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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삶을 적나라한 필치로 풀어낸 프랑스의 작가이자 문학교수 아니 에르노가 지난 6일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습니다. 이번 '시민기자 북클럽'에서는 아니 에르노의 작품을 다룹니다.[편집자말]
노벨 문학상에 '자전적 소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노벨 문학상에 "자전적 소설" 프랑스 작가 아니 에르노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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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의 책을 보면 항상 글을 쓰고 싶어진다. <얼어붙은 여자>를 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에르노는 1940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는데, 게다가 이 책은 1981년 출간된 책인데 어쩌면 이렇게 공감되는 부분이 많을까.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는 쓰지 않는 작가

지난 6일 2022년 노벨 문학상으로 선정된 아니 에르노가 쓴 <얼어붙은 여자>는 여자아이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어린아이가 청소년이 되고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과정이 담겼다. 아니 에르노는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이야기는 쓰지 않으므로 이 책에 나오는 주인공은 아니 에르노다.

그녀가 겪었던 사건들을 따라가며 비슷한 과정을 겪은 내 학창 시절을 떠올린다. 능력만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거라고, 대학에만 가면 핑크빛 미래가 펼쳐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남자와 똑같이 하지만 가사 노동 또한 여자의 몫이라는 관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였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집을 비울 때 항상 나에게 오빠 밥을 차리라고 하셨다. 오빠가 배고프다고 하면 나와 동생이 오빠의 밥을 차렸다. 그게 이상하다고 여긴 건 내가 결혼하고 나서도 한참 뒤였다.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
ⓒ 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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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많았고 능동적으로 유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자가 아래에 있어야 하고 자신을 제공해야 한다는 기존 관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수동적인 모습을 상상해도 역겹지 않았다." (p102)
 
여자 아이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른다고 하면 사람들은 다림질하고 요리하고 청소할 줄 모르는 걸로 이해한다는 이야기,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하는 게 오히려 남녀 사이에서는 결점이 된다는 이야기, 남자들은 자유롭게 욕망할 수 있지만 여자는 그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남자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여자들을 사람들은 존중하지 않는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 남자친구가 원하는 대로 머리 모양과 스타일을 바꾸는 이야기.

그 이야기들을 통해 그냥 지나쳐왔던 내 삶의 조각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도, 나도. 나도 그런 적 있어!' 하며 아니 에르노와 수다를 떨고 싶었다.

"너무 똑똑한 여자는 싫어하거든요"

서른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자 초조해졌다. 결혼이란 게 빨리 해치워야 하는 숙제 같았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결혼 정보 회사에 갔다. 빽빽한 질문지에 내 정보와 배우자 희망 사항에 대해 체크 하는데 거의 한 시간 남짓 걸렸다.

나의 외모와 학벌, 엄마 아빠의 학력과 직업 등 그 모든 것이 수치화됐다. 담당 직원은 내가 적은 문서를 보고 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휴, 더 공부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딱 적당하게 공부하셨네요."
"네?"
"남자들이 너무 똑똑한 여자는 싫어하거든요."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 말을 들으며 나도 웃었다. 딱 적당하게 공부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 사회가 규정한 틀 안에서 중간 이상의 점수를 받은 여자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그 틀이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다. 문제는 결혼하고 나서였다.

엄마는 결혼식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나에게 화장실 청소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여기는 이렇게 닦고 저기는 저렇게 닦고. 아후, 엄마. 뭘 이런 것까지. 난 대충 알겠다는 표정으로 엄마의 말을 듣고 엄마의 행동을 봤다.

가끔은 생각한다. 남편은 결혼 전에 이런 걸 배워오진 않았겠지. 엄마는 결혼 후, 남편의 아침 식사를 걱정했다. 우리 둘 다 회사에 다니고 심지어 내가 남편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하는데도 아침 식사 준비는 내 몫이었다. 다행인지 남편은 아침을 먹지 않는 스타일이었고 엄마는 아침 식사 타박을 하지 않는 사위를 고마워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런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정말 문제는 아이를 낳고 나서다. 아니 에르노의 남편은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일을 버리고 집안일에만 몰두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함께 집안 일을 분담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를 챙기고 아이의 이유식을 챙겨 먹이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아마도 돕는다고 여겼겠지. 아니 에르노와 그의 남편은 같은 곳에 살지만 같은 곳에 살지 않았다.
 
"그는,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면서 조심스럽게 길거리의 사람들을 밀치면서 안시(그들이 살던 도시)를 돌아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벤치에 앉아서, 오후가 흘러가기를, 아이가 어서 자라기를 기다려본 적도 없었다. 그는 일이 끝난 후, 두 손을 호주머니에 찔러넣고 조용히 안시를 구경했고, 그에게는 모든 공간이 자유로웠다." (p.223)
 
아니 에르노의 공부 시간은 아이의 오후 수면 상태에 달려 있다. 아이가 푹 자기를, 소음에 깨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가 낮잠을 자지 않는 날엔 짜증이 올라온다.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끊임없는 계산만이 남는다. 내가 점심을 차렸으면 넌 세면대를 뚫어야지. 네가 레코드판을 사면 난 책을 사지. 네가 "우라질!"이라고 하면 나는 "머저리!"라고 답하겠어. 사랑이 아닌 복수심이다.

커플이 함께 책을 읽기 바란다는 번역자

난 복수심으로 가득 찬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둘을 하는데, 너는 왜 하나만 하는 거야? 아등바등하는 내가 보이기는 하는 거야?' 그 끝없는 분노를 너무도 잘 안다. 아이를 낳은 후, 남편도 나도 회사에 다니는데 육아와 가사는 나 혼자 짊어져야 하는 그 불공평함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마음속에선 '억울해, 억울해'란 말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다니던 회사 부서가 재정비되는 혼란스러운 틈에 사직서를 내고 프리랜서로 전향했다. 일은 적정한 선에서만 하고 이전보다는 여유롭게 아이를 기르고 가사 일을 했다. 절충안을 택했다.

일을 아예 그만두지도 가사에 전념하지도 않는다. 이제 아이도 많이 컸다.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이 고맙고 남편도 가사 일을 하는 나에게 고마워한다. '어차피 난 그만뒀을거야. 내가 어떻게 팀장이 되고 부장이 됐겠어. 내가 그럴 그릇까진 아니지.'

그런데 잘 생각하면 나뿐만 아니라 남편도 이 사회가 정한 성별 프레임의 희생양이다. 남편은 설령 자신이 팀장, 부장, 임원 그릇이 아니라고 해도 밥벌이를 그만둘 수 없다. 어깨에는 가장의 짐이 무겁게 놓여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각자의 입장을 이야기하고 '그랬구나. 힘들겠다.'하고 서로를 이해하려는 자세다. 책 마지막 페이지에 적힌 옮긴이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커플이 함께 읽어보기를 권한다. 여성은 공감을, 남성은 여성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고, 양쪽 모두 상대편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볼 기회를 얻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철저하게 여성의 시각에서 쓰인 이 책에서 배제된 남성의 목소리 또한 들어볼 필요가 있으리라. 그것이 함께 산다는 모험을 조금은 덜 위험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p254)

얼어붙은 여자

아니 에르노 (지은이), 김계영, 고광식 (옮긴이), 레모(2021)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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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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