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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서 비슷한 취미를 가진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전시회도, 뮤지컬도 고향에선 하지 않았다. 넌지시 물어봐도 취향이 아닌 일에 몇 시간을 들여 서울까지 가려고 하는 친구는 없어 권유하기가 멋쩍었다. 취미를 함께할 사람을 찾고자 고민 끝에 시작한 SNS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좋아하는 뮤지컬 작품을 논하던 중 아직 이 작품을 보지 못해 어떤 내용일지 궁금하다는 댓글을 받으면 같이 보러 가자고 답하곤 했는데, 가끔 "내가 지방에 살아서…."라는 대답을 들으면 어쩔 수 없이 미안해지곤 했다.

'지킬 앤 하이드'나 '레베카'처럼 대형 제작사가 만드는 유명작은 짧은 기간일지언정 전국 각지를 돌며 공연하기도 한다. 자본과 수요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영세한 소극장의 공연들은 그러기 쉽지 않다. 기껏해야 한두 군데, 그나마도 가지 않는 일이 빈번하다. 지방민에게는 서울에 가야만 향유할 수 있는 작품이 되는 셈이다.

지갑 사정에 여유가 있을 땐 "올라오기만 하면 까짓 표는 내가 사 줄게" 하고 호기도 부려 보지만 선뜻 수락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남에게 신세 지는 일도 그렇겠거니와 푯값이 해결된다고 교통비, 일정, 숙소 등의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 지방에 산다는 이유로 비싸게는 십오만 원, 적게는 삼사만 원 하는 푯값만큼의, 혹은 그 이상의 금액으로 돈길을 만들어 행차해야만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두고 평등하며 공정하다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사실 문화예술에 대한 격차만을 논할 수 있다면 사정이 좋은 편일지도 모른다. 지방에서는 인근에 병원이 없어 치료에 필요한 골든타임을 놓치거나 병을 키우는 사례도 빈번히 발생한다. 서울 집값이 내려간다는 이유로 소각장, 송전탑, 원전 등을 지방으로 보낸 탓에 해당 지역 주민들은 고통을 받거나, 심하게는 목숨이 위험해지기도 한다. 충청남도의 경우 수도권에 전력을 보내고자 세운 석탄화력발전소로 인해 40년 이상 유해 배출가스, 대기 및 토양오염, 초고압 송전탑 등으로 피해를 겪고 있다. 고리, 월성, 울진, 영광, 고창 등 원전 주변 거주민들의 방사능 피폭 피해에 대한 증언 역시 그렇다.

이런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서 충분히 이해받고 있을까. 경북 월성원자력 인근 주민으로 구성된 '월성원전인접지역이주대책위원회'는 2014년 8월 25일부터 지금까지도 천막농성을 진행하고 있다. 한 번쯤 생각해 볼 필요성은 있을 것이다. 과연 이것이 수도권의 문제였어도 해결까지 가는 일이 이처럼 지지부진했을까.

2021년 기준 수도권 인구는 전국 인구의 50.4%에 해당하는 2605만 명으로 집계되었다. 국민의 절반이 수도권에 살고 있으니 다수의 사고관과 재난 보도 역시 수도권에 집중되곤 한다. 태풍 힌남노는 지난 6일 오전 5시경 경남 통영 부근 해안에 상륙해 제주와 영남 지역에 정전, 침수, 수질 오염 등의 피해를 입혔다. 그러나 태풍이 물러간 후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는 "별일 아니었다", "기상청이 거짓말을 했다"는 반응이 다수 올라왔다. 이는 지방의 피해가 수도권 중심적 사고에 의하여 어떻게 축소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다.

서울 중심의 경제 발전, 문화시설, 사회 및 정치의 방향성을 비꼬아 만든 '서울공화국'이라는 단어가 대한민국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그러나 이 단어는 언제까지고 묵인해서는 안 될,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다. 우리가 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곳에도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지방에는 분명히 수도권보다 적은 인구가 산다. 그러나 이것은 지방민이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소외되어야 할 이유가 되진 않는다.

지방 곳곳에 각종 인프라를 설치하고 보도의 초점을 맞추는 일은 단연 정부와 언론의 몫이겠으나, 내가 사는 곳이 전부가 아님을 인지하고 다른 지역에 사는 이들을 이해하며 배려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실천해야 할 몫일 것이다. 그러니 일단은 바깥의 삶을 기억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어떨까. 서울 바깥에도 삶은 있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여전히, 아주 당연하게도.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이서하님은 인권연대 회원 칼럼니스트입니다. 이 글은 인권연대 사람소리 웹진에도 실립니다.


태그:#서울공화국, #지방분권, #배려,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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