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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임을 시작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지역에서 가장 큰 맘카페에 인원 모집글을 올렸는데 1분 만에 빛삭당했다. 순간 너무 당황했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거절당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고 운영진에게 쪽지를 보내니 금방 답변이 왔다. 인원 모집글을 올리면 안 된단다. 돈을 받고 하는 강의가 아닌 자발적 시민모임인데도 말이다. (여담으로, 이 일을 겪고 바로 지역 평생교육원에 정책 제안서를 올렸다. 자발적 시민모임을 열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어 달라고. 모름지기 평생교육은 자발적 시민모임으로 꽃피울 수 있다고 믿는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활동 정지까지 먹었다. 처음에 글이 삭제되자, 시스템 오류로 착각하고 계속해서 글을 올리려 시도했기 때문이었다. 규모가 큰 지역 맘카페는 사실 사업체나 다름없다. 사업자등록증을 가지고 이런저런 업체의 후원을 받거나 이벤트를 진행한다는 걸 모르는 건 아니었는데, 평범한 지역주민의 순수한 열정을 이렇게까지 칼같이 잘라낼 줄은 미처 생각 못했다.

놀라운 사실은 그 1분의 찰나에 두 명이나 연락을 해왔다는 것이다. 나중에 들으니, 사람들한테 메시지가 너무 많이 와서 내가 스스로 글을 내렸다고 생각했단다. 그만큼 엄마들의 관심이 높았다. 희망이 보이자, 나는 대담해졌다. 다른 지역 맘 카페에 바로 또 글을 올렸다. 지울 테면 지워봐라. 아파트 단지마다 돌아다니며 전단지라도 붙일 테니까.

5명이 모였다
 
처음 인원 모집할 때 맘카페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 맘 카페에 올린 모임 관련 글  처음 인원 모집할 때 맘카페에 올린 글의 일부입니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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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사이 10명이 넘는 사람들의 연락을 받았다. 주말에 모임을 하기 원했던 워킹맘들과 온라인으로 진행할 수 없는지 문의해왔던 가정보육맘들을 제외하고 최종적으로 모인 사람은 다섯이었다.

모임 하기 딱 좋은 인원은 예로부터 다섯 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서둘러 단톡방을 개설했다. 모임 인원이 정해지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공부할 책을 정하고 모임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모임 장소는 우리 단지 내 작은 도서관, 모임 시간은 평일 10~12시까지.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커피 한잔 사들고 오면 딱 좋은 시간이었다.

발제는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는데, 첫 타자는 내가 맡았다. 다들 얼마나 그림책에 대해 알고 있는지 파악이 안 되는 상황이었고, 무엇보다 첫 모임이라 부담스러워  할 수 있으니 내가 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모임을 시작하기 전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정했다. 첫째, 이름을 부를 것. 우리는 언젠가부터 이름을 잃어버리고 OO맘, OO 엄마로 살고 있다. 사회에 막 발을 떼고 처음 누구누구 씨라고 불리던 때만큼 OO 엄마란 호칭은 낯선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 이 모임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참여하는지, 각자가 원하는 바는 모두 다르겠지만 우선은 나를 위한 모임임을 잊지 말았으면 했다.

둘째는 당연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공부할 책은 꼭 읽어오자. 참여자가 책을 다 읽어왔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모임 분위기는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모두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참여하는데, 그 시간만큼은 알차게 배워가는 게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셋째는 성실하게 참여하되, 아이가 아플 때는 미안해하지 말고 빠져도 된다. 어쨌거나 돌봐야 할 가정이 먼저니까.

이 세 가지 원칙에 '나름대로'라는 딱지를 붙인 건 모임 참여자들에게 "원칙입니다. 다들 꼭 지키세요"라고 대놓고 이야기한 게 아니라, 에둘러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글로 정리하고 보니 모임 때 함께 공유하고 규칙을 정해도 좋겠다 싶다.

사실 돈을 내고 듣는 강의나 학점을 따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서, 거창하게 원칙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게 조금 쑥스럽기도 했다. 운영자로서 어떤 것을 논의하고 어떤 것을 강제해야 하는지 아직은 가늠이 잘 안 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것 역시 차차 깨닫게 되겠지.

그림책 모임, 시작합니다
 
발제 준비하면서 살펴본 이론서들입니다.
▲ 첫 모임 발제를 준비하며 살펴본 이론서들 발제 준비하면서 살펴본 이론서들입니다.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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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해봐. 재미있게.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첫 모임을 하루 앞둔 날, 늦게까지 발제 준비를 하고 있으니 남편이 슬며시 와 살펴본다. 모처럼 아내가 열정을 가지고 뭔가를 하고 있으니 궁금했나 보다.

"모임 끝나고 같이 브런치라도 하지 그래, 내가 카드 줄게."
"그놈의 브런치. 아 됐어. 어디 브런치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


남편은 지난번부터 계속 브런치 타령이다. 내가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길 바라는 마음이겠지. 겉으로는 퉁퉁댔지만, 속으로는 고마웠다. 같이 살고 있는 남자가, 마누라가 돈 안 되는 일 한다며 타박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감사했다.

순탄하기만 한 과정은 아니었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보니 신기했다. 이게 될까? 싶었는데 이게 됐다. 아니 생각해보니 이정도면 수월하게 된 편에 가까웠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제 개인 브런치에도 같은 내용으로 계속 연재하려고 합니다.


태그:#시민모임, #그림책, #맘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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