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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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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교사의 업무 중엔 난감한 게 하나 있다. 바로 장학금 수혜 대상자를 선정하는 일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를 돕고 싶다는 독지가와 기관의 선의가 한없이 고맙고 반가우면서도 대상자를 찾기란 교사로서 무척 번거롭고 때론 얄궂기까지 하다.

물론, 아주 간단하게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가정과 차상위 계층을 파악해 순서를 정하면 된다. 관련 증빙 자료는 지방정부와 일선 학교가 공유하고 있다. 다만, 애초 그렇게 할 거였으면 담임교사에게 협조 요청을 할 필요가 없다.

장학금의 취지를 살리려면 가정 형편이 어려우면서도 학교생활에 충실한 아이를 찾아야 한다. 장학금이 값지게 쓰일 수 있도록 둘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해선 안 된다.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으려니 수혜 대상자 선정이 힘들 수밖에 없는 거다.

그나마 최근 들어 기준이 '느슨해져' 학교로선 한숨 돌리게 됐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기부자가 정한 기준이 워낙 엄격해 신청서를 제출하지조차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액수가 클수록 '오르지도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말라'는 식으로 입맛만 다실 뿐이었다.

요즘엔 학교에 일임하는 분위기다. 과거엔 가정 형편보다 성적을 우선 삼았는데, 지금은 확연히 달라졌다. 학교마다 성적을 기준으로 장학금을 주던 관행은 거의 사라졌다.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성적이 정비례하는 현실이 학교의 인식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실제로 부잣집 아이에게 장학금이란 용돈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그렇다고 그들의 학업에 동기 부여가 되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장학금이 그들에게 돌아갈수록 배움을 북돋운다는 장학의 의미가 무색해진다는 데엔 교사들 대부분이 동의한다.

교실에서 가난은 금기어가 됐다

엊그제 한 기관으로부터 꽤 큰 액수의 장학금이 도착했다. 담임교사들끼리 모여 너무 많지도 적지도 않게 배분한 뒤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기로 정했다. 역시 기준은 전가의 보도처럼 가정 형편과 학교생활의 충실도다.

아이들의 학교생활이야 한 학기 넘게 부대꼈으니 손금 보듯 환한데, 문제는 가정 형편에 대한 정보다. 그들과의 상담일지만 가지고는 가정 형편을 당최 파악해낼 수 없다. 학기 초 학부모들과도 상담했지만, 죄다 아이의 성적 이야기뿐이어서 물어볼 짬도 없었다.

언론에선 온통 고물가와 내수 부진, 고환율 등으로 가정 경제가 휘청이고 있다는 뉴스뿐인데, 반 아이들의 가정은 무풍지대인 양 평온하기만 하다. 분명 경제난에 직격탄을 맞은 가정이 있을 텐데도 도무지 고통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교실에서 가난은 금기어가 됐다.

집이 자가인지 전세나 월세인지, 평수는 얼마인지, 또 부모님의 직업이 무엇인지 정도만 알아도 대강 짐작은 할 수 있는데, 알아내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 학생의 경제 사정을 알아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래 봐야 피상적인 정보일 뿐이다.

아이들과 상담할 때 부모님의 직업을 묻는 건 무척이나 조심스럽다. 교사나 공무원인 경우는 스스럼없는데, 나머지는 대부분 자영업자라거나 회사에 다닌다는 식으로 얼버무리기 일쑤다. 더 캐물으면 굳이 대답해야 하느냐며 불쾌해하는 아이도 더러 있다.

예전 같으면 부모님 직업은 물론, 학력과 거주하는 주택의 소유 여부와 면적까지도 기록하는 가정환경조사서란 게 있었지만, 지금 그랬다간 법적으로 문제가 될 수도 있다. 곧, 아이든 학부모든 스스로 말하지 않으면 알 길이 없다. 베테랑 담임교사의 '내공'에도 한계가 있다.

"솔직히 가난하다는 이유로 우리 아이를 주눅 들게 하고 싶진 않아요."

전화 상담 도중 한 학부모가 건넨 이야기다. 학교에서 경제적인 도움을 준다면 감사할 따름이지만, 아이가 절대로 모르게 해달라며 이렇게 신신당부했다. 그는 아무리 형편이 쪼들려도 아이 앞에선 힘든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입고 신고 쓰는 물건들을 봐서는 가정 형편을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수십만 원짜리 신발을 신고 백만 원도 훌쩍 넘는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기초생활수급자 가정 아이가 드물지 않다. 훔친 게 아니라면 그들의 부모가 사준 것일 테다. 주눅 들게 하지 않으려는 부모의 바람으로만 설명되긴 힘들다.

그러다 보니, 교사들조차 기초생활수급자 가정과 차상위 계층의 증빙 서류를 믿지 못하겠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세운다. 기초생활수급자 중엔 진짜 힘든 이와 서류로만 힘든 이들이 혼재돼 있다는 거다. 장학금을 그 기준으로 줄 순 없다고 입을 모으는 이유다.

그렇다고 무질러버릴 수도 없다. 정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일을 학교가 어떻게 하느냐는 볼멘소리도 있다. 어차피 가정 형편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할 바에야 성적이나 성적 향상도를 기준으로 선정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구관이 명관'이라는 이야기다.

교육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 

"제도를 악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정작 지원이 절실한 이들이 배제되는 게 안타깝긴 하지만, 장학금이 그들에게 돌아갈 단 1%의 가능성조차 애초 차단해야 한다고 봐요."

"세상에 완벽한 제도란 없어요. 설령 열에 아홉이 제도를 악용한다고 해도, 나머지 단 한 명을 구제할 수 있다면 지원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교사들 사이에서 일리 있는 두 주장이 팽팽히 맞서는 가운데,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갑작스럽게 경제적 곤란을 겪고 계시면 어려워 마시고 제게 귀띔해주십시오. 감히 지원을 장담할 순 없으나 도움 드릴 방법이 있는지 찾아보겠습니다."

학부모들의 선의를 믿고 단체 문자를 띄웠다. 장학금 수혜 대상자를 찾고 있다는 이야기는 괜한 오해를 살까 봐 부러 꺼내지 않았다. 수익자 부담의 수학여행 참가 비용을 부담스러워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라 겸사겸사 보낸 것이다.

보내자마자 학부모들의 훈훈한 답장이 쇄도했다. 대개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말이었지만, 함께 돕고 싶다는 바람을 앞다퉈 전했다. 학교에 대한 학부모의 불신이 팽배해있다고들 하지만, 우리 교육에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건 이런 분들이 적잖이 계셔서다.

"반 친구 중에 어려운 사정이 있으면 작은 액수나마 후원하고 싶습니다. 알려주십시오."

"다른 사람도 아닌 반 친구인데, 나 몰라라 할 순 없죠. 담임선생님과 함께 돕고 싶습니다."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게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도록 조용히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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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미뤄지고 있지만, 여전히 내 꿈은 두 발로 세계일주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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