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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 "생명학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나가야"
▲ 김지하 "생명학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나가야" 김지하 "생명학을 적극적으로 설명해 나가야"
ⓒ (사)생명과평화의 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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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에 즈음하여, 20대 초반부터 쓰고 본명(김영일) 보다 필명으로 더 많이 알려진 '김지하' 대신 새 아호 노겸(勞謙)을 사용키로 했다. 역사상 저명 인물들은 본명보다 호가 더 많이 알려진다. 퇴계ㆍ율곡ㆍ다산ㆍ매천ㆍ단재ㆍ도산ㆍ심산ㆍ약산 등이다.

20대 초반 학생시절에 여름 한낮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길바닥의 입간판 위쪽에 쓰인 작고 검은 글씨의 '지하'라는 한글 글자를 보고 문득 붙이기 시작한 필명(筆名) '김지하'는 분명 '지하'(地下)의 뜻입니다. 지금의 한자 '지하(芝河)'는 국내외 신문기자들이 기사를 쓰다가 적당히 붙여 준 것입니다.

'지초의 강물'이란 뜻을 가진 향기로운 문사(文士)의 이름이고 30년이 넘게 널리 쓰여 익숙한 이름인데 그냥 쓰지 뭘 그러느냐는 사람들이 많은 줄 압니다. 또 반대로 어떤 사람은, 왈 "그게 이름이야? 감옥에 서너 번은 더 갔다오게 생겼구먼!" 이럽니다. 하긴 이 '지하'라는 이름을 쓴 뒤로 저의 삶은 내내 감옥, 정보부 지하실, 경찰서 유치장과 취조실, 싸구려 지하 술집, 컴컴한  뒷골목, 허름한 삼류여관, 남의 집 비좁은 문칸방이나 뿌우연 형광등 속의 병원 침대를 면치 못하였으니 과연 이름이란 무서운 것입니다. 심지어 어느 외신 기자는 만나자마자 대뜸 가로대 "헬로! 미스터 언더그라운드 킴!" 이랬지요. 허허허.

제 이름으로는 국제적으로는 '언더그라운드 킴'인 겁니다. 이 이름의 저주를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요? (주석 8)

'지초의 강물'이란 향기로운 이름으로 살아온 30여 년의 현실적인 삶은 그 정반대의 '언더그라운드'의 고난이었다는 술회이다. 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고 유명해진 김지하 대신 새 호를 짓고 그리 불려주길 원한다.

연초에 제 방 한 귀퉁이에 무료하게 앉아 있을 때 문득 자호(自號) 두 글자가 뇌리에 떠올랐으니, 왈 '노겸'(勞謙)!
'근로와 겸손'입니다.
'영일'(英一)을 꽃피우려면 '노겸'(勞謙)해야만 한다는 뜻인 듯 합니다. 이제와 솔직히 말씀드리는데 이 '노겸' 두 글자가 없으면 저는 시체라 할 정도로 이 두 글자에 의지해 겨우겨우 나날을 견디는 게 요즈음의 저의 삶입니다. 해서 부탁인데요, 이름인 '영일'보다 도리어 호인 '노겸'에 성을 붙여 그저 한글로 '김노겸'이라 불러주었으면 합니다. '일하는 겸손'이요, '겸손한 노동자'이겠지만, 결국, '활동하는 무(無)'이고 '창조적인 자유(自由)'도 됩니다. 여러 벗들이 원하는 바가 그것인데 '김노겸'이란 말의 울림이 퍽 친근하고 겸손, 솔직하며, 무던하고 촌티가 나서 좋다는 것이고, 또 이름의 덕(德)은 그렇게 자주 불러 주어야 생긴다 하니 바로 그것을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지하', '영일', '노겸', '김노겸'. 이 네 가지로 간단히 제 자신에 관한 검토를 해 보았습니다.

'지하'가 이제까지의 저의 고통과 어둠과 오류와 부덕의 상징이라면, '영일'은 제가 돌아갈 생명의 자리, 제 삶의 작고 자연스럽고 소박한 목표가 되며, '노겸'은 그것을 위한 저의 피나는 노력과 애쓰는 마음 속의 텅 빈 겸허를 말함이요. '김노겸'은 이제 참으로 제가 살아갈 새 삶의 이미지 자체인 것입니다. (주석 9)

공자의 정명사상(正名思想)은 익히 알려진 대로이다. 인간의 운명이나 행위는 이름보다 의지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가 '김노겸'으로 불러주길 당부했으나 사람들은 생전ㆍ사후에 여전히 '김지하'라 부르고 쓴다.


주석
8> <옛 가야에서 띄우는 겨울 팬지>, 15~16쪽, 두레, 2000.
9> 앞의 책, 17~18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시인 김지하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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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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