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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책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를 받아들었을 때 나는 단순한 심리학책이나 자기개발서라고 생각했다. 조금 특별한 점이 있다면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한 여성이 훗날 심리치료사가 되어 쓴 이야기라는 점.

이 책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에디트 에바 에거'라는 한 인물이 심리치료사가 되기까지 과정을 담은 자전적 수기다. 헝가리에서 태어난 에디트는 발레리나를 꿈꾸는 평범한 소녀였다. 십대 시절, 부모님, 언니와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고 부모님이 독가스실로 향하는 것을 눈앞에서 목도한 에디트. 그것도 부족해, 자신의 부모를 죽인 독일인 앞에서 그의 명령대로 춤을 춰야하는 수모와 고통을 당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심리치료사가 된 한 여성의 이야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심리치료사가 된 한 여성의 이야기.
ⓒ 위즈덤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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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순간이 죽을 위기와 고비였으나 에디트는 어머니가 수용소로 끌려가는 기차 안에서 했던 말을 가슴에 새기며 떠올린다.
 
"잘 들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몰라.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하지만 이것만 기억해. 네가 마음에 새긴 것은 아무도 네게서 뺏을 수 없단다." 엄마가 어느날 밤 시커먼 허공에 대고 말한다. - 72p
 
그리고 자신이 수용소에서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그녀는 내면의 목소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 상황은 일시적이며 만약 오늘 살아남는다면 내일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거'라고.

오늘 살아남는다면... 내일은 자유로워질 거야 

에디트는 시쳇더미에서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게 되고, 벨라라는 남자를 만나 사랑과 결혼을 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평온한 듯 보여도 늘 과거의 기억에 얽매여 있고 악몽을 꾸는가 하면 조그마한 소리나 특별한 상황에도 어쩔 줄 몰라 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에디트는 과거를 잊고 싶었고, 과거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이제는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고 현재와 미래를 꿈꾸며 살고 싶었다. 하지만 과거로부터 달아나려 하면 할수록 일상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또한 자신이 살아남은 이유에 대해서도 고민하기 시작한다. 수용소에 있을 때는 '생존'이 삶의 유일한 목적이었다면, 과연 생존 후에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자신은 여전히 수용소에 갇혀 있던 10대 시절에 머물게 된다는 사실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겪은 시련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나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삶의 가장 힘든 부분들을 견뎌내고 더 많은 열정과 기쁨을 경험하도록 도울 수 있을까?... 바로 다른 사람들이 의미를 만들도록 도움으로써 내 삶 속에서 의미를 만드는 것, 다른 사람들을 치유할 수 있도록 나 스스로 치유하는 것, 내가 나 자신을 치유할 수 있도록 다른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 등이었다. 또한 나는 내게 나 자신만의 의미, 나 자신 만의 삶을 선택할 힘과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 289p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에디트는 심리학 공부를 해서 박사학위를 취득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그들의 고통과 분노, 좌절을 듣고, 그 속에서 지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그럼으로써 에디트는 타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 이제 과거의 '마음 감옥'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한 에디트.

하지만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은 것인가. 그녀에게 마지막 최후의 관문이 남아있다. 마음 감옥에 갇힐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에디트는 독일군이 한 워크숍에서 강연을 해달라는 제안을 받는다. 그곳은 히틀러와 괴벨스의 옛 별장이 있던 베르히테스가덴이라는 곳이었다.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나는 책장을 덮고 생각해봤다. 만약 내가 에디트라면? 그런 제안을 받으면 나는 수락할 수 있을까? 자신의 그간 노력과 공부가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오히려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는 일이었다. 에디트에게는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때 용기를 준 사람은 그녀의 남편이었다. 그는 '만약 당신이 독일에 가지 않는다면, 그러면 히틀러가 전쟁에서 이기는 거야'라는 말로 그녀에게 새로운 깨우침을 준다. 에디트는 결국 그 수락을 받아들인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믿고 그곳에 가는 기차를 탄다. 도박과 다른 가장 큰 차이는 믿음이었다.
 
"나는 우리가 모두 내릴 수 있는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나는 결코 과거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내가 구원할 수 있는 삶은 있다. 바로 나의 삶이다. 내가 바로 지금 사는 이 삶, 이 귀중한 순간이다." - 410p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에디트의 삶은 그 어떤 영화나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다. 그녀가 겪은 고통과 마음감옥은 특별해서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사람들과 사례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지옥이고 마음 감옥임을 보여준다.

내 안의 '마음 감옥'을 마주하다

제멋대로 사는 딸에게 분노하는 아빠, 불륜을 저지른 아내 때문에 살인 충동을 느끼는 젊은 남편, 맹목적인 헌신이 사랑이라고 믿으며 자신을 잃은 채 괴로워하는 젊은 여성, 부모와의 불화로 섭식장애를 앓게 된 소녀... 아우슈비츠가 아니더라도 마음감옥은 어디에나 있고, 과거에도 있고 현재에도 존재한다.

이 책을 처음 읽을 때만해도 '아우슈비츠 수용소' '유대인' '마음감옥' '심리학자' '2차 세계대전' 등의 키워드가 현재 내 삶과는 직접적 관련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책이 중반부 즈음을 넘길 무렵, 나는 내 마음 감옥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똑바로 보았다.

그것은 예상치 못했던 순간이었기에 갑자기 당혹스러웠고 마음이 찡해서 책장을 잠시 덮었다. 그리고 심호흡을 했다. 아... 나도 마음 감옥에 갇혀 있구나, 이렇게 생각하는 스스로를 보았다.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었기에 나는 내 마음 감옥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부분에 집중해서 책을 읽게 되었다.

올해로 91세를 맞은 에디트 박사가 마음 감옥에서 완전히 해방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인간의 기억이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는 이상, 가끔씩 찾아오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그녀를 덮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그러한 자신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마음 속에 새긴 그것을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진정 자유의 몸이지 않을까. 결국 어떻게 사느냐 선택의 문제다. 과거에 연연할 것인가, 그런 나를 수용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이 책의 원제가 <The Choice>(더 초이스)인 것도 그런 이유다.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내면의 빛을 보는 법에 대하여

에디트 에바 에거 (지은이), 안진희 (옮긴이), 위즈덤하우스(2021)


태그:#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에디트 에바 에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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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픈 것은 삶이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도스또엡스키(1821-1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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