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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15일, 한 명의 여성이 남성에 의해 성폭력 피해를 입고 대학교 건물에서 추락해 목숨을 잃었다.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에 의해서 죽어나간다. 한국여성의전화 등 민간 통계에 따르면 2021년 남편, 애인 등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이 97명이다. 살인미수까지 포함하면 285명에 이른다. 언론에 보도된 사건들 중심으로만 통계화한 것이니 현실 속 여성 살해 사건은 더욱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살해 이외의 다른 유형의 폭력까지 생각해 보면 수많은 여성들이 젠더 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젠더 폭력은 많은 이들을 폭력에 둔감해지게 만들었다.

왜 죽어야만 했을까. 매일매일 새로운 여성의 죽음과 고통을 기사로 접하며 처음에는 들끓어 오르는 분노를 바탕으로 목소리를 냈지만 이러한 목소리는 묵살당해왔다.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젠더 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지적하더라도 오히려 이를 무작정 비난하는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목소리를 낼 힘을 잃어버렸다.

젠더 폭력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에 사건의 원인 파악과 대책 마련의 과정에서 여성들은 또다시 고통받게 된다. 폭력의 원인과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며 피해자인 여성을 비난하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거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개인의 문제로 여김으로써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한 젠더 폭력의 본질을 외면하게 만들곤 한다.

이러한 왜곡 자체가, 이제는 온 사회가 익숙해져버린 여성 혐오다. 왜곡의 굴레가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이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회의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발생한 구조적 폭력 현상인 젠더 폭력이 단순히 개인 간에 발생한 폭력 또는 불운에 의해 벌어진 하나의 비극으로만 치부되어 보도된다는 점이다.

이번 인하대에서 벌어진 성폭행 사망사건도 역시 일각에선 '대학 내의 무분별한 음주문화'가 문제인 것처럼 보도되었다. 결국 이는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키며 그 원인을 불평등한 젠더 권력이 아닌 보편적인 안전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경향까지 나타났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워딩을 이용한 비윤리적인 보도 또한 문제의식을 희석시킨다. 이러한 보도 행태는 사회에 만연한 젠더 폭력의 공론화를 막게 되고 젠더 폭력을 젠더 폭력이라고 부르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

인터넷 커뮤니티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미 자정능력을 잃은 온라인 대학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서는 "사건은 안타깝지만 이게 왜 젠더 문제냐"라는 이야기로 최소한의 문제 제기조차 막아버리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이는 CCTV 증설, 순찰 강화 등 수박 겉핥기식의 대책만 내놓는 결과를 불러온다.

결국 개인의 올바른 성인식 확립이 중요하다. 우리에게는 성평등이 필요하다. 우리가 주인공인 일상에서의 성평등을 확립해야 한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법을 만들거나 개정하고, 형량을 높이고, 언론의 보도 윤리 강령을 다듬고, 온라인 혐오 표현을 제재하는 대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법을 집행하는 법조인의, 보도자료를 작성하는 기자의, 인터넷 커뮤니티를 활용하는 시민의 인식이 변하지 않는 이상 대안은 실현되지 못한다.

젠더 폭력은 '단순 해프닝'이 아니다. 반복되는 폭력의 양상이 존재함에도 언제까지 그것이 사회적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며 현실을 외면할 것인지 궁금하다.

젠더 폭력을 젠더 폭력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여성이어서 죽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또 다른 젠더 폭력이 발생하며 이는 과거의 다른 사건들과 별개로 존재하다 소멸한다. 기존의 차별적인 질서는 재생산될 것이며 우리가 이러한 폭력에 둔감해진 틈을 타 젠더 폭력은 더 늘어날 것이다.

여전히 우리나라에는 페미사이드와 관련된 정확한 정부 통계가 없다. 사건을 당장 막는 것에 급급하기 보다는 사후에 이 사건을 어떻게 기록하고 이야기하는지에 대해서부터 바꿔나가야 한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이 논쟁을 끝낼 때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혜원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립니다.


태그:#인하대 성폭행 사망사건, #젠더 폭력, #성인식, #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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