 내는 곳이므로 원고가 필요했다. 필자를 섭외하고 직접 글을 쓰기도 했다. 

"활동가는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같은 방향으로 가자고 이끌어가는 사람이에요. 그중 하나는 '말'이고 하나는 '글'이에요. 말과 글로 사람들한테 같은 방향으로 가자고 제안하고 설득하는 과정에 활동가가 있는 거예요. 투쟁이 있을 때는 저항하느라 드러눕고 연행 당한 적도 있지만 에너지가 너무 많이 소모돼요. 정말 우리가 가야 하는 방향이 어떤 것인지 알고 제안하고 손 내밀고 손잡고 갈 수 있는 사람이 활동가라고 생각해요. 그런 마인드로 출판사 영업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이 얼마나 많이 팔리겠다가 아니라, 이런 책은 사회에 꼭 필요한 책이기 때문에 이 서점에서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얘기해요.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 배치하는 것이 사회 정의나 관점에서 당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하면서요. 활동가로 살다가 책 파는 일을 했을 때 저에게 잘 맞는다고 느꼈던 점은 이처럼 사람을 만나서 설득하고 이끌어내는 지점이었어요."


질문을 던지면 쉴 새 없이 말을 하는 김원국을 보고 놀랐다. 그냥 횡설수설하는 말이 아니라, 논리가 있고, 타당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중간에 말을 끊기가 어려웠다. 김원국은 어떤 주제로 이야기를 해도 주변을 압도할 만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외향적이지 않고 조용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사람이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다. 사람들을 만나고 조직하는 일이 많은 활동가에게는 부담스러운 성향이다. 그럼에도 김원국은 그 장벽을 잘 넘었다. 

소설가가 꿈이었는데 환경운동 활동가가 된 이유
 
2015년 3월, 후쿠시마 핵폭발사고 4주기를 맞아 지하철역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 김원국 활동가.
 2015년 3월, 후쿠시마 핵폭발사고 4주기를 맞아 지하철역에서 1인 시위하고 있는 김원국 활동가.
ⓒ 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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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과 문화운동을 하고 태바에협을 만들게 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태바에협은 은평지역의 활동가 및 노동당, 녹색당, 생태보전시민모임 그리고 두레생협, 살림의료생협의 구성원들이 주축이 되어 2013년 4월 19일에 99명의 발기인이 모여 창립총회를 했다.  

"창립총회 할 때 조합원 모집하느라 애를 좀 먹었어요. 8년 차가 된 지금은 그럭저럭 자리를 잡아가고 있어요.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핵에너지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전환 과정을 거쳐야 해요. 이것은 단순히 재생에너지를 늘리기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에요. 많은 시민들의 참여를 통해야만 가능한 일이거든요. 재생에너지를 확산해가면서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과하게 사용하고 있는 에너지를 줄이는 활동으로도 이어져야 해요. 에너지협동조합은 이러한 에너지 전환의 과정을 만들어가는 가장 좋은 매개체예요.

초창기인 2015년도에는 시민참여형 에너지협동조합이 전국에 20여 개 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50여 개가 있어요. 예전에 환경운동 했던 선배들이 이쪽으로 많이 넘어오셨고, 지금 각 지역에서 재생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그분들께 제가 실무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드리고 있어요. 

협동조합이 많이 생기는 것에 비해 협동조합의 가치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요. 태바에협은 그런 가치를 담아내는 일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면, 조합원들이 10만 원이든 100만 원이든 출자금을 내고 발전소를 만들어요. 그 다음부터는 발전소하고 연결하는 매개가 없어요. 태바에협은 매개체를 만들기 위해서 조합원과 함께 발전소에 청소를 하러가요. 6년째 그렇게 하고 있어요. 부모가 조합원인 경우에는 아이들도 조합원으로 가입을 시켜요. 어릴 때부터 교육을 하면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게 되거든요. 

초등학교 3학년인 어린이 조합원은 기후위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학교에 가서 친구들한테 설파하는 거예요. 1회용품을 쓰지 않아야 한다고 하고, 선생님한테도 계속 이야기해요. 이 친구가 언젠가 어린이조합원 모임에서 그러더라고요. '청와대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하고 싶다. 대통령이 왜 기후 위기에 대해서 방관하느냐?'고요.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생각에 무척 흐뭇했어요."


협동조합 설립의 의미를 알고 몸소 실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태바에협은 실천 활동에 무게를 두고 있다.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나의 실천 활동이 기후위기에 대응할 힘을 기르게 하고, 변화된 환경을 목격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살아 있는 교육이다. 이것이 태바에협이 기타 협동조합과 다른 점이다.  

실제로 청소년들이 기후위기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어른들조차 하기 어려운 일을 아이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김원국은 어린이 조합원의 적극적인 활동 모습을 보면서 에너지 협동조합을 만든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분위기가 고조된 듯 그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아이들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꺼냈다.  

"딸아이가 두 명 있어요. 저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업고 집회 다녔어요. 거리 행진 하다가 건물 화장실에 들어가서 기저귀 갈고 분유 먹이고요. 그래서인지 아이들은 엄마랑 있을 때와 아빠랑 있을 때의 차이점을 못 느껴요.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보다 더 철저하게 에너지를 아껴요. 사용하지 않는 전자제품은 반드시 코드를 뽑고, 멀티탭의 스위치를 끄고, 설거지 할 때나 양치할 때 수돗물이 혼자 흐르게 내버려 두지 않아요.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고, 재활용품 분리수거도 철저하게 하죠.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웃음).

아이들이 본인이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빨리 찾고, 그 길로 가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중학교 때 부터 소설가가 되고 싶었는데 못 돼서 지금도 그 꿈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요(웃음)."


필자는 아이가 걸음마를 뗐을 때부터 집회에 같이 다닌 적은 있어도 아이를 업고 집회에 다닌 적은 없다. 열성 활동가라서 그런지 뭐가 달라도 다르다. 김원국은 조기교육부터 남다른 실천을 했을 거라는 내 짐작이 맞았다. 그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사례를 들어보니 나는 꿈도 꾸지 못 할 것들이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기본이잖아요. 손수건도 마찬가지고요. 만약에 텀블러나 손수건 안 가지고 나가면, 물 안 마시고, 땀나면 그냥 옷으로 닦아요(웃음). 샴푸, 린스는 당연히 안 쓰고, 주방세제 안 쓰고 쌀뜨물로 기름기 제거하고, 수세미는 천연수세미를 써요. 비누를 떨 쓰고, 물로만 머리를 감아요. 물로 머리를 감으면 3~4일은 버틸 수 있는데 그 이후엔 조금 곤란하더군요. 그래서 샴푸나 비누를 물에 조금 희석해서 써요. 세탁세제를 조금만 쓰기 위해 세탁볼을 사용해요. 자전거를 잘 못 타서 집에서 사무실까지 왕복 5Km를 매일 걸어 다녀요. 자동차는 당연히 없고요(웃음)"

텀블러를 안 갖고 나가면 물도 안 마신다니, 의지가 대단하다. 개인 컵 안 갖고 나가면 바로 1회용 컵을 찾는 게 일상인데. 변화의 큰 밑거름은 작은 실천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운동은 그렇게 몸에 배어야 하는데, 나는 툭하면 핑곗거리 찾기 바쁘다. 머리로는 '탄소를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어느새 손은 자동차에 시동을 걸고 있으니 말이다. 

김원국은 꽁지 머리를 하고 있다. 수염도 길다. 기르는 이유는 특별히 없다고 했다. 추측 건데, 환경을 위해서가 아닐까하고 혼자 상상해본다.

"한국사회는 기형적인 사회예요. 환경운동, 노동운동, 문화운동 등 전체적인 사회운동을 두루 경험해 봤어요. 그중에서 제일 심각한 분야가 에너지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 전체적으로 그런 인식이 없어요. 그 점이 가장 안타깝고 아쉬워요. 이러한 인식을 확산하는 데 제가 가진 재능을 썼으면 좋겠어요.  아, 물론 전업 활동에서 물러나면 골방에 처박혀 글 써야죠(웃음)."  
 
2017년, 3월.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창립총회에서 조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김원국.
 2017년, 3월. 태양과바람에너지협동조합 창립총회에서 조합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는 김원국.
ⓒ 김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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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필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서울 청각장애인문자통역지원 서비스를 이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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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쓴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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