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20대 대선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주 120시간, 최저임금 한시적 유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며 노동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노동에 대한 혐오로는 한국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은 3월 19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다. 이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야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린 고착된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공공부분에서 국민을 위해 노동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비정규직 현장의 목소리를 싣는다.[편집자말] |
4월 9일 청와대로의 행진을 앞두고 있는 나는 정부기관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다. 좁은 의미의 정부란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지방 교육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리고 공무직이란 공무원이 아니면서 정부의 공무를 담당하는, 근로기준법을 적용받는 민간인(기간제, 용역 등) 중 무기계약직을 말한다.
기재부, 국방부, 국토부 등 각 부처와 경찰청, 검찰청, 산림청 등 부처 소속 외청을 비롯해 중앙행정기관의 50여개 부처청에 약 7만 명의 공무원이 아닌 공무직 노동자가 일하고 있다. 지방교육청과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하면 약 30만 명이 넘는다. 무기계약직이 아닌 비정규직 전체로 보면 그 수는 1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정한다.
이것이 '추정'인 이유는 무기계약직을 제외한 기간제, 용역 등 비정규직에 대한 정확한 통계를 어느 누구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21년 입법부와 사법부, 행정부를 포함한 전체 공무원의 수가 110만 여명이라는 것을 보면, 이미 이 나라의 공무원과 비등한 정도의 '나랏일'을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비정규직이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민간인이기 때문에 각 부처청의 장관, 청장,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지자체 장을 '사장님'으로 두고 있다. 특히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각 부처는 실질적으로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행정부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중앙행정기관 공무직과 비정규직의 진짜 사장은 바로 대통령, 그리고 실질적인 임금 교섭 대상자는 정부 예산을 총괄하는 기재부라고 할 수 있다. 정부에서 일하는 공무직은 그 숫자가 거대한 만큼, 직종과 분야도 다양하다. 중앙행정기관 200여개, 지자체 190여개 직종이 있으며 공공기관 및 공기업을 포함할 경우 2017개 직종에 달한다. 공무원이 하는 거의 모든 업무 분야에 걸쳐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공무를 하지만 공무원이라 부르지 못하고
그런데 공무의 절반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부처 비정규직(공무직, 기간제, 용역 등)은 공무원과 유사 동일한 업무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우에선 심각한 차별을 받고 있다. 정부 공무직위원회가 2021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전체 직종의 77%가 직무급제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직무급제의 81.4%는 직급의 승급 구간이 없는 1직급제로 사실상 십 수 년을 일해도 임금이 오르지 않는 단일 임금제를 적용받고 있다. 평균 근속이 10년에 달함에도 기본급 평균이 220만원에 그친다. 그나마도 식대를 제외하면 최저임금에 가깝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각종 수당과 복지에서도 차별은 여전하다. 지난해까지 식대조차 차별했다. 같은 근속 대비 기본급이 정규직(공무원)의 60%밖에 안 되는데, 명절상여금과 각종 직무 무관 수당, 복지포인트, 근속수당은 아예 없거나 정규직의 절반도 주지 않는다.
또한 현행 정부조직법은 정부기관에 공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둘 수 있도록 돼 있을 뿐, 정부 내에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 직원을 둘 수 있도록 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공무원이 할 수 없는 전문적인 업무나, 공무원들이 기피하는 업무를 맡기기 위해 우리를 채용해 일을 시키고는, 우리가 임용 절차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공무원과의 차별이 당연하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우리를 채용하고 '공무'를 맡길 법적 근거조차 정부조직법 내에 없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는 정부에서 '공무'를 담당함에도 그것을 우리의 정당한 업무나 성과로 내세울 근거가 없다. 일을 시키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모두 근거가 없으니, 해선 안 될 일을 한 것이고 시키면 안 될 일을 시킨 것인지라 공식적으로 우리는 유령인 셈이다. 일이 잘되면 그 성과는 공무원이 가져가고, 일이 잘못되면 우리가 징계를 받는다. 모든 일의 기본인 신상필벌조차 제대로 안 되는 셈이다. 그렇기에 우리의 정당한 '공무'를 인정하고 우리 업무에 법적 근거를 만들어 달라고, 이른바 '공무직 법제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발족 2년, 공무직위원회가 한 일
우리는 차별 해소를 위해 법원도 찾아가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찾아갔다. 비단 비정규직 차별은 정부 부처 공무직만의 문제가 아니었기에 대법원 판결을 통해 '입직 경로만을 이유로 직무 무관 수당 및 복지 수당을 차별하여 지급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판례는 이미 너무나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우리 정부 내 비정규직들이 많은 차별을 겪고 있다며 정부를 위시한 기재부와 고용노동부를 콕 짚어 차별을 해소하라는 권고안도 냈다. 우리는 국회와 정부의 문도 두드렸다. 그렇게 2018년 민주노총 공공부문 비정규직 공동파업위원회의 이름으로 문재인정부를 상대로 힘차게 투쟁한 결과, 문재인 정부는 공무직위원회 구성을 결정하게 된다.
공무직위원회는 2019년 12월 정부 국무총리실 산하로 고용노동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고, 기재부 1차관, 행안부 차관 등이 당연직으로 참여해 발족했다. 우리는 "이제 되었구나, 앞으로 나아지겠구나"라고 안도의 한숨도 쉬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5년, 임기가 한 달 남은 지금까지 우리의 처우는 나아진 것이 없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 중앙행정기관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노동인권 증진을 위한 제도개선 권고안'에 대해 정부는 공무직위원회를 통해 권고안을 논의하겠다고 답변했지만 기재부의 뻗대기와 묵살로 단 한 가지의 권고도 개선되지 않았다. 발족한 지 2년이 넘은 공무직위원회가 한 일이라고는 이미 대법원과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례 및 권고안으로 인정한 '부당한 직무무관 수당 차별'을 적극 부인하며 차별을 합리화하는 것뿐이었다.
공무직위원회를 만들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에 앞장서겠다는 정부의 대대적인 언론 홍보와 각종 계획 수립이 무색하게 실제 기재부가 지난해 8월 25일 국무회의에 제출한 2022년 중앙행정기관 부처별 예산안을 보면, 중앙행정기관 비정규직 노동자의 인건비는 여전히 최저임금으로 산정돼 있다. 그나마도 최저임금에 식대와 출장비 등을 산입해 최저임금 노동자의 실제 임금인상률은 최저임금 5.1%보다 훨씬 낮은 1.4~2.1%대에 불과하다. 정부는 최저임금 인상률이 너무 급격히 올라 예산이 없다고 했지만, 정작 우리 비정규직보다 훨씬 많은 급여를 받는 정규직(공무원) 인건비는 2022년 4%가 올랐다.
정부가 약속한 각종 직무 무관 복지수당(가족수당, 근속수당)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지난 3년간 명절상여금만 총 20만원(기존 40만원 x 2회)이 증액되었을 뿐이다. 이마저도 공무원은 기본급의 60%(연 2회)를 정률로 받는 것에 비하면 매우 적은 액수일뿐더러, 직무급제, 단일임금제 등 자연 호봉상승이 없는 비정규직(공무직) 노동자와 임금인상 및 자연호봉상승이 있는 공무원 임금체계 상의 60%라는 금액을 고려했을 때 명절상여금의 격차는 오히려 더욱 벌어졌다고 할 수 있다.
법제화 문제는 더욱 가관이다. 정부는 공무직을 법제화하려면 노동3권을 포기하라고 한다. 공무원과의 차별 처우는 절대 개선할 수 없다고 하면서 법제화는 공무원과 똑같은 지위가 되어야 하니, 노동3권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날강도도 이런 날강도가 없다.
공무직위원회는 3년 한시적 임시 기구다. 문재인 정권의 임기가 끝나가고, 공무직위원회의 활동 시한도 1년 남짓 남았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던 공무직위원회가 지난 3년간 한 일이라고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을 방해하고 거부해왔다는 것뿐이다. 이 정도면 '공무직위원회'가 아니라 '공무직 처우 개선 저지 위원회'라고 부르는 게 더 적당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달콤한 거짓말도 이제 유통 기한이 지났다.
새로운 윤석열 후보의 당선이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의미로 다가오겠지만 정부에서 일하는 우리들은 새로운 "사장님"의 행보에 막막하기만 하다. 촛불로 당선돼 비정규직 처우 개선하겠다고 5년 내 거짓말 하던 대통령에 이어, 이제 새로 당선된 대통령은 주 120시간 노동이니, 아프리카 노동이니 하는, 21세기가 아니라 12세기라야 믿을 것 같은 거짓말 같은 세상을 만들겠다고 하니 말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우리는 유령이 아니다. 우리는 정부에서 일한다. 올해 2~3월 울진 영덕에서 불이 났을 때 제대로 된 보호장구나 안전장비, 수당도 없이 48시간씩 산을 타며 공짜 노동으로 산불을 끄러 다닌 사람들이다. 국민이 주말에, 야간에 문화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주말도 없이 야간도 없이 박물관에서, 극장에서, 도서관에서, 국악원에서, 휴양림에서, 각종 국립 문화 시설에서 시설을 관리하고 문화재와 유물을 다루며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일하는 사람들이다.
국민이 국가에 궁금한 것이 있어 시청이나, 관공서, 경찰서, 콜센터를 찾았을 때 친절하게 안내하고 설명하고 때로는 민원인들의 폭언과 폭행, 성희롱 등 위협에 노출되면서도 아무런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홍수기와 갈수기에 강과 들에서 홍수와 가뭄이 들지 않게 하기 위해 법적 근거도 없이 전국 수천 개의 제방 등 시설물을 관리-점검하는 사람들이다. 강과 하천의 수질과 수량을 점검하고, 오염으로 인한 농경지 피해, 식수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연구하는 사람들이다. 전국의 국도가 원활히 통행하도록, 과적으로 도로가 파손되지 않도록 야밤에 안전장구도 없이 법적 근거도 없이 오로지 몸 하나로 차량을 단속하고 도로를 점검하는 사람들이다.
학교에서, 지자체 관공서에서, 정부기구에서, 각 부처에서, 경찰서와 소방서, 군부대에서 행정 업무를 하고, 대민 상담과 안내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건물과 시설을 관리-보수하는 사람들이다. 공무원이 아닌 민간인이기에 각종 차별을 받고 정부 수반인 대통령을 사장으로 두고 있음에도 예산편성권도 없는 각 부처 기관장들과 허수아비 교섭을 해야 하고, 기재부의 일방적인 예산 편성으로 헌법과 노동법으로 보장된 교섭권을 침해 받으며, 해가 갈수록 임금이 낮아지고 차별이 심해지는 21세기판 공노비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부지부장(문화체육관광부 국립극장 노동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