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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그 뜨거웠던 명동성당의 이전 모습을 간직한 사진이다. 지금은 진입로 등이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 명동성당 이전 모습 1987년 6월. 그 뜨거웠던 명동성당의 이전 모습을 간직한 사진이다. 지금은 진입로 등이 다른 곳으로 바뀌었다.
ⓒ 서울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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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개인은 우리사회 전체의 복지라는 명분 아래서도 유린될 수 없는, 정의에 입각한 불가침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는 정의에 의해 보장되는 이러한 기본권이 더 이상 정치적 흥정이나 사회적 이득의 계산에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 존 롤즈의 <정의론>

'정의'를 기치로 내건 사제단 소속 사제들은 안팎의 세찬 압박에도 행군을 멈추지 않았다. 4월 18일 명동성당에서 김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최재신 주교와 120여 명의 사제들이 공동집전하는, '3.1사건으로 복역 중인 인사들과 정의구현ㆍ인권ㆍ나라를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사제단은 7개항의 〈시국선언〉을 발표했는데 ⑤ㆍ⑥ㆍ⑦개 항은 다음과 같다. 

⑤ 평화는 정의와 결부되어야 한다. 정의 없는 평화는 있을 수 없으며 평화를 위하여 정의의 파괴를 정당화하는 것은 평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일 뿐이다. 평화와 정의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이어야 하며, 자유와 인권은 그것이 지켜지는 곳에서만이 지켜질 가치가 있다. 

⑥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생각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 권리가 있다. 민중에게서 말을 빼앗고 눈과 귀를 막는다는 것은 인간을 동물로 전락시키는 야만적 행위다. 언론의 자유가 없는 곳에서 늘어나는 것은 부정과 부패와 허위와 권력의 횡포요 반면 회심하는 것은 인간의 참된 삶이다. 잃었던 말을 되찾는 일은 인간회복의 제1차적 요건이다.

⑦ 종교의 사명은 "마음이 교만한 자를 흩으시며, 권세 있는 자를 위해서 내리치고, 보잘것없는 이를 들어 높이며, 주리는 자를 배불리는"(루가 1:51~53) 일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들의 신앙실천에 대하여 부당한 권력의 방해가 있을지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다할 것이다. 불의에 의해 희생당하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위하여 우리의 사랑과 정의의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주석 1)

사제단은 9월 20일 명동성당에서 '정의구현을 위한 기도회'를 열었다. 신자ㆍ수도자ㆍ성직자 1,000여 명이 참석한 기도회는 전주교구 문규헌 신부가 강론에서 "국가의 진정한 의미의 안보와 총화는 노동자ㆍ농민들에게 합당한 보수와 인격적 대우가 전제되지 않는 한 어렵다"고 전제하면서 "한국 농민들은 생산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쌀값을 받고 있으며, 저곡가 정책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기본 생활비(주식비)에 비례시켜서 최소한의 생활수단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사제단이 특히 농민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76년 11월부터 시작된 전남 '함평군 고구마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농협 전남지부와 함평군 농협이 1976년산 고구마를 전량 수매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를 이행하지 않음으로써 생산농가가 고구마를 썩혀버리거나 헐값으로 홍수 출하하는 등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자, 함평군내의 가톨릭농민회원들은 곧바로 '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조직, 피해조사에 착수한 결과, 76년 11월 30일 현재 4개면 1개읍 9개 마을 총 160농가의 피해액이 309만 원, 함평군 전체의 피해액은 1억 4천여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제단은 가톨릭농민회와 함께 관계 당국의 비리를 밝혀내고 이슈화시키면서 농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사제단이 긴급조치와 내외의 도전에도 유신독재는 물론 사회적인 각종 의혹과 비리에 따끔한 목소리를 내고 기도회를 통해 억울한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견결한 신앙심에 바탕한 시대정신으로 무장되었기 때문이다. 한 연구가는 사제단의 활동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사제들의 행동에 대한 이론적 바탕을 성숙시키는 작업이다. 세미나, 현장조사, 증언 청취 등의 방식이 여기에 해당된다.

둘째, 깊은 영성생활의 향상을 통해 자신과 주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신자들과 공동체의 의식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민중 자신이 주어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계몽과 홍보 및 의식화를 시도한다.

셋째, 사랑과 정의에 입각한 대화를 이으려고 하며, 공개적 비판과 가두시위도 어디까지나 사랑의 원칙에 위배되지 않도록 한다.

이 같은 사항을 실천함에 있어 따르는 경비는 주로 사제 개인의 호주머니와 신자들의 모금을 통해 해결하고 있다. (주석 2)


주석
1> <한국가톨릭 인권운동사(1)>, 416쪽.
2> 윤일웅, 앞의 책, 103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연구]는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민주주의,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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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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