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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회사명이 써있는 비석 앞에 현대기아차가 고용한 것으로 추청되는 청년들이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앞. 회사명이 써있는 비석 앞에 현대기아차가 고용한 것으로 추청되는 청년들이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 현수막을 들고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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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앞. 버스에서 내리는데 강렬한 시선이 느껴진다. 20m는 될법한 거리에서 시작된 시선이 내 동선을 따라 움직이며 감시한다. 현대기아차 회사 상호가 적힌 표지석은 천으로 덮여있고, 그 앞에는 소음측정기 한 대와 캠코더 두 대가 놓여있다.

검정색 티셔츠를 입고 '노사함께 고객함께 글로벌 자동차'가 적힌 어깨띠를 두른 남성들의 모습도 보인다. 20~30대 정도로 추측되는 이들이 "국가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촉구" 현수막을 들고 현대기아차 앞에 두 팀으로 나누어 서 있다.

몇 시간을 있어도 여느 집회에서 들을 수 있는 구호나 발언 한 번 들을 수 없다. 연대를 오는 사람도 없고, 자신들이 들고 있는 현수막 내용을 알리려는 의지도 없다. 언론사의 취재도 원치 않는다. 

이런 '수상한 집회'는 3년 전에도 논란이 됐었다. 2019년 KBS는 현대차가 용역을 동원해 '알박기 집회'를 열어 비판 시위를 원천봉쇄한다는 사실을 잠입취재로 확인했다. 보도에 따르면 용역들의 일당은 14만 원이었다. 이런 행위가 불법의 외주화라는 지적에 현대차는 '알박기 집회가 아닌 성숙한 집회문화 정착을 요구하는 합법적인 집회'라고 반박했다("현대차 10년 넘게 '알박기 갑질'…법도 인권도 무시", KBS 뉴스, 2019.01.03.).

필자가 찾은 날에도 눈에 띄는 집회 인원만 10명이 넘는다. 두세 시간마다 교대하는 것을 감안하면 평소 하루 인원이 20명 이상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기아차에서 판매하는 상품에는 이들의 인건비도 포함돼 있을 것이다.

이들이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이곳에 1인시위나 집회를 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의 피켓을 가로막거나 집회를 못하게 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주변을 오가는 시민들을 24시간 감시하고 촬영한다. 몇 대의 CCTV도 설치돼 있다. 누군가 쳐다보거나 사진이라도 찍으려고 하면 욕을 하고 캠코더로 촬영을 한다. '진짜 집회'를 막기 위한 '알박기 집회'의 전형이다. 같은 목적으로 현대기아차가 인도에 설치한 것으로 추정되는 대형 화분들은 보도의 절반가량을 차지해 답답하고 보행에 불편함을 초래하고 있다.

이들은 매일 밤 12시 서초경찰서에 가서 현대기아차 본사 주변 전체에 1순위로 집회신고를 한다. 중복신고가 있는 경우, 먼저 신고한 사람에게 우선권을 주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아래 집시법)을 악용한 것이다. 2018년 대법원이 '알박기 집회'는 보호 가치가 없다는 취지의 판결로 제동을 걸었지만 서초경찰서는 10년 넘게 이어진 이들의 집회신고를 받아준다. 이를 막아달라는 호소가 여러 번이었지만 서초경찰서는 모든 집회를 일대일로 관리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박미희씨도 '알박기 집회' 피해자 중 한 명이다. 
  
현대기아차가 서울 양재동 본사 앞 인도에 설치한 대형 화분들
 현대기아차가 서울 양재동 본사 앞 인도에 설치한 대형 화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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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아만큼은 받아주고 있는 거예요"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 즈그가 행해야 될 걸 즈그가 캠페인을 하고 있어요. 저기 용역들 현수막 들고 있는 자리(현대기아차 본사 오른쪽 하나로마트 양재점 후문 앞) 작년 6월까지 제가 집회하던 자리에요. 이게 뭐하는 건지 나 정말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어요.

전국에서 이런 알박기 집회 하는 곳은 여기 밖에 없을 거예요. 삼성에도 알박기 집회가 폐지됐거든요. 지금은 어느 경찰서든 기업에서 알박기 집회신고 하러 가면 안받아준대요. 그런데 서초경찰서가 현대기아만큼은 받아주고 있는 거예요. 집회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기 때문에 하면 받아준다 이런 거죠."


내가 미희씨를 만나자 용역으로 추정되는 이들이 캠코더를 들고 촬영을 한다. 이곳을 지나는 시민 누구나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우연히 이 길을 지나다가 회사 건물이나 그들을 쳐다보거나 그 앞에 잠시 서있기라도 하면 검정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촬영을 시작한다. 소셜미디어에는 현대기아차 '알박기 집회' 장면을 촬영하다가 물리적인 제재를 당하고 불쾌감을 느꼈다는 시민들의 경험담도 올라온다. 필자도 예외일 수 없다.

"왜 찍어? 왜 찍냐고!!"

필자와 스무 살 이상은 나이 차이가 날 법한 청년 한 명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를 지른다. 한쪽에선 다른 청년이 미희씨와 나를 계속 촬영하고 있는데, 어이가 없다는 말 외에 다른 설명을 하기가 어렵다.

"반말하고 욕하는 건 예사에요. 힘으로 집회 못하게 막고, 내 집회 물품 마음대로 옮겨가지고 다 다 망가뜨려 놓고. 나는 저그 하는 걸 녹음하고 찍을래도 여유가 없어서 하지도 못해요. 서초경찰서는 신고해도 잡아주지도 않고, 집회 1순위라고 용역들만 보호해요. 이게 뭐하는 짓인지 나 정말 이해 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어요."

미희씨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어쩌다 한 번 와서 당한 일도 불쾌하고 화가 나는데, 미희씨는 10년 동안 이곳에서 거의 매일이다시피 "건전한 집회문화 정착을 촉구"한다는 이들의 폭언과 폭력을 당해왔다.

정도판매 회사 지침에 의한 내부고발로 해고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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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희씨는 부산 기아자동차 대리점에서 2002년부터 11년 동안 마스터(자동차 판매노동자)로 일하다 대리점들의 부당판매 내부고발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원직복직과 사과, 해고기간 임금 지급 등을 포함한 정당한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10년 째 투쟁하고 있다.

"IMF 지나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돈은 벌어야 하는데, 자금이 없으니까 사업을 할 수도 없고.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돈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영업밖에 없더라고요. 우연히 신문에서 자동차 영업사원 모집 광고를 봤어요. 내가 영업을 한다면 자동차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미희씨는 지인의 소개로 부산의 한 기아자동차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입사하게 된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힘들었다. 차량마다 다른 옵션들을 익히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처음에 입사해서 5박 6일 교육도 받았지만, 제대로 숙지가 되지 않았다.

"경쟁이 있는 일이다 보니까 다른 사람한테 물어봤다가 자존심도 상하고... 애들을 키워야 하는 상황이라서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버틸 수 있었어요. 3~4년쯤 지나니까 자신이 붙기 시작하더라고요. 나중에는 제가 차를 많이 팔았어요. 누구한테든 어떤 차에 대해서든 다 설명할 수 있게 됐죠."

2005년 무렵, 기아자동차는 '정도판매'를 표명하면서 매월 판매노동자들에게 고객에게 10만 원 이상의 할인이나 용품을 제공하는 부당판매를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케 했다. 본사에서 내려온 정도판매 지침이 기재된 스티커를 대리점에 부착하기도 했다.

"본사에서 내려온 지침이니까 우린 당연히 지켜야 된다고 생각했죠. 대리점 영업사원으로 차를 판다고 생각했지, 우리가 실제 사업자 이런 거 아니었어요. 출근해도 되고 안 해도 되고, 이런 것도 없어요. 8시 반까지 출근해서 기아차에서 내려온 체조 음악에 맞춰 체조를 하고 빔프로젝터로 본사에서 하는 교육을 받아요. 자동차 상품이나 CS 교육 같은 걸 받았는데, 정도판매에 대한 내용도 있었어요."

돌아가면서 당직 근무도 했고. 여름휴가도 본사 휴가에 맞춰서 썼다. 남성 노동자들은 본사에서 내려온 복장 지침도 따랐다. 미희씨는 고객들에게 '기아자동차 □□대리점 차장 박미희'가 적힌 명함을 줬고, 고객들은 당연히 미희씨를 기아차 직원이라고 생각하고 차를 구매했다. 모든 업무가 본사의 지시를 통해 이뤄졌고, 교육 역시 본사에서 진행을 했다. 기아자동차 판매노동자들에게 본사의 정도판매 지침을 따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업무가 익숙해질 때쯤, 판매노동자들이 어렵게 차를 판매해도 정당하게 받아야 할 수당을 받을 수 없는 판매구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대리점 소장들이 자신들의 인센티브를 위해 판매시장을 어지럽히고 있었던 것이다. 소장들은 회사 교육을 받지 않은 영업 코드가 없는 외부인들에게 차를 과다 할인해주며 팔게 하고, 이들에게 영업사원과 똑같은 수당을 지급했다. 영업 사원들은 판매실적 압박 속에 어쩔 수 없이 과다할인을 하게 되고, 판매 수당은 계속 줄어들어만 갔다.

"다들 너무 힘들어 했어요. 근데 회사에서는 계속 '정도판매를 해라. 할인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계속하는 거예요. 소장한테는 직접 이야기해봐야 해결될 것 같지 않고, 평소에 정도판매를 강조하던 임원에게 면담 요청을 해서 바로잡아 달라고 했어요."

해당 임원 모든 정황을 다 알고 있었지만 시정조치를 하지 않았다. 대리점 직원 상조회에서 이 문제를 공유하고, 미희씨를 포함한 세 명의 노동자가 본사 내부고발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결국 남은 사람은 미희씨 혼자였다.

2013년 4월 말 미희씨는 또 다른 임원에게 전화를 해서 부당판매 상황과 이로 인한 노동자들의 생활고를 전하며 문제해결을 호소했다. 그는 잘 처리하기 위해서라며 대리점과 제보자의 이름을 물었다. 익명 제보를 원했던 미희씨는 그의 말을 믿고 이를 알려줬다. 그리고 한 달 후인 2013년 5월 31일 금요일, 미희씨는 소장으로부터 "월요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해고통보를 받았다. 내부고발과 관련한 처리에 대해서는 들은 것도 해결된 것도 없었다.

미희씨는 해고 직후, 해당 임원 밑에서 근무하는 부장으로부터 "내부고발 보복성 해고를 인정한다. 9월 중순까지만 기다려 달라. 책임지고 해결하겠다"는 말을 듣고 석 달을 기다렸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미희씨는 현대기아차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기로 결심한다. (다음 기사에서 계속됩니다)
 
기아자동차 부당판매 내부고발로 해고되어 10년째 투쟁하고 있는 박미희 씨
 기아자동차 부당판매 내부고발로 해고되어 10년째 투쟁하고 있는 박미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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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민중언론 참세상>에 중복게재 됩니다.


태그:#기아차 박미희, #기아차 해고, #현대차 알박기집회, #현대기아차 알박기집회, #박미희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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