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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자폭탄(이하 원폭) 두 방 덕분이죠."

우리 민족이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를 청산하고 꿈에 그리던 해방을 맞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아이들은 입이라도 맞춘 듯 이렇게 답했다. 기성세대라고 다를 건 없다. 어떤 이는 숫제 원폭이 아니었다면 광복은 요원했을 거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일본인은 물론, 징용으로 끌려간 숱한 우리 국민까지 죽음으로 내몬 원폭 투하에 공을 돌리는 꼴이다. 정확한 통계조차 없는 추정치일 뿐이지만, 당시 두 차례의 원폭으로 만여 명의 한국인이 사망했다.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피폭된 이들의 고통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또한 모르진 않지만, 이구동성 불가피한 희생이었다고 두둔했다. 원폭이 아니었다면 일제의 항복이 늦어져 더 큰 희생이 따랐을 것이라 확신했다. 원폭은 연합군의 최종 승리를 선언하는 상징적 사건이었으며, 우리에게 빛(光)을 되찾아준(復) 직접적 계기였다고 덧붙였다.

어리석고도 그릇된 해석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7일 경기도 파주시 연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PT) 면접 '정책 언팩쇼'에서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7일 경기도 파주시 연스튜디오에서 열린 "프레젠테이션(PT) 면접 "정책 언팩쇼"에서 정책 발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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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사로서 난감하다. 우리가 식민지의 굴레에서 해방된 이유를 원폭에서 찾는 건 어리석고도 그릇된 해석이어서다. 일단 미군이 우리나라를 독립시킬 목적으로 원폭을 투하한 게 결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곧 미소 냉전의 시작이었던 만큼, 일제를 제압한 뒤 소련의 세력 확장을 견제하기 위한 속셈이었을 뿐이다.

원폭 투하가 해방을 얼마간 앞당긴 효과는 있었을 테지만, 사실상 일제의 항복은 시간문제였다. 소련군은 한반도로 거침없이 진주 중이었고,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의 패배로 일본 해군은 이미 궤멸된 상태였다. 일찍이 3월엔 미군의 대공습으로 도쿄가 폐허가 되다시피 했고, 4월엔 옥쇄 작전으로 버티던 오키나와가 함락되었다.

충칭에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광복군도 일제를 향해 선전포고문을 발표했다. 중국의 화북 지방에 있던 조선독립동맹의 조선의용군도 국내로의 진격을 앞둔 상태였다. 국내에서도 여운형을 중심으로 비밀결사체인 건국동맹이 조직되어 해방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되레 원폭 투하는 세계사에 유례없이 잔혹한 식민 통치를 일삼던 일제에 양가적 인식을 갖도록 만들었다. 가해자로서 제국주의 국가 일본과, 피해자로서 세계 유일의 원폭 피해국 일본. 이렇듯 상반된 인식은 그들이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마뜩잖게 여기는 이유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원폭으로 자신들의 '죗값'을 다 치렀다고 여기는 것이다. 지난 2016년 G7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시마를 찾아 원폭 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한 일은 여러모로 상징적이었다. 원폭에 대한 미국의 공식 사죄로 비추어져 일본인들 스스로 그들의 피해에 주목하게 됐다.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국내외 언론들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에 면죄부를 준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랐다. 국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인 희생자 위령탑에도 참배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그럴수록 일본이 원폭 피해국이라는 사실만 도드라졌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원폭이 가려주는 셈이다.

일제의 식민지에서 미소 냉전의 격전장으로

무엇보다 해방이 원폭의 덕이라고 여긴다면 36년간 목숨을 바쳐 싸운 숱한 독립운동가들의 헌신은 뭐가 되는가. 친일파들이야 청천벽력 같았겠지만, 독립운동가들에게도 원폭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이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며 안타까워했을까.

원폭으로 일제의 패망이 예상보다 빨라진 탓에,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여러 독립운동 단체들이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혼선이 빚어졌다. 한국광복군의 작전도 개시일을 해방 닷새 후인 8월 20일로 잡아 실현되지 못했다. 이는 우리가 승전국의 지위를 얻지 못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애석하게도 독립운동가들은 해방된 조국의 미래를 그려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 당장 일제를 몰아내고 한반도를 점령한 미군과 소련군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들은 제멋대로 그은 38선을 사이에 두고 자국의 이해관계를 앞세워 분할 통치를 실시하였다. 이는 분단의 시초가 됐다.

분단의 상징인 38선 획정도 원폭과 무관하지 않다. 원폭이 투하된 직후, 소련군은 재빨리 한반도로 진격해 들어왔다. 미국은 소련의 한반도 단독 점령을 막기 위해 38선을 경계로 한 한반도 분할 점령안을 제안했고, 소련이 곧장 이를 수용하면서 38선이 설정되었다.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지만, 만약 원폭이 투하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의도와 상관없이 38선이 그어지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미소 냉전으로 좌우의 대립을 피할 수 없었다고 할지라도 분단으로 치닫진 않았을 것이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뒤 곧장 둘로 쪼개져 급기야 전쟁까지 치른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가 됐다.

38선이 설정된 후 이남은 미군정이 직접 통치했고, 이북은 소련이 김일성을 후원하는 간접 통치 방식을 택했다. 순식간에 일제의 식민지에서 미소 냉전의 격전장으로 탈바꿈된 조국에서 독립운동가들은 존경은커녕 신변의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남쪽에선 숨죽이던 친일파들이 미군정에 빌붙어 득세하며 되레 주인 행세를 했다.

해방 직후부터 6.25 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5년간의 참담한 역사를, 혹자는 역사학이 아닌 '정신분석학의 영역'이라고 규정지었다. 청산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극심한 좌우의 대립 속에 애국자를 자처하는 상황이 전개됐다는 걸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알다시피, 이후 대한민국은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기형적인 사회가 됐다.

친일파의 득세는 친일 청산의 실패로 귀결됐고, 이는 팔 할이 미군정의 책임이다. 해방 뒤 미군정은 총독부 체제를 그대로 유지했고, 친일 관료와 경찰을 중용했다. 친일파 처단을 염원했던 독립운동가를 비롯한 우리 민족의 요구를 묵살한 것이다. 미군정의 비호 속에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친일 경찰에 의해 고문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은인을 넘어 종교가 된 미국, 그러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한 중식당에서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오찬 회동을 마친 뒤 기자들과 질의응답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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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리 돌아왔다. 우리 현대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진 이들이라면 모두가 아는 내용일 텐데 굳이 중언부언할 필요가 있었는지 반성한다. 다만, 왜 우리는 원폭 투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미군정에 왜 그토록 호의적인지 당최 이해할 수 없다. 이 와중에 여당의 유력 대통령 후보의 '점령군' 발언을 문제 삼아 야당과 보수 언론이 연일 십자포화를 쏟아내고 있다.

미군이 점령군이냐의 여부는 이미 결판이 났다. 1945년 9월 발표된 '맥아더 포고령 제1호'에서 스스로 자신을 점령군이라고 적시했다는 건 상식에 가깝다. 명색이 야당의 대통령 후보와 그의 엘리트 참모진들이 그런 기초적인 사실조차 확인하지 않고 문제를 제기했을 리 없다.

포고령의 원문에 어떻게 적혀있든, 미군을 점령군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들린다. 미국은 우리를 공산화의 위기에서 구해낸 은인과도 같은 나라인데, '불경스럽게' 점령군이라고 부르는 건 배은망덕한 짓이라고 말하고 싶은 듯하다. 흡사 임진왜란 직후 명나라를 향해 '재조지은(再造之恩)'을 읊었던 조선 조정을 떠올리게 한다.

6.25 전쟁 이후 미국의 존재는 우리에게 은인을 넘어 '종교'가 됐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우리나라는 미국의 원조로 연명했고, 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남의 나라 전쟁터에 생때같은 젊은이들을 내보냈다. 미국의 경제적, 군사적 지원이 절대적이었다는 편견 속에, 정작 왜 해방 직후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게 되었는지는 따져 묻지 않는다.

"미제라면 양잿물이라도 마신다."

팔순의 노모가 입버릇처럼 되뇌시는 말씀이다. 아직도 북한을 '북괴'라고 부르시고, 공산당이 친일파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고 여기시는 분이다. 그를 설득하려는 건 부질없는 짓이다. 집권과 정권 유지를 위해 미국을 활용한 이승만과 박정희, 전두환 독재정권을 거치며 굳어진 편견을 한낱 교과서 지식으로 이길 순 없는 법이다.

문제는 노모와 같은 사람들을 부추겨 권력을 탐하려는 저급한 정치꾼들이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미군을 점령군으로 불렀으니 종북좌파라는 식의 황당무계한 주장을 서슴없이 내뱉는 그들과, 한통속이 되어 색깔론을 제기하는 보수 언론의 칼춤을 지켜봐야 하는 현실이 서글프다.

사족 하나. 청년 정치의 상징으로 우뚝 선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번 점령군 논쟁에 한마디 얹었다. 그는 "점령군이라는 표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친일파를 묶어서 이야기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미군정과 친일 청산의 실패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인식이 놀랍다.

그는 미군정이 전문 관료로 일부 친일파를 중용한 건 불가피했다고 덧붙였다. 그들의 득세로 친일 청산이 좌절됐다는 사실엔 눈 감은 셈이다. "70년 전의 친일 관료가 대한민국에 영향을 주는 건 없다"고 단언하는 마당이니, 팔순의 노모보다 그를 설득하는 게 더 어려울 성싶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서울특별시 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국민의힘 서울시당-서울특별시 당정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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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점령군 논쟁 , #윤석열, #이준석, #맥아더 포고령 1호, #원폭 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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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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