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3월 28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왼쪽)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중구 충무로역 3호선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25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함께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지난 3월 28일 장혜영 정의당 의원(왼쪽)과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중구 충무로역 3호선 승강장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25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를 함께한 뒤 인사를 나누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관련사진보기


"장애인들의 절박한 호소를 무시해온 정치인들도 문제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불편을 끼쳐 소수인 그들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장애인들도 문제라고 봐요."

얼마 전 사회적 이슈가 된 장애인 단체의 출근 시간 지하철 시위에 대한 한 고등학생의 평가다. 그는 또래 아이들 대다수의 생각도 비슷할 거라고 장담했다. 언뜻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주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두말할 나위 없는 전형적인 양비론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주장과 빼다 박은 듯 똑같다. 일부 언론에선 그의 주장을 혐오 발언이라고 규정했지만, 아이들은 그가 사과해야 할 만큼 큰 잘못이냐며 되레 두둔하듯 반문한다. 시위의 방법이 구태의연하다며 그래서는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며 훈수까지 한다.

언론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의사를 피력할 수도 있고, 청와대 게시판까지 열려 있는데 굳이 출근 시간 지하철을 멈춰 세운 건 지나치다고 나무랐다. 도심에서 벌어진 노동자들의 시위로 인해 학원 시간에 늦어 화가 났다는 개인의 경험을 들려주기도 했다. 아이들의 시위에 대한 인식은 딱 거기까지였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지만, 그다지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십수 년 동안 오로지 대입을 향해 책과 씨름해온 아이들에게 시위란 그 자체로 낯선 단어다. TV에서 사람들이 비장한 얼굴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삭발하는 모습이 반복되다 보니 거칠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시위라는 단어에 폭력과 폭동을 연결 짓고, 심지어 전쟁을 떠올리는 아이들도 있다. 당장 시위대를 향해 기존의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불만 세력이라고 낙인찍기도 한다. 왜 시위를 벌이는지에 대해 따져보기보다는 그들로 인해 불편해진다는 점만 떠올리며 발끈하는 것이다. 

아이들의 삭막하고 비정한 말 중에 정작 내 귀에 꽂힌 건 따로 있다. '소수 장애인'이라는 두 단어. 그들의 주장이 다수 비장애인의 편익을 위해서 소수 장애인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것처럼 들려서다. 아이들은 여전히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민주주의의 본령인 줄로 안다. 

장애인은 소수라는 생각

오래전 수업 시간에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저상 버스 도입에 대해 토론 수업을 진행해본 적이 있다.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점에 반대하는 아이는 당연히 없었지만, 저상 버스 도입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렸다. 최선의 대안은 아니라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경제적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전가의 보도처럼 내세웠다. 일반 버스와 견줘 차량 가격이 훨씬 비싼 데다, 모든 노선의 버스를 교체한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했다. 소수의 장애인을 위해 다수의 세금을 낭비해서는 곤란하다는 거다.

시간의 낭비를 문제 삼기도 했다. 장애인이 승하차할 때 비장애인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목적지까지 가는 데에 더 오래 걸릴 것이라는 뜻이다. 만약 정류장마다 장애인이 타고 내린다면 시간 단축을 목적으로 신설된 간선 급행 버스가 다 무슨 소용이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당시 그들이 제시한 대안은 '투-트랙'으로 가자는 것이었다. 장애인이 다니는 특수학교가 따로 있듯, 장애인 전용 대중교통 체계를 마련하자는 주장이다. 실제로 장애인 전용 택시가 운행되는 지역은 여럿 있으나 장애인 전용 버스는 없을 뿐더러 도입될 가능성도 없다. 

그들이 장애인 전용 버스를 떠올린 건 특수학교에서 정기적으로 운행하는 노란 통학 버스를 봐서다. 장애인들이 승하차하기 편하도록 설계된 통학 버스를 종일 운행하도록 하면 큰 비용 들이지 않고 그들의 이동권을 보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아이들의 장애인 이동권에 대한 인식 또한 딱 거기까지였다.

아이들 대부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은 시공간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걸 선뜻 떠올리지 못했다. 장애인은 특수학교에 다니고, 특수 설계된 차량을 이용하며, 특수한 직업을 갖게 될 거라고 여긴다. 말하자면, 자신들과는 다른 특수한 사람들이라고 간주하는 셈이다. 

왜 그들이 자신들과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다른 차량에 타며, 다른 직업을 갖는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껏 그래왔으니 당연하게 여기는 거다. 실제로 아이들은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만난 적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TV에서 본 사람들이 전부라는 아이도 있었다.

'투-트랙' 곧, 장애인 전용 대중교통 체계를 마련하자는 건, 그런 그들에게서 나올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었던 셈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들이 숱하게 겪는 불편함과 부당함을 차별로 인식하지도 못한다. 장애인은 소수라는 생각이 아이들의 머릿속에 뿌리박혀 있어서다. 

누구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에도 아이들은 시큰둥하다. 사고 등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전해도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로 여긴다. 교육과정이 개정될 때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통합교육이 강조돼왔지만, 늘 '공자님 말씀'으로 끝났다. 

장애인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곳이라면
 
지난 3월 31일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등 장애인 단체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교육권 완전보장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31일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등 장애인 단체회원들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교육권 완전보장을 요구하는 행진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은 믿기 힘들어했지만, 우리나라에서 100명 중 다섯 명이 장애인이다. 비율로 치면, 출퇴근길 거리를 걷다가 몇 명쯤 만났을 법도 하건만, 길에서 그들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다. 장애인이 소수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섣불리 집 밖으로 나설 수 없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이 이동권 보장을 그토록 갈망하는 이유다.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쉽게 만날 수 없는 곳이라면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만연한 사회라고 해도 무방하다. '왜 선량한 시민들을 볼모로 잡느냐'고 힐난하기 전에, 지금껏 차별을 감내해온 그들의 고통에 공감하는 게 먼저다. 

경제적 효율성 운운하는 아이들의 모진 말투가 서운하긴 해도, 본디 그랬던 건 아닐 테다. 코로나 이전인 서너 해 전 아이들이 이웃한 특수학교를 수시로 오가며 장애인 친구들과 차도 마시고 봉사활동도 하며 살갑게 지냈던 적이 있다. 두 학교의 교장이 교문을 튼 뒤 생겨난 교류다. 

그곳에서 아이들은 공부든 운동이든 배움이 느려도 괜찮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달아갔다. 학교 내 카페에서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장애인 친구들의 솜씨가 조금은 서툴러도 커피 맛은 최고라고 손뼉을 마주치며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렇게 서로 다를 뿐이라는 걸 가슴에 새겼다.

그들은 이미 졸업했고, 코로나로 두 해 가까이 이어진 교류가 끊기면서 다시 삭막해졌다. 당시 특수학교를 오가며 장애인 친구들과 온기를 나눴던 아이들이라면 이동권을 보장하라는 장애인의 시위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아마도 구태의연하다며 조롱하기는커녕 안타까워하며 발을 동동 굴렀을 성싶다. 

일상생활 속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스스럼없이 자주 만나도록 해야 한다. 승강기에서 휠체어 탄 이웃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고, 학교에서 몸이 불편한 친구들과 어울려 공부할 수 있다면, 장애인에 대한 편견도, 통합교육이라는 용어도 눈 녹듯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될 것이다. 새삼 깨닫지만, 만남은 교육에 우선하는 법이다.

13일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대표가 TV토론을 벌일 모양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보장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게 된 점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이게 굳이 토론할 주제인지 의문이다. 둘 중 누구 말이 맞는지 따져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다면, 애초 시위를 벌일 필요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박경석 대표의 '만남' 제안을 이준석 대표가 '교육'의 기회로 여기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본질적인 문제가 자타공인 '토론 장인'의 현란한 말솜씨에 가려 희화화될까 두렵다.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는' 여론의 부박함이 무섭다는 이야기다.

태그:#장애인 이동권 보장,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준석, #저상버스 도입, #통합교육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