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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라면 야간자율학습 때 절반 가까이 남았을 텐데, 언제부턴가 시험 기간에는 학원 가느라 교실이 텅텅 빈다. 족집게 과외를 받기 위해서란다.
 여느 때라면 야간자율학습 때 절반 가까이 남았을 텐데, 언제부턴가 시험 기간에는 학원 가느라 교실이 텅텅 빈다. 족집게 과외를 받기 위해서란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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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학교 시험이 가까워질수록 야간자율학습(야자)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숫자가 크게 줄어든다. 기말고사 전날이었던 엊그제는 아이들 서너 명이 오붓하게 둘러앉아 공부하는 교실이 대부분이었다. 감독 교사로서 출결 상황을 확인하고 말 것도 없었다. 

모두 학원에 갔기 때문이다. 평소엔 방과 후 수업과 야자가 없는 수요일과 주말을 이용해 학원에 다니지만, 시험을 앞두고는 거의 매일 가야 한다고 아우성친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학원 선생님이 핵심 내용을 정리해주고 시험에 나올 만한 문제를 찍어 준다"고 대답한다. 

시험 기간에는 단과반도 종합반이 되는 모양이다. 수학 학원에서 영어 예상 문제를 찍어주고, 국어 학원에서 과학 예상 문제를 알려준다니 말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익숙해진 일상인 데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어느 학원이 더 '족집게'였는지 친구들끼리 화제가 되기도 한단다.

듣자니까, 학원마다 인근 학교의 학년별·교과별 시험 문제를 데이터베이스화해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출제 교사의 성향까지 꼼꼼하게 파악해 학원 수강생에게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 정보의 양과 정확성이 학원 영업의 성패를 결정짓는 비결이라고들 한다. 

단위 학교에서도 나름의 대응 방안을 마련하곤 있지만, 실효성에는 다들 반신반의하고 있다. 예컨대 시중 문제집에서 베껴내지 말고, 최근 몇 년 동안 냈던 문제를 재출제하는 걸 금지한다는 등의 세부 지침이 내려져 있다. 더욱이 출제 원안은 교육청에서도 점검하고 있다. 

하지만 교과 고유의 출제 유형까지 달라지긴 힘들다. 국어와 영어라면 교과서 밖에서 지문을 가져올 수 없으니 그렇고, 수학이라면 숫자를 바꾸는 정도에 그칠 수밖에 없다. 내 과목인 한국사의 경우 3~4년쯤 시험을 치르고 나면 새롭게 출제할 만한 내용이 남아 있지 않다.

빈틈 노리는 '족집게' 학원들

그 빈틈을 노리는 게 학원들의 생존 전략이다. 이른바 '족집게' 학원들은 인근 학교의 시험 출제 유형을 손금 보듯 훤히 꿰고 있다. 심지어 버젓이 학교 이름을 내건 시험 형식의 예상 문제가 학원 숙제로 제시된다. 믿거나 말거나일 테지만, 예상 적중률까지 표기한 경우마저 있다.

단기간에 성적을 끌어올려야 하는 학원의 처지를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들에게 성적은 '고객'을 유지하고 유치하는 데 절대적이고도 유일한 홍보 수단이다. 수능 성적이 발표되거나, 하다못해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끝난 뒤 건물 벽에 '경축 현수막'을 내거는 것도 그래서다. 

선다형 문제 위주의 시험에서 성적 향상을 위한 왕도는 오로지 기출문제 풀이의 반복뿐이다.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역량을 판별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수능 준비도 반복적 문제 풀이만 한 게 없다. 재수생의 수능 성적이 재학생의 그것을 압도하는 현실이 이를 방증한다.

과문한 탓인지 문제풀이 아닌 수업을 진행한다는 학원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다. 선행학습이든, 복습이든, 모든 학원 수업은 예외 없이 문제 풀이로 시작해 문제 풀이로 끝난다고 했다. 한 아이는 수능형 오지선다형 문제를 처음 만난 게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유치원 때라고 기억했다.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여섯 가지 핵심 역량 중 첫 번째가 '자기 관리 역량'이다. 스스로 진로를 탐색하고 자기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능력을 아우르는 개념이다. 이러한 역량이 갖춰진 후라야 '지식정보 처리 역량'과 '창의적 사고 역량' 등 나머지 역량이 길러질 수 있다.

어릴 적부터 학원에 의존하며 시험 문제 풀이에만 길들어진 아이들에게 '자기 관리 역량'을 기대하는 건 연목구어나 마찬가지다. 요즘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새삼 깨닫게 되는 건, 성적과 자기 주도적 학습 능력이 정비례하는 건 아니란 사실이다. 불안에 떨며 맹목적으로 공부하는 '모범생'들이 너무나 많다는 이야기다. 

"성적은 그럭저럭 나오긴 하는데, 솔직히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한 아이가 공부가 재미없다며 건넨 하소연이다. 명문대 진학을 목표로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공부할 뿐, 다른 이유는 없다고 체념하듯 말했다. '고1 때 성적이 고3 때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명문대 진학은 고1 때 이미 결정된다'는 말을 중학교 때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단다. 

대학만 가면, 대학만 가면... 그러면 다 끝날까
 
학년 교무실 벽면에 붙여놓은 글귀 아래로 수험서가 가득 꽂혀있다. 한 아이가 '학생은 문제집 푸는 기계'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며 조롱하듯 말했다.
 학년 교무실 벽면에 붙여놓은 글귀 아래로 수험서가 가득 꽂혀있다. 한 아이가 "학생은 문제집 푸는 기계"라고 바꿔 불러야 한다며 조롱하듯 말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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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명문대는 '인생의 종착역'이었다. 진학 이후의 삶은 일단 합격하고 난 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단 한 번도 명문대 합격 외에 다른 대답을 떠올려본 적이 없다고 선선히 말했다. 이 땅의 고등학생들에게 '먼 꿈'은 대입이고, '가까운 꿈'은 내신 성적이다.

하도 자주 들어온 이야기라 그의 고민이 새삼스럽진 않다. 그때마다 거의 반사적으로 건네는 나만의 '모범 답안'이 있다. 초임 시절인 20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대답이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내 답변을 듣고 난 뒤 아이들의 반응이 사뭇 달라졌다는 점이다.

"공부하는 요령이 고민되거든, 짬 날 때마다 도서관에 가라. 눈길 가는 대로 책을 꺼내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라. 그리고 정기적으로 운동하며 땀을 흘려라. 독서를 통한 간접 경험은 분명 동기부여로 이어질 테고, 공부가 재미있어질 때쯤이면 정작 체력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서둘지 말되, 멈추지도 마라."

요즘 아이들 대부분은 이를 '공자님 말씀'으로 치부한다. 하나같이 독서와 운동이 좋다는 건 알지만, 일상에서 그럴 여유가 없다고 대꾸한다. 시간이 없는 이유는 전가의 보도처럼 학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학원에 가야 하므로 도서관에 갈 수도, 운동을 할 수도 없다는 거다. 

그들은 과목별로 효과적인 공부법이 따로 있는 줄 안다. '찍는 것도 실력'인 양 여기며 '수능 30일 완성' 따위의 수험서 제목에 현혹되기 일쑤다. 요즘 아이들은 '우직하게 공부한다'는 걸 '바보처럼 시간을 낭비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그들에게 요령과 편법은 나쁜 의미가 아니다.

아이들 대부분이 학원에 다니다 보니, 숫제 아이들의 일상이 주야로 나뉘어 학교와 학원으로 '이원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아침부터 오후 4시 반까지는 학교가, 이후 밤 10시까지는 학원이 교육을 담당하는 걸 당연시한다. 이어 자정 무렵까지는 '스터디 카페'라는 이름의 '제3의 교육 기관'이 그 틈새를 공략하고 있는 모양새다. 

학부모들도 아이가 학교를 함부로 그만둘 수 없듯이 학원 역시 쉽게 포기하지 못한다. 학원 끊는 것을 두고 공부를 포기하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주변에 적지 않다. 아이가 나이가 차면 상급학교에 진학하듯, 학교에 다니면 으레 학원도 동시에 다녀야 하는 걸로 알고 있다.

한 교사가 받은 '발신자 표시제한' 전화... "한 번만 더 이러면 민원 제기"

그러다 학교와 학원 사이의 오랜 '관행'이 금이 갈 때, 종종 사달이 벌어지기도 한다. 며칠 전 한 동료 교사가 학급의 몇몇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신청하도록 종용한 일이 있었다. 아직 중학교 티를 벗지 못한 채 천방지축인 그들을 고등학교의 일상에 적응시키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으리라. 

그는 따로 학부모들에게도 일일이 전화를 걸어 그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들려주고 의도를 전하며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그들 중 일부는 자녀를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은 연신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교무실로 이와 관련된 민원 전화가 빗발쳤다. 

이들은 다짜고짜 왜 아이들에게 방과 후 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반강제적으로 시키느냐고 성토했다. 담임교사와 전날 직접 통화를 한 학부모라면 교무실로 항의 전화를 걸었을 리 만무할 테니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스스로 학부모라고 밝혔지만, 전화기엔 '발신자 표시 제한'이 찍혀있었다. 

"방과 후엔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반복되면, 교육청에 정식으로 민원을 제기할 겁니다."

항의 전화의 마지막은 늘 이렇듯 '으름장'으로 끝난다. 발신자가 학부모였는지 학원 관계자인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 동료 교사는 사죄한 뒤 아이들을 돌려보내야만 했다. 정규 수업이 마무리되면 학교의 역할은 그걸로 끝난다는 사실에 열정과 의욕이 꺾이더라고 그는 푸념했다. 

사달이 난 이후라 그런지 교실은 더더욱 썰렁해졌다. 전국의 신임 교육감마다 이구동성으로 내건 슬로건이 있다. '단 한 명의 아이들도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그러자면 당장 학교보다는 학원의 협조를 구해야 할지 모른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고작 서너 명이 앉아있는 교실과는 달리, 이 밤중 학원의 강의실은 불야성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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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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