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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보다 넓은 화성시 곳곳에는 시민들이 언제든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시립도서관'들이 많다. 왠만한 책이라면 거의 모두 구해볼 수 있기에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을 검색해봤다. 대부분의 도서관에서 모두 비치하고 있었다. '무서운' 일 아닌가? 그 무시무시한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지정된 책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뭐가 놀라우랴. '대학입시' 숭배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논술교재'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책이기도 한데 말이다.

국가보안법은 이런 법이다. 단언컨대, 지금 이 순간에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그 누군가를 압수수색했을 때 만약 '공산당선언'이 나온다면, 이는 '범죄'를 입증하는 가장 중요한 증거물로 판단될 것이다. 그러나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선량한' 화성시민들 누구나 자유로이 '탐독'할 수 있도록 이 '무시무시한 이적표현물'을 버젓이 비치하고 있는 화성시립도서관에 대해서는 압수수색할 의도도, 생각도, 상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국가보안법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말한다. 칼자루를 쥔 자의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에게 언제든 '자의적'으로 휘두를 수 있는 만능검이기 때문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과연 이게 '법'인가?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하는,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기실, 우리 인류의 역사란 한마디로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발전해온 역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2021년 대한민국에서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보통선거권'의 역사 또한 그러하다. 왕과 귀족, 평민과 노비가 엄격하게 구분되던 신분제사회가 공식적으로 해체된 다음에도 그 이후의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았다.

'일정한 재산이 있는 성인 남성'에게만 주어지던 투표권에 항의하던 여성들은 단두대에서 목이 잘려야 했다. 수많은 이들의 목숨까지 건 투쟁으로 현재 선거권은 연령 제한을 제외하고는 '소득 및 재산, 성별, 장애, 인종' 등 여타 제한을 두지 않고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연령 제한'을 두고서는 여전히 치열한 '투쟁'이 진행 중이다.) 가령 지금 누군가가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주자'라고 한다던가 '재산의 정도에 따라 투표용지 매수를 다르게 주자'고 한다면 모두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에 직면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민주주의는 곧 '공공연하게 이뤄지던 차별과 배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진행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래서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작금의 논의들, 그 누군가의 눈치만 보며 쭈뼛거리는 국회의 행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아니, '차별을 하자'는 법이 아니라 '차별을 하지 말자'는 법이, 우리 모두 동의하는 민주주의 발전 방향에도 정확하게 부합하는 이런 법이 왜 연거푸 좌절되어야 하나? "모두 다 같은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차별받아야 마땅합니다"라는 이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궤변과 선동에 언제까지 '소중한 그 누군가의 목숨'을 제물로 바쳐야 하나?

최근 국회의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이 뜨겁다. 지난 5월 10일 제기된 '국가보안법 폐지에 관한 청원'은 단 열흘 만인 19일, 10만 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되었다. 지난 5월 24일 시작된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은 9일째인 오늘, 절반인 5만 명을 훌쩍 넘겼다.

'국가보안법 가고 차별금지법 오라'는 이 짧은 문장보다, 작금의 시대를 더 정확하게 설명해주는 말이 있을까 싶다. '민의의 전당'이라는 국회가 나서지 않으니, 일상에 바쁜 시민들이 여전히 수고로운 상황이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했다는 '21대 국회'의 대오각성을 강력히 촉구하며, 시민의 이름으로 '즉각 행동'을 명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화성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화성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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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빠진 독 주변에 피는 꽃, 화성시민신문 http://www.hspublic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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