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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군 웅포대교 아래에서 강물에 기자의 손을 담갔다가 뺀 모습이다. ⓒ 김종술
 
이 손을 봐주기 바란다. 진한 녹색 페인트통에 한 번 담갔다가 뺀 것처럼 엉망이다. 페인트보다 더 진한 금강의 녹조에 담갔던 손이다.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확인할 수 있다.
 
4대강 사업 이후 해마다 녹조가 발생했다. 강물을 가로막고 있던 세종·공주·백제보의 수문 개방과 함께 한순간에 사라졌다. 그러나 하굿둑의 영향을 받은 (충남) 부여군과 서천군, (전북) 익산시와 군산시 쪽은 질척한 곤죽 상태로 빠졌다. 재난 상태의 녹조가 발생하고 있지만, 하굿둑 개방을 놓고는 전라북도와 충청남도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29일 하늘이 어둡다. 안개까지 낀 강변은 한낮에도 가시거리가 짧다. 어제 내렸던 소나기는 오늘도 오락가락한다. 다년간 경험에 의하면 이런 날에는 강변에서 특별하게 볼 것이 없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빗나갔다. 수문이 개방된 곳과 닫힌 곳의 상황은 '극과 극'이었다.
 
마술 같은 강
 
수문이 개방된 공주보 상류에서 드론을 띄워 찍은 사진이다. ⓒ 김종술

첫 번째로 들른 곳은 공주보 상류 쪽이다. 2008년 굳게 닫혔던 수문이 열리면서 강의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고 있다. 수문 개방 후 시커먼 펄밭의 강바닥은 뽀얀 모래로 반짝거린다. 실지렁이와 붉은깔따구만 득시글하던 강물에도 작은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도 확인할 정도다. 죽음의 강에서 막 깨어나 희망의 강으로 변해가는 마술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한 무리의 원앙들이 모래톱에서 쉬다가 인기척을 느끼고 건너편으로 이동한다. 낮은 물가를 뛰어다니며 물고기를 잡던 왜가리도 커다란 날개를 흔들며 날아오른다. 강물과 맞닿는 지점에는 널찍한 구덩이가 보였다. 어린아이의 작은 발자국도 선명하다. 모래성을 쌓으며 놀았을 아이들이 파놓은 것으로 보인다. 재잘재잘 울어대는 물떼새는 오늘도 발길을 잡는다.
 
물떼새들의 배웅을 받으며 강변을 나왔다. 공주보를 돌아보고 하류 백제보로 이동했다. 어제와 그제 다녀간 곳으로 수문이 개방된 후 큰 변화가 없다. 수력발전소 콘크리트 구조물에 가마우지가 날개를 펴고 몸을 말리는 것까지 전날과 비슷했다. 지난해처럼 녹조도 발생하지 않고 반복되던 물고기 떼죽음도 사라졌다. 그러나 오랫동안 닫혔던 탓에 강바닥에 펄층이 씻기느라 강물은 탁해 보였다.
 
느릿하게 하류로 이동했다. 황포돛배가 다니는 부소산성 낙화암을 지나 흘러가는 강물은 평화롭다. 노란 금계국으로 뒤덮은 강변에 대형 트랙터들이 제초 작업을 하느라 분주하다. 인적 없이 방치된 수변공원의 잡풀을 정리하는 것이다. 둥그렇게 말아놓은 수백 개의 곤포사일리지가 농경지를 연상케 했다.
 
녹조라는 '독' 
 
충남 서천군 화양리 강변에서 드론을 띄워 바라본 강물. ⓒ 김종술
 
전북 익산시와 충남 부여군을 연결하는 웅포대교에서 드론을 띄워 바라본 강물. ⓒ 김종술
 
내 눈을 의심했다. 궂은 날씨에 소나기까지 오락가락하고 있어 녹조가 피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못 했다. 차량에서도 확연하게 드러난 강물은 녹색 빛이다. 익산시와 부여군을 연결하는 웅포대교 아래로 내려가자 역한 냄새가 올라왔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강물은 심한 악취를 풍겼다. 물속을 들여다보니 녹색 알갱이들이 곳곳에서 몽글몽글 치솟았다. 이 알갱이들은 이내 뭉쳤고, 강물을 점령한 녹조에 합류해 수면 위에 두꺼운 녹조 층을 쌓고 있었다. 그야말로 걸쭉한 '녹조라떼'의 강이다.
 
붉게 탄 손을 강물에 비추었다. 녹색 강물과 대조적이다. 녹색 강물에 지긋이 손을 담갔다. 기분 나쁠 정도로 끈적끈적한 액체가 손바닥을 타고 흘러내린다. 거머리처럼 녹색의 강물이 달라붙었다. 따끔거리는 손바닥을 비비면서 심한 악취로 두통이 밀려와 서둘러 빠져나와야 했다.
 
녹조는 '독'이다. 대량으로 창궐한 남조류 '마이크로시스티스'는 그 안에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치명적인 독을 품고 있다. 특히 간질환을 일으키는 독성물질로 인해 서구에서는 물고기와 가축, 심지어 멕시코에서는 사람까지 사망한 사례가 확인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아프리카 보츠와나 지역에서 코끼리 수백 마리가 떼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녹조가 원인인 시아노박테리아의 신경독 때문이었다.
 
일본의 유명한 조류학자인 다카하시 토오루 구마모토보건대학 교수는 두 차례 방한해 4대강 녹조를 조사·분석하면서 "남조류 마이크로시스티스가 내뿜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성물질이 청산가리의 100배나 되는 맹독성 물질"이라고 증언했다. 그는 또 "이 맹독성 물질은 조류를 먹을 수밖에 없는 어류에 그대로 농축되고, 심지어 이 강물로 농사지은 농작물에까지 농축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물과 맞닿는 민가도 있다
 
소나기로 인해 흙탕물이 유입되는 상태에서도 금강 본류에 창궐한 녹조가 수로 쪽으로 밀려들어가는 상황. ⓒ 김종술
   
충남 서천군 화양리 강변에서 드론을 띄워 바라본 강물. ⓒ 김종술
 
녹조가 발생한 건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익산과 군산, 서천 쪽으로 내려갈수록 녹조는 더 짙어 보였다. 내려가는 도중에 간간이 드론을 띄워 바라본 강물과 둔치의 경계는 사라져 버렸다. 군산시와 서천군을 연결하는 금강하굿둑까지 16km 정도를 뒤덮었다. 잦은 소나기 때문에 흙탕물이 발생하고 논에서 흘러든 물이 금강 본류의 강물을 진정시킬 정도다. 그러나 강 본류와 수로의 수문이 열린 곳에서는 본류에서 밀려든 녹조가 수로로 유입되는 상황이다.
 
금강을 끼고 강변에는 민가들이 즐비하다. 녹조가 발생하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 김종술
 
강물과 맞닿아 있는 지점에는 민가도 있었다. 강에서 퍼 올린 녹색 강물로 농작물도 키우고 있다. 이렇듯 녹조가 대발생하면 국가는 재난 상태를 선포해야 한다. 지역민들에게 알려서 수상레저 활동 및 야외 활동을 자제시켜야 한다. 그러나 지역민에게 알리지 않아서 강에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사람도 보였다. 낚시를 잡은 물고기를 먹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도 안전한 것일까.
 
지난 10일, 이승준 부경대 식품영양학과 교수가 낙동강 함안보 회의실에서 '남세균(녹조) 대발생이 환경 및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로 특강에 참석했었다. 이 교수는 화면에 상추 현미경 사진을 공개했다. 회색빛 상추 표면에 녹색 점을 리모컨으로 가리키며 "이것이 독성물질 시아노톡신(Cyanotoxin)을 생성하는 남세균(藍細菌. Cyanobacterial)이죠. 여기, 상춧잎 기공으로 들어가는 게 보이죠? 이게 남세균 '내재화(internlization)'입니다. 남세균은 일반적 채소 세척 방법으로 완전히 없애기는 힘들죠"라는 강의를 들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단순히 녹조라고 불리는 물질이 시아노박테리아로 불리는 '세균'이었던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녹조라는 명칭부터 바로 잡아야 했다. 과거 남조류라 불렀는데, 최근 시아노박테리아(남세균)라는 정식 명칭이 붙었다. 단순 조류가 아닌 엽록소로 광합성 하는 세균이다. 이 물질이 지하수에 유입되고 농작물에 축적되고 공기 중 에어로졸로 흡입된다고 하니 기가 막힐 일이다.
 
한낮임에도 안개가 가득한 금강 하굿둑. ⓒ 김종술
 
녹조는 4대강 사업의 저주다. 인간의 어리석은 무지와 탐욕이 부른 인재다. 강바닥을 깊이 파 모래를 전부 걷어내고 거대한 콘크리트 보를 만들어 강을 막은 결과다. 그러나 강을 흐르게 하면 녹조는 저절로 사라진다. 수문이 닫히고 열리기를 반복했던 세종, 공주, 부여가 증명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1년에 340일 이상 강에서 살아온 내가 증인이다. 금강 하굿둑의 수문도 개방되어 모든 국민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었으면 한다.
태그:#4대강 사업, #남세균, #금강하굿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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